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여 세월 동안 전화도 받지 않으시고, 서로 즐겁게 소식을 전하며 소통했던 카톡을 아무리 보내도 응답이 없어 걱정 속에 마음을 애태웠는데 2023년을 하루 남겨놓은 지난 12월 30일 선배님의 큰 아드님으로부터 온 카톡 부고를 보고 망연자실 앞이 캄캄했습니다. 90이 넘어 노익장을 과시하며 몸과 마음이 강건하시던 선배님이 그날도 환자를 몇 명 진료하시고 후배분과 저녁 자리에 나가시려다 갑자기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로 거동도 못 하시고 코마 상태, 인지력도 없는 채 1041일의 긴 투병 생활을 하시다가 마음 줄을 놓으시고, 95세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셨다는 소식에 애통함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선배님은 1927년 경기도 용인 출생, 1949년 서울치대 3회 졸업, 1950년 군의관으로 입대, 1955년 훠트오르(FortOrd) 및 1960년 월터리드(WalterReed) 병원에서 구강외과와 치과 고등교육반 이수, 1966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셨습니다. 또 1967년 치과기재학회 3~5대 회장·고문, 구강보건협회 부회장·감사·고문, 1969년 예비역 치과 군의관 대령, 치협 감사, 1974년 치협 총무, 1978년 인공치아이식임플란트학회 1~2대 회장
혼자 먹는 식탁 저녁 식탁에 홀로 앉아 밥상에 올라앉은 기억들을 먹는다 하루해의 조각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모인다 밥알이 반찬들을 헤집는다 재잘거리던 새들 노랫소리로 날아오르고 장미 무늬 접시에 넘치던 짙은 향기 서로들 노란 주둥이 활짝 벌려 짹짹거리고 먹어도 먹어도 배가 차지 않았을 그 작은 새들, 어느 강가에서 시간을 따라 기억의 강물로 흘러갔을까 아파트 베란다 창문으로 길게 누운 해 그림자 바라보며 죽은 한 건너편에 있는 너를 생각한다 끊임없는 광야 길을 걷고 걸어서 어디쯤 갔을까 너는 배가 고팠을까 그 겨울은 따뜻했을까 빗살로 길게 누워 있다 이내 일어나 붉게 타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하루해 집에 있어 식탁에 앉아 화려한 밤 속으로, 그 고요한 적막 속으로 외로움 한 사발 시원하게 마시련다 아, 맛 좋다 자, 성찬을 즐기자 주여! 이 식탁에 복을 주옵소서 원하옵건대 제발 혼자 먹는 식탁은 사양합니다. =========================================== 신용카드 부끄러운 벌거벗은 내 몸이 구겨지고 접혀지고 압축되어 손바닥보다 작은 플라스틱판에 녹아들고
내 어릴 적부터의 꿈은 의사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 이제 이 두 꿈이 다 이루어졌으니 진정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기쁘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린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삭스다.’ 헤르만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글이다. 나는 알을 깨고 나와야 했다. 그동안 의학(醫學)과 이과(理科)의 세계에 살아왔던 내가 그 세계를 탈피하여 새로운 문학의 세계로 태어나고 싶었다. 그리하여 시의 세계로 날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내 작은 글쓰기는 내 허물을 벗는 일, 알 껍질을 부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어 준 것 같다. 이제 비로소 나는 글을 쓰며, 더불어 나누고픈 작은 몸짓을 할 때마다 나는 머리를 조금 더 높이, 좀 더 자유롭게 치켜들어, 아름다운 맹금의 머리를, 산산이 부수어진 세계의 껍데기 밖으로 쑥 내민 것 같은 느낌이다. 가슴이 따뜻한 시인이 되고 싶다. 내 시를 즐겁게 읽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를 위해 아름다운 시를 쓸 것이다. 줄탁동시(啐啄同時) 알속에 있는 병아리가 알을 깨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