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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아들

Relay Essay 제2145번째

할아버지는 농부셨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농사를 짓기 싫어 도시로 나가 취업을 하고 마치 한량 처럼 지내셨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로 기억한다. 밭에서 여러 가지 나무를 가꾸시던 아버지와 어머니. 뜨거운 햇살 때문에 난 잘 찾지 않았지만 집에 동생과 있다 보면 자연스레 밭으로 나가 아버지를 찾곤 했다. 이후 아버지는 직장 관계로 밭일은 하지 않으셨지만 가끔 텃밭을 가꾸고 싶다는 얘기를 하시면서 할아버지 얘기도 함께 해주셨다.

지금은 연세가 드셔서 일을 하지 않는 아버지도 늘 얘기하셨던 텃밭. 아버지는 몇 년 전 집 근처 한적한 곳에 텃밭을 만들어 시간만 나면 밭에서 이것저것 키우시며 시간을 보내신다.

봄이면 거름을 주어야 한다. 아버지의 호출이 떨어지면 어디라도 달려가 아버지의 일손을 도와야 한다. 사실 아직 난 밭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수확물을 확인하려면 꽤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때가 되면 거름에 모종에 잡초도 뽑고 약도 쳐야 하고, 이것저것 손이 많이 가는 농사일은 나에겐 많이 버겁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거든 채소며 과일이 수확돼 밥상에 올라오면 이런 버거움은 곧 즐거움으로 변한다. 수확의 기쁨이 이런 것일까. 

언젠가 아버지는 혼잣말처럼 복숭아나무는 심고 3년을 기다려야 된다고 하셨다. 3년? 참 긴 시간이라 내심 다른 걸 심어보라고 권해 봤지만 아버진 복숭아나무를 심으셨고 3년이란 시간동안 묵묵히 기다리며 가꾸어 작년 초 가을 쯤 복숭아를 수확해 동네 분들과 나누기도 하시고, 동네 시장에 나가 판매해 술값도 버셨다고 즐거워하셨다.

첫 수확한 복숭아는 참 맛있었다. 과실이 단단하고 당도도 높았다. 복숭아 수확은 처음이라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버진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3년 이란 오랜 기다림을 감내했다. 포기하지 않고 목표했던 것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는 얼마나 신경 쓰고 하루하루 수고하셨을까?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을 난 잘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를 통해 한해 수고하고 수확한 농작물을 기뻐하는 농부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것 같다. 요즘은 기후도 많이 바뀌고 어릴 적엔 생각도 못했던 다양한 작물이 재배되고 다양한 방법으로 수확을 하는 것 같다. 자연은 가장 정직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대답하고 우리를 가르치는 것 같다. 편법이나 지름길은 없다. 물론 노력했다고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다. 장마과 가뭄 등의 큰 변수가 있지만 그 변수를 이겨내는 것이 농부의 강한 의지인 것 같다.

가장 정직한 방법으로 아버지는 지금도 나에게 큰 교훈을 전달해 주고 있다. 어릴 적 그렇게 크게만 느껴졌던 아버지는 아니지만 아버지의 지혜는 나에게 아직 필요하고 세상을 헤쳐 나가는 좋은 무기가 된다. 늘 한자리에서 묵묵히 나를 지켜 봐주시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당장 농사일을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할아버지의 피가 아버지를 통해 나에게도 전달되었으니 아마 나이가 들어 아버지 쯤 되었을 때 한손엔 호미가 들려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올 가을에 수확될 복숭아도 은근히 기대해본다.

김도훈 오라픽스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