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여행은 계속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회사원이 되고 시간을 잃은 후 깨닫게 되었다. 자유로운 시간의 소중함을. 여행 중에서도 아빠와 함께한 여행들이 가장 그리웠다. 참 이상하다. 다시는 안볼 것처럼 다투기도 많이 다퉜는데 말이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지만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 나는 그저 멀리, 그 어떤 중력의 무게도 느낄 수 없는 곳으로 아주 멀리 떠나고 싶었다. 그때의 난 겹겹의 가면을 쓰고 만나고 헤어졌던 피상적인 인간관계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갈까 말까 우물쭈물, 우유부단 100단의 나에게 아빠가 결정적 한마디를 날렸다. “결정했으면 뒤도 돌아보지 마. 그리고 아빠는 요즘 유럽이 가고 싶더라.” # 화가의 붓끝이 감동한 창밖의 풍경들 [아빠 이야기] 4월인데도 파리의 새벽은 춥다. 일찍 나오느라 한인 민박집에서 아침을 먹지 못한 슬기가 못내 아쉬운지 뭔가를 계속 조잘 거리며 입김이 폭폭 품어낸다. 지하철 4호선을 타고 파리 북역(Gare Du Nord)으로 간다. 북역은 런던, 벨기에, 독일 등 북해에 인접한 국가로 가는 국제선이 출발하는 기차역이다. 고색의 건물이 보는
아빠 Say. 다 큰 딸과 여행을 다니는 나만큼 복 많은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딸 Say. 아빠가 내 아빠라서 다행이야. 아빠, 우리 춤추듯이 살자. ▶아빠/이규선 ‘딸 바보’로 불리길 좋아하는 푼수 아빠 30년간 다닌 은행에서 은퇴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시골로 가 자연인으로 살고 있다. 그러다 딸 덕분에 여행에 늦바람이 나 ‘늘 어디 갈까’ 즐거운 고민을 하는, 60대 남자이다. ▶딸/이슬기 부모님의 ‘베스트프렌드’이길 바라는 철부지 딸 평일에는 마케팅 업무를 하는 ‘삼성맨’, 주말에는 놀이 공연 강연 기획을 하는 ‘액션건축가’로 지내왔다. 5년간의 지독한 내적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 앞날을 알 수 없는 흥미진진한 삶을 선택했다. ”살다가 가슴이 허해질 때면 히말라야의 눈부신 설산과 푸른 하늘, 그 속에 나무처럼 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난다.” 지난 몇 년 간 무엇에 홀린 듯이 배낭 하나 달랑 둘러메고 여기 저기 돌아 다녔다. 그냥 여행이 좋았다. 우연히 딸, 슬기와 함께한 첫 배낭여행은 강한 중독으로 내게 다가 왔다. 의복이 남루해지고, 얼굴에 거웃 수염이 자리 잡고, 배가 등으로 갈 만큼 몸속의 기름기가 빠질 때쯤이면 낯선 곳에서의 두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