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30 (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나는 행복한가?

Relay Essay
제2246번째


요즘 부쩍 더우니 우리 병원에 근무하는 직원이 “원장님 너무 더워서 출근하기 힘들어요. 더울 때는 좀 쉬면 안 돼요?”라고 애교 섞인 농담을 한다. 나는 대답하길 “너는 내가 쉬는 날은 당연히 쉬고 연차도 있잖아. 내가 30살 이상 나이가 많은데도 일하는 시간은 더 많은데?” 라고 농담을 한다. 돌아오는 대답이 “원장님은 돈이 많잖아요” 라고 하니 할 말이 없다. 사실 내가 많이 쉬지 못하는 게 환자에 대한 의무일까? 매출에 대한 욕심일까? 의무와 욕심 중 어느 쪽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할까? 이런 의문을 문득 가져 본다.


개업한 지 30년 가까이 되는데 처음 개업했을 때와 비교하면 경제적으로는 상당히 안정이 되었는데, 일하는 시간은 5% 정도 준 거 같고, 노동 강도는 20% 정도 강해진 거 같다(통계적 근거 없이 막연히 내가 느끼는 것). 그러면 행복지수는 얼마나 올랐을까? 아니면 내렸을까? 참 어려운 문제이다.


사람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바는 주관적이지만, 객관적 조건들에 영향을 받지 않기는 상당히 어렵다. 우리가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시장에서의 성공이 모든 걸 정당화하고 가능하게 하며 모든 이론을 대체하는 시대이다. 또한 행복이 기대치에 대한 만족도라 생각하면 대중매체와 광고는 우리의 기대치를 끊임없이 높여 도저히 만족도가 올라가기 힘들게 한다.


처음 개업했을 때 3년 안에 빚 갚고 또 3년 뒤에는 집사고 이런 계획을 했는데, 그때는 주위에 대형치과도 없었고 회사를 만들어 성공한 치과의사는 더 더욱 없었고, 한사람이 여러 개의 치과를 하는 건 생각도 못하는 시대였다(내 사고 범위가 좁아 생각을 못했겠지만). 지금은 주위에 성공한 사람이 많으니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질투하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환자가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라 환자들도 만족도가 떨어지고 공격적이라 개업의 입장에서는 대응이 어렵다. 직원들 구하기가 힘드니 웬만하면 비위 맞추어 주어야 되고 세금은 매출과 반비례 하고 참 어렵다. 나는 국립대 출신이라 학교 다닐 때 혜택을 조금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이후 국가로부터 받은 것은 규제와 의무밖에 없다고 생각 들 때가 많다.


치과의사는 나 혼자이고 대진의나 페이를 쓴 적도 없고 계획도 없는데 모든 기록에 싸인 해야 되고 이름표 달아야 되고(외부 간판과 출입구에 내 이름을 커다랗게 써 놓았는데…) 대기실 벽면은 덕지덕지 의무적으로 붙이는 건 왜 그렇게 많은지 답답할 뿐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


요즘은 아나키스트를 이해할 정도로 정부와 사회에서 과도한 간섭과 규제가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행해진다. 이런 건 확실히 개업의의 행복지수를 낮추는 일이다. 이런 객관적인 조건들이 나아질 가능성은 전혀 없을 거 같고 주관적으로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 상당히 즐거운 일이다. 그렇지만 맛집이란 곳을 가보면 실망하는 일이 너무 많고 음식 맛을 추구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건 크게 행복지수를 올려 주지는 못한다. 술은 좋은 사람과 한잔하면 상당히 즐겁다. 와인을 좋아하니 와인 마시는 날은 설레기 까지 하니 확실히 행복지수를 올려 주는데, 과음을 하면 그 행복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후유증이 있다. 그래도 술 한잔하며 이런 저런 남의 뒷이야기 하면서 환상의 세계로 잠시 가는 건 확실히 즐거운 일이다.


운동이 상당히 즐거운데 과격한 운동은 힘들고 가끔 골프를 치는데 재주도 없고 노력도 안 해서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지만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수단으로는 아주 좋다. 그래서 능력이 모자라도 골프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혼자서 하는 일 중에는 책 보는 게 제일 흥미롭다. 워낙 이런저런 다양한 책을 보니 내공은 전혀 올라가지 못하지만 책에 빠져들어 잠시 현실을 잊어버리는 순간은 상당히 비용대비 효과가 크다. 천문학 책을 보며 아인슈타인의 위대함을 되새기고 우주에서의 지구 그리고 나의 왜소함을 느끼며 잠시 겸손해지기도 하고, 미셸 우엘백의 소설을 보며 프랑스의 정서를 느끼는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유발 하라리의 책을 보며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걱정하는 척하는 게 즐겁다. 죤 그리샴의 소설을 보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국의 법체계를 공부하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내용과 재미를 모두가진 책을 보면 무척 즐겁다. 책을 보면 내용이 없는 나 자신이 내용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도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에 내용이 있는 사람으로 봐주니 은근 기분이 좋다.


그래도 역시 중요한 건 주위의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내가 혼자서 살기에는 많이 부족해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데, 만나는 사람의 대략 70%는 치과의사인 것 같다. 동병상련인가? 가장 말이 통하고 주제도 비슷하고 편하다. 협회 일 하면서 만났던 선후배 동료들과도 비교적 잘 지내고 있다. 내가 낯가림이 심한 편인데 치과의사들과는 쉽게 친해지는 것 같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 형성은 상당히 힘이 든다. 물론 치과의사가 아닌 과거의 친구들과는 잘 만나고 편하다. 밥을 먹어도 술을 마셔도 골프를 쳐도 여행을 가도 같이 가는 사람이 누구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쉬고 싶은데 긴장해야 되는 건 사절이다. 그러다 보니 주제도 비슷하고 경제 사정도 비슷한 동료들과 어울리는 경우가 많아진다. 지금 와서 그런 현실을 바꾸고 싶지도 않다. 시야가 좁아진다고 얘기하면 동의하지만 ‘원래 내 시야가 넓지 않으니’라고 변명한다.


누구나 행복하길 원하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행복에 관한 수많은 이론이 있지만 지금의 정보과잉 시대에서 만족하고 행복하긴 정말 쉽지 않다. 개업의의 행복이 무엇일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자기가 자기 행복을 찾을 수밖에 없다. 국가와 사회는 우리의 행복을 올려주지는 않는 게 확실하다.  


황상윤

황상윤치과의원 원장

전 치협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