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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했던 젊은 날의 초상

Relay Essay 제2255번째

나는 치전원출신이라 치전원 입학 전에 4년간 일반 학부과정을 다녔었는데 내가 나온 학교는 대전의 한 공대였다. 원래 한참 꾸미고 다닐 나이인데다 당시 학교의 분위기상 자유롭고 독특한 복장을 한 학생들이 많았는데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 당시 나의 외모에 대해 회고해보자면, 일단 머리는 어깨 밑까지 내려오게 장발로 길렀었고(참고로 필자는 남자임) 기본 노란색 염색에 당시 영화 ‘동감’의 유지태가 유행시킨 카키색 염색도 곧잘 하고 다녔었다. 그리고 목걸이는 물론이거니와 반지도 손가락 마다 다 끼우고 다녔고, 귀를 뚫기는 아플 거 같아 ‘귀찌’라고 하는 귀에 찝는 귀걸이도 한 귀에 2~3개씩 양쪽 귀 모두 끼우고 다녔었다. 또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지만 마치 소의 코뚜레처럼 코찌를 코에도 끼우고 다녔다.

이렇듯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니던 나에게 이 모든 패션이 잘못 되었단 걸 깨닫게 해준 사건이 있었다. 공대의 특성상 남녀비율로 봤을 때 여학생의 수가 남학생에 비해 많이 적었는데 내가 나온 학교도 솔로인 남학생들이 학교 도처에 널리고 널렸었다.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던 어느 봄날 오후, 그 날도 귀걸이, 코걸이, 목걸이 등 몸에 붙일 수 있는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두 주렁주렁 몸에 달고 학교 내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창 걷던 중 남학생 서너 명이 내 뒤에서 수군수군 대는 소리가 들렸다.

“니가 말걸어봐~”
“너가 해봐~넌 여자친구 없잖아?”
당시 난 키 172cm에 몸무게가 52kg밖에 안 나갈 정도로 남자치고는 많이 마른 편이었는데 특히 긴 생머리를 찰랑거릴 정도로 머리를 길게 기른 상태였고 하필 그날은 몸에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은 상황이라 내 잘빠진 각선미(?)가 두드러지게 돋보였으리라. 그래서 뒤에서 보면 누가 봐도 영락없이 몸매 좋은 긴 생머리의 매혹적인 여학생의 뒤태이었을 테고, 남성호르몬을 폴폴 품기며 뒤에서 수군거리던 그들도 나를 여자로 오해하는데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난 그때 마음속으로 “제발 그냥 지나가라, 그냥 지나가라 제발~”하고 주문을 걸고 있었다. 그 순간, 뒤에서 수군거리던 가엾은 수컷 무리들 중 한 명이 뒤에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저기요~”라며 말을 걸었다. 피하고 싶었던 우려가 현실로 눈앞에 닥치자 나는 어쩔 수 없이 뒤돌아보았고 그 때! 내 얼굴을 쳐다보던 남학생의 표정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고 끔찍했다. 사람이 놀라면 이런 표정까지 나오는구나 싶을 정도로 그는 아연실색하였고 그리고 나선 그가 당황하며 내던진 한마디.

“저…저기…지금 시간이 몇 시예요?”
그래서 나는 시계를 보는 척하며 “아. 4시네요” 라며 대답하곤 시간을 달리는 소녀마냥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그리곤 내 뒤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던 수컷 무리들이 서로 네 잘못이니 내 잘못이니 하며 다투는 소리들을 뒤로하고 그 길로 바로 미용실에 가서 애지중지 길렀던 장발머리를 미련 없이 단숨에 잘라버렸다. 또한 몸에 달고 다니던 모든 쇠붙이들을 모두 제거해서 전량 폐기처분하였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 이 에피소드를 주위 지인들에게 애기하면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그 당시 사진 좀 보여 달라고 하지만 그 시절 찍었던 사진들도 간직하기조차 낯부끄러워 모두 처분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스스로도 내가 정말 그렇게 하고 다녔었을까 할 정도로 낯 뜨겁고 부끄러운 행색이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그 구역의 패션왕은 나라고 자부할 정도로 대담하고 화려했던 치기어린 내 젊은 날 초상화의 한 단면이었다. 그리고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 시절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잠시 젊음의 특권을 발휘한 것이었으니까.


강병현 대구지부  정보통신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