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

Relay Essay 제2059번째

재작년 모 케이블에서 방송한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예과 92학번인 나는 본과에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94학번을 부여 받았다. 아마 나처럼 그 시절을 기억하는 세대가 많았나 보다.

94년도 따듯했던 5월의 연건캠퍼스와 창경궁의 푸르른 녹음, 바람, 그리고 꽃 향기가 바로 엊그제 일인 양 선명하고 부드럽고 향긋하다. 오늘이 2015년 8월이니, 벌써 만 21년전 일이다. 1997년 12월 폭설을 뚫고 시험장에 겨우 늦지 않게 도착하여 국가시험을 치르고, 1998년 2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치과의사면허를 취득했다.

1998년은 IMF가 막 시작된 시절이었다. 당시 한국의 경제상황은 엉망이었다. 우리 부모님도 힘들었고 모두가 힘들었다. 다행히도 그 시절 바쁜 인턴과 레지던트 시절을 보내느라 나는 나라의 경제상황을 걱정할 처지는 아니었다. 수련과정은 힘들고 괴로웠지만, 지치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았다. 전라남도 신안군 낙도 섬마을에서 2년 그리고 성남시 분당구보건소에서 1년 공중 보건의로 군생활을 대신하였다. 2004년 4월 15일, 36개월의 긴 군복무를 마치고 다른 선배님들의 길을 따라 드디어 개원의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내 나이 32살이었다. 일반회사에 다니던 내 친구들은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와서 이미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난 때였다.

나는 대출을 받아 자금을 마련하고 선배님과 동업계약을 쓰고 입지를 정하고 임대차계약을 하였다. 시설 장비를 갖추고 직원을 채용하고 OOO치과 원장이라는 직함으로 명함을 새기고 진료에 임했다. 난생처음 월급이 아닌 일한 만큼 벌게 되는 개인사업자가 되었다. 모든 게 낯설고 서툴러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따로 정해진 월급이란 게 없었던 만큼 치과와 일에만 매달렸다. 진료로 쌓인 피로는 술과 기름진 안주 그리고 담배로 풀었고, 운동은 숨쉬기운동이 고작이었다. 체중은 훌쩍 늘고 만성피로는 피로감인지도 모른채 달고 살았으며 환절기 때마다 유독 심한 독감에 시달렸다. 약해진 체력만큼이나 정신도 나약해지고 있었다. 진료도 환자도 모두 귀찮아졌다. 2013년 7월 건강검진을 받았고 혈압, 간수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 등등이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좋지 않게 나왔다. 뭔가를 느꼈다.

나는 내 환자가 운영하던 Personal Training Health Studio를 방문해서 인바디 측정기계에 올라섰다. 내 몸의 체지방과 근육량이 적나라하게 측정되었고 순간 창피했다. 난생 처음으로 식이요법과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시작하였다. 탄수화물과 나트륨 그리고 술을 억제하고 물을 많이 마시고 단백질 섭취를 늘리고 운동을 시작하니, 몸이 이를 거부하고 첫 2주간 대단히 힘든 나날이 이어졌다. 아침에는 고구마와 무지방 우유 그리고 방울토마토를 먹고, 점심에는 닭가슴살을 구워서 야채와 같이 먹었다. 저녁에는 단백질 쉐이크와 계란찜과 현미밥을 먹고, 매일 운동을 하였다.

2주 동안 체중은 그리 쉽게 빠지지 않았고, 근육통에 시달리고 피로감은 오히려 증가했다. 포기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3주째 처음으로 체중이 1kg 줄었다. 늘어 나기만 하던 체중이 처음으로 줄어든 것이다. 운동으로 쌓인 젖산이 주는 통증도 서서히 쾌감으로 변했다. 운동과 식이요법 5주째 체지방이 3kg 빠지고 근육량이 300g늘었다. 운동과 식이요법을 시행한 지 19주째 체지방은 12kg이나 줄고 근육량은 3kg이 늘었다. 움츠렸던 어깨와 등이 펴지고 몇 년간 시달렸던 목 어깨 등쪽의 통증이 사라졌다.

그 해 12월 초 헬스클럽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한 Body challenge대회에서 20~30대 경쟁자들을 제치고 1등을 하였다. 체중조절형 식이요법을 끝내고 유지형 식이요법으로 넘어가는 날 친구들과 꽃등심 파티를 하였다. 잘 구워진 고기를 소금을 소심하게 찍어 한입 넣어 씹고 소맥을 마셨다. 나트륨과 알코올 기운이 온몸에 전기처럼 퍼졌다. 매우 맛있었다. 육체가 건강해지자 마음이 같이 평온해지고 건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불만환자를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했고, 웃으면서 위기를 넘겼다. 직원들한테 내던 짜증도 줄었다. 환자를 많이 보더라도 피로하지 않고 불만환자도 줄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찌뿌둥하지 않고 침대에서 첫발을 내딛을 때 발바닥이 느꼈던 통증도 사라졌다. 운동을 시작하고 만 2년 동안 독감백신 맞는 것을 깜박했지만, 단 한번도 독감이나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꿈도 갖게 되었다. 다시 받은 건강검진에서 모든 혈액검사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최근 방심했더니 다시 체중이 늘고 피로감이 느껴진다. 다시 운동과 식이요법을 시행할 때가 온 것 같다. 한번 해봐서 요령이 생겼으니, 이번에는 좀 쉽게 할 수 있다. 내일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과도한 스트레스 같은 정신적 요인이 육체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으나, 운동이 몸과 마음을 같이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은 근래 들어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를 도와준 이한빈 트레이너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나와 같은 상황의 치과의사 분들께 나의 이런 경험을 전하고 싶다.
 
손병섭 에스플란트 치과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