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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P에도 공보의는 있다

Relay Essay 제2254번째

필자가 훈련소에 있었을 때이다. 때는 바야흐로 마지막 4주차였다. 종교 행사로 기독교를 갔는데 마침 옆자리에 딱 봐도 금방 들어온 신입 훈련병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았다. 바싹 깎은 머리에,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슬픈 얼굴. 그에 반해 우리들은 곧 나간다는 환호에 차 있었다. 마침 목사님도 바로 앞에 앉은 우리와 옆 연대 사이의 큰 차이를 봤는지 말을 거셨다.

“여기 계신 공보의 선생님들, 곧 나가시죠? 바로 옆에는 새로 들어오신 훈련병들이시군요. 바로 들어오신 분들과 곧 나가는 분들이 한자리에 앉으셨군요.”

목사님의 말씀에 다른 연대들이 수군거리더니 우렁차게 “GOP! GOP!”를 외쳤다. 훈련소에서 곧 나가는 연대가 있으면 이를 시기하는 다른 연대들이 ‘GOP에 배정이나 받으라’고 놀리는 신호였다. 하지만 목사님이 쐐기를 박는 발언을 하셨다. “GOP요? 공보의 선생님들도 GOP를 가시나요? 그렇죠? 네, 공보의 선생님들은 GOP를 가지 않습니다.” 이 말에 다른 연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고 나는 박탈감을 느끼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현재 훈련소를 나온 지 5개월 된 치과 공보의인 필자는 목사님의 말과 달리 GOP에 근무하는 공보의다. 필자의 보건지소는 대청보건지소, 서해 5도 중 한 곳이다. 서해 5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이라는 곳에 속해 있는데 사실 옹진군은 북한 황해남도의 지명이다. 과거에는 전쟁으로 영토를 상실하면서 밀려온 유민들이 정착한 곳, 빼앗긴 영토의 이름을 빌려 쓰는 경우가 꽤 있는데 옹진군도 이런 사례에 속한다. 과거 옹진군에 속했던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를 포함하여 서해 여러 섬을 묶어 경기도 옹진군을 만들었고, 후에 일부가 빠져나가 인천광역시에 포함되었다.

대표적인 섬들이 서해 5도로서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가 있다. 이상하게도 소연평에도 70여명의 인구가 거주하지만 서해 6도로 불리지 않으며, 우도에는 민간인이 살지 않고 군인만 주둔한다. 결국 서해 5도에는 백령보건지소, 대청보건지소, 소청진료소, 연평보건지소가 있으며 필자는 공식적으로 이 중 2섬(대청도, 소청도)의 치과의료를 담당한다.

군의관은 군인을 상대하고 공보의는 민간인을 상대한다. 백령도는 치과군의관과 백령병원 치과원장이 있고 연평도도 치과군의관이 있다. 하지만 대청도에서 치과의사는 필자뿐이므로 필자의 경우 군인과 도민(島民) 모두를 담당한다. 그만큼 국경이 눈앞이기도 하다. 대청도에서 인천연안터미널까지는 직선거리 170km이지만 북한과는 40km이며 평양이 서울보다 가깝다(서해 5도 주민들은 아직 이북사투리를 사용하며, 과거엔 육지에 갔을 때 경찰서에서 고초를 꽤 겪었다고 한다). 처음 배정받았을 때 지도를 보면서 ‘아, 내가 이제 38선 이북에서 사는구나’ 라는 좌절감을 느꼈다. 다행히 38선 이남이었지만 큰 위로는 되지 못했다.

섬 전체가 GOP이다 보니 여러 에피소드도 있다. 쾌청한 날이면 바다 너머 알록달록한 북한 땅이 보이며 밤마다 기관총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2년 전 지뢰로 2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고부터 수시로 목함지뢰, 나뭇잎지뢰를 조심하라고 해 안심하고 바닷가를 걷지 못한다. 저녁만 되면 군인들이 해변에 있는 사람들을 나가게 하고 표류한 북한 어부가 대청도에 오기도 한다. 산책로 주변에 포가 있으며 탈북자를 환영하는 표지판도 모든 해변에 있다. 처음에는 매우 당황하지만 나중에는 무덤덤해지는 것이 딱 섬에 적응한 것이 느껴진다.

연평도 포격사건은 공무원(보건지소, 면사무소)들에게는 심심한 안주다. 2010년 연평도에 포격이 시작되자 몇몇 공무원과 간호사가 배를 타고 탈출한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법적으로 전시상황에서 섬을 나갈 수 없는 특정 직업군이 3가지가 있는데 군인, 의료인, 공무원이다. 결국 배 타고 탈출하다가 전화로 연평면장님의 엄청난 욕을 먹고서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 연평보건지소는 이 사건으로 파괴되었지만 다시 건축되어 지하에는 대피소 겸 헬스장이 생겼고 군의관이 한 명도 없던 섬에서 7명이나 배정되었다. 대청도도 군의관이 없었지만 이 사건으로 1명의 군의관이 배정되었다. 그 사건 덕에 서해 5도의 처지가 개선되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과거 해군의 호위를 받으며 편도 19시간 걸리던 대청도는 현재 쾌속선으로 4시간 걸리는 섬이 되었지만, 언제나 아무도 오지 않으려는 섬이다. 서해 5도는 백령도와 연평도뿐, 대청도는 아무것도 없는 외로운 섬이다. 운동시설, 문화시설이 전무해 공보의들은 식사 후 각자의 방에 들어가 컴퓨터 앞에 앉을 뿐이다. 인천에 속한 섬이라는 이유로 도간 이동이 최하순위이며 간호사는 부족해 매년 항의가 많았다. 나가려면 배편과 이동시간 때문에 휴가 6시간을 써야 하는데, 항상 부족하니 스스로 섬에 묶어놓다 보면 어느덧 육지는 머나먼 곳이 되고 외로운 자신만 남는다.

어쩌면 대청도는 공보의뿐만 아니라 일반 도민과 군인이 함께 GOP를 지키는 곳이다. 이런 곳을 하대하면서 TV에서만 안보를 떠드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 그 누구도 자원하여 이 섬에 온 사람은 없다. 하지만 대청도 유일한 의료기관으로서 섬의 보건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항상 떳떳하게 지내고 있다. 불이익이 이익보다 많은 이 섬에 모두들 불만을 품고 있지만 겉으로 티를 안 내면서 웃으며 환자를 본다.
항상 기억해달라, GOP에도 공보의는 있다.


신동하 대청도보건지소 공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