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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소설]울 아빠 (2)/신덕재

 


<1618호 이어>


월남을 하고 며칠 안 돼서 전쟁이 터졌다. 그 날로 울 아빠가 월남한 낭까리골도 인민군 손에 들어갔다. 울 아빠는 또 숨어 살아야 했다. 이제 잡히면 총살이다. 아들 둘을 인민군에 보내지 않기 위해 굴속에 숨긴 기피 가족이고 지주반동으로 강제이주도 하지 않고 월남을 했으니 반동 중에서도 최고 악질 반동이니 말이다. 뭐 울 아빠야 숨어 살면 그만이다. 그 밖의 사람들이 힘들고 고생이다. 그 때 난 배고픔의 설음을 알았다. 울 아빠가 미웠다. 난 울 아빠가 밉다고 투정을 부리다 울 생모에게 뒤지게 맞았다. 아무 쓸 짝에 없는 울 아빠를 왜 울 생모는 두둔을 할까?
얼마나 먹고 살기가 힘들었는지 울 생모에게서 난 둘째 딸인 나의 셋째 누나가 부황이 들어 죽었다. 정말로 굶어 죽은 것이다. 그런데도 어느 누구하나 서러워하지 않았다. 식구 하나 줄었구나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울 생모가 또 임신을 했다. 숨어 지내는 가운데도 임신을 시키는 울 아빠는 참 대단한 분이시다.


추석이 가까워 오는 때에 국방군이 트럭을 타고 한길을 지나갔다. 국방군이 인민군을 몰아내고 고향을 수복했다고 한다. 누렇게 바랜 울 아빠가 고향 집으로 가자고 했다. 이제는 죽어도 고향에서 죽고 살아도 고향에서 살겠다고 한다. 아직도 울 아빠는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모양이다. 다만 피난생활이 혹독하고 힘든 생활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울 아빠는 상황 판단이 아둔한 것 아닌가? 하여간에 월남생활에서 울 아빠가 한 것이곤 숨어 지내는 것과 울 생모에게 임신시킨 것뿐이지만 그래도 울 아빠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집안의 힘이요 기둥이었다.
고향집에 돌아오니 살림살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인민군이 기거하면서 무너뜨린 흙더미만이 너저분하게 깔려 있었다. 그래도 난 고향집이 좋았다. 천자문을 배우던 마루도 그대로요, 앞마당에 있는 우물도 그대로다. 우물 옆 비스듬히 서있는 향나무도 그대로다. 그런데 울 아빠의 얼굴은 무겁고 어두웠다.


며칠이 지났는가 싶은데 형수가 장총을 들고 들어왔다. 지금 빨갱이 원수 놈들을 쳐 죽이고 오는 길이란다. 얼굴에는 살기가 가득하다. 괜히 잘 못 건드리면 장총으로 내리 갈 길 것만 같다. 형수가 무서웠다. 울 아빠는 소태 씹은 얼굴을 하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 후에 이 한마디를 했다.
“에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 어울리는 말인지는 모르나 몹시 속상한 모양이다.
형수는 장조카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울 아빠는 장조카가 어떻게 될까봐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형수의 위세가 너무 커 시아버지의 권위가 없어 보였다. 울 아빠는 형수가 하는 대로 그냥 놔두었다. 그 때 울 아빠가 너무 힘없고 나약해 보였다. 울 아빠의 꿋꿋하고 억센 모습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소문이 들려왔다. 인민군이 고향을 점령하고 있을 때 형수는 송림산 굴속에 숨어 살았다고도 하고 남한 유격대와 연락을 하면서 송림산과 낭까리봉을 넘나들며 인민군을 괴롭혔다고도 한다. 인민군 쪽에서 보았을 때 아주 악질적 미제 앞잡이인 것이다.


또 소문이 들려왔다. 형수가 빨갱이 누구누구를 총 개머리판으로 쳐 죽였다고도 하고 빨갱이 여편네를 흙구덩이에 파묻었다는 소리도 들렸다. 하여간에 형수가 당한 무지막지한 일을 형수가 다시 빨갱이들에게 갚아준 모양이다. 이런 소문에 울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장조카의 안부만 물었다.
어느 날 갑자기 형수가 헐레벌떡 숨을 몰아쉬며 들이 닥치더니 장조카를 남겨 놓고는 쏜살같이 사라졌다. 중공군이 쳐 내려 온단다. 만약에 공산군이 다시 내려오면 우리 식구는 살아남기 어렵다. 인민군 입대 기피자에다, 월남자에다, 악질 반동 유격대이니 붉은 세상이 되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앞날이 아득하다. 그래서 형수가 왔을 때 울 아빠가 “에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하고 울부짖는가 보다.


정말로 인민군과 중공군이 가까이 왔는지 총소리가 콩 볶는 소리 같고, 대포 소리가 귀 밑에서 들렸다. 울 아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