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관은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느릿느릿 노래하는 가객이다. 어쩌면 태생적으로 세상의 북소리에 발맞추어 살 수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대중들에게도 사랑 받기를 원하지만, 그의 노래가 달콤하거나 자극적인 소리에 길들여진 대중들의 마음에 파고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의 눈이 향하고 있는 것은 세상의 작은 것들이다. 너무 작아 사람들의 눈에 띄지도 않는 것들 혹은 사람들이 한사코 외면하려 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인가? 그의 노래에는 대중들을 숨막힐 듯한 흥분으로 고양시키는 고음이 별로 없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저절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슬픔의 세계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물론 그것은 우리 심성을 파괴하거나 메마르게 하는 정서로서의 슬픔이 아니라 모든 존재자들에 대한 연민으로 이끄는 슬픔이다. “노을이 물들어 서산에 해지며는/부르던 이 노래도 고향집으로 갈까/이 세월이 가면 고운 노래도/시간에 흩날리어 찾을 수 없게 되오/성모 형 지금이야 우리가 부를 노래/아버지 들려주던 그 노래를 부르오”(성모 형). 함께 노래운동을 하던 성모 형이 속절없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부재가 만들어낸 공허감과 그리움을 이렇듯 가만히 읊조
처서 절기를 지나면서 마음 급한 벚나무잎이 벌써 누렇게 물들고 있다. 바람의 결도 다르고 살갗에 와닿는 햇빛의 느낌도 사뭇 다르다. 시인 문성해가 “내 머리에 바늘구멍 뚫는 소리/빽빽하게 들어찬 실뭉치들 들쑤시다/꼭꼭 숨은 실 끝 하나 찾아 들어올리는 소리”라고 노래하던 매미 소리도 이제는 잦아들고 있다.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며 물러가는 여름에게 나는 아무런 유감이 없다. 다만 왜 사람들은 ‘봄날은 간다’ 류의 유장한 노래를 지으면서도 ‘여름날은 간다’는 노래는 지어 부르지 않는지 궁금할 뿐이다.낙화착실종추성(落花着實終秋成)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화려한 꽃시절이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꽃진 자리에 맺히는 열매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가을은 열매와 더불어 온다.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하는 이들이 있다. 꽃처럼 피어나는 봄날, 무장 무장 생명이 자라나는 여름날, 생명의 기운을 안으로 거두어들여 내면의 빛을 드러내는 가을날, 허장성세를 다 떨치고 자기의 본질로만 살아가야 하는 겨울날. 어느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다. 히브리의 지혜자인 ‘코헬렛’은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전3:11)고 말했다. 아름다운 삶이란
요즘은 틈이 날 때마다 집 근처에 생긴 공원을 산책하는 게 낙 가운데 하나이다. 이름하여 경의선숲길이다. 경의선이 지하화되면서 철길 부지에 공원이 조성된 것이다. 길이는 길고 폭은 좁다.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이니 공원화 사업이 완료되면 도심 속에서 제법 괜찮은 산책로가 하나 생기게 된다. 흰말채나무, 물푸레, 칠엽수, 이팝나무, 양버즘, 양버들, 야광나무, 덜꿩나무, 가죽나무, 뽕나무, 모감주, 남천 등의 나무와 병꽃, 수호초, 은쑥, 갯쑥부쟁이, 줄사철 등의 키작은 풀꽃들과 눈맞춤하는 재미가 여간이 아니다. 저녁이 되면 인근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공원에 나와 산책을 한다. 유모차에 탄 아기들,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 아빠를 앞질러 재우쳐 달리다가 자랑스럽게 되돌아오곤 하는 아이들, 운동 삼아 땀을 뻘뻘 흘리며 걷는 사람들, 급할 게 뭐 있느냐는 듯이 천천히 걸으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 심지어는 토끼를 산책시키는 사람도 있다. 공놀이를 하거나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도 보인다.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이런 풍경을 바라볼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경쟁을 내면화하고 살 수밖에 없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고, 길거리를 떠돌며 살고 있는 이들을 식탁에 초대하고, 눈물 흘리고 있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깊은 위로를 받는다. 높은 권위의 보좌를 버리고 평범한 사람들 곁에 다가서는 그의 태도는 종교적 권위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중들에게 온유하고 따뜻한 모습으로만 자기를 각인시키려 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를 뒤덮고 있는 불의와 어둠에 대해서 그는 조금의 유보도 없이 직정적으로 비판을 가한다. 최근 토리노에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던 그는 무기를 만들거나 무기 산업에 투자하면서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들은 평화를 위하여 일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진짜 관심은 돈벌이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지만 그렇게 기탄없이 말하기는 어렵다. 좌고우면하느라 마땅히 해야 할 말도 못하며 사는 내게는 경이롭게 들리기까지 한다. 그는 두루뭉수리로 말하거나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그의 말은 누군가의 삶 혹은 삶의 자세를 뒤흔들거나 타격하여 충격을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