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체온보다 더 높은 날은 늘 침묵이었다 온통 뜨겁게 달아오르는 지열 속에 사방천지의 살아 있는 것들의 호흡은 잠시 멈추고 더 살기 위한 숨 고르기는 바람 한 점 없는 몽환 속을 헤맨다 오후의 뜨거운 빛은 느릿느릿 느슨하게 흐르고 나뭇잎들에 부서지는 빛의 가루들이 넓게 스며들고 불타오르는 태양을 향해 분노의 눈을 들면 수억만 개의 빛들이 생멸로 반짝여 눈이 먼다 온통 숨죽이는 대지의 인내는 먼 기억 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가고 첫사랑도 옛사랑도 마지막 사랑도 비비적거리고 온몸을 움츠리며 벌어진 땀구멍을 막아버린다 제 몸무게보다 서너 배 삶의 무게를 지고 까맣게 타버린 대지를 횡단하는 개미의 여름날 땀방울은 최고의 포식자의 배설물이다 달아오르게 하는 것들은 식히는 것들에 의해 언제나 평형을 이루는 몸부림이다. 온천지가 뜨거울수록 옷을 하나씩 더 껴입어야 하는 이 외로움은 언제 해동이 될런지 죽어도 죽어지지 않는 밤 권태의 덧문을 걸어 잠그고 더울수록 더울수록 외롭다 외로워지는 환한 밤이다. 김계종 전 치협 부의장 -월간 《문학바탕》 시 등단 -계간 《에세이포레》 수필 등단 -군포문인협회 회원 -치의학박사 -서울지부 대의원총회 의장 -치협 대의원총회 부의장
오늘 마음들 단단히 잡수세요 첫눈이 올지도 모른답니다. 불멸의 시간 사이 바람 옷을 입고 잠든 당신을 찾아낼 겁니다 오늘 마음들 단단히 붙잡으세요 달곰한 봉숭아 꽃물 흥건하게 흘러넘칠 때 첫사랑 마수걸이 시간입니다 오늘 마음들 단단히 잡수세요. 아침 까마귀 울고 모퉁이 금 간 접시 바닥을 나뒹굴어도 그 사람 떠올라 하나 두울…… 숨을 고르고 먼 하늘 가나안 땅 아부지 작은 누야 기어이 죄 많은 땅에 내려 내 마음 설레게 하네 임용철 원장 선치과의원 <한맥문학> 단편소설 ‘약속’으로 신인상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2013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
70이 넘는 친구들이 여덟 명 모였다. 배꼽 친구란다. 재잘대기는 예나 똑같다. 재잘대기에는 욕이 빠지지 않는다. 2년 넘게 만나지 못했다. 코로나 역병 때문에 그동안 배꼽 친구 두 명이 역병과 함께 갔다. 80만 원이 모였단다. 어느 더운 날 냉면 한 그릇 춥고 바람 부는 날 뜨거운 국밥 한 그릇 아마 재잘거리며 먼저 간 배꼽 친구와 같이 먹겠구나. 신덕재 원장 -《포스트모던》 소설 신인상 등단 - 한국문인협회 인권위원,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 한국 소설가협회 중앙위원 - 국제PEN문학상 소설 부분, 서포문학상, 순수문학상 대상, 대통령 표창 - 수필집 《생활 속에 흔적》 《세월을 거슬러 간 여행》, 소설집 《앙드레 사랑》 《바보죽음》
귓가에 살랑살랑 입김을 불어도 흔들리는 법이 없다 사람 따위인 양 아랑곳없이 땅속에서 보낸 인고의 시간에 취해 눈에 뵈는 게 없다 애써 인연을 만들러 서성이지도 외롭다 두렵다 힘들다 비명도 없이 메롱메롱 두 날개를 비벼 가며 사람들을 을러댄다 가던 길 멈추고 물끄러미 추파를 던져본다 타원형의 검정 얼룩에 날개의 경계를 비상하게 맞추고 보란 듯이 구애를 하고 있다 매미에게 나무가 달라붙어 있다 완벽한 보호색 신통방통한 처세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만지지 말고 바라만 보았으면 임용철 원장 선치과의원 <한맥문학> 단편소설 ‘약속’으로 신인상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2013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
그대는 서 있는 바람이오 바람이 서 있다 하여 나뭇가지와 해바라기가 흔들리지 않는 거는 아니요. 한때는 무서운 태풍이 되어 온 것을 휘몰아 감고 용트림 쳐 참뜻을 찾아내오 한때는 산마루의 산들바람이 되어 우리의 볼을 어루만지며 산듯하고 깨끗한 참을 찾아내오 서 있는 바람은 시작과 끝이 없으며 승진과 정년도 없이 항상 우리 곁에서 참뜻을 깨우쳐주오 나는 서 있는 바람을 존경합니다. 신덕재 원장 -《포스트모던》 소설 신인상 등단 - 한국문인협회 인권위원,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 한국 소설가협회 중앙위원 - 국제PEN문학상 소설 부분, 서포문학상, 순수문학상 대상, 대통령 표창 - 수필집 《생활 속에 흔적》 《세월을 거슬러 간 여행》, 소설집 《앙드레 사랑》 《바보죽음》
슬픈 새벽녘 비몽사몽 눈앞에 어른거리는 어두운 그림자 무섭다 이불속에 숨어들어 생사부(生死簿)를 고쳐 쓴다 일하러 간다 영혼일랑 차 안에 던져두고 쇠나막신 타박타박 앞서가는 할마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수면 위에 붕어마냥 뻐끔뻐끔 숨을 쉬는 당최 숨이 쉬어지지 않네 오늘 하루도 깜장 물 노랑 물 혈관에 들이붓고 눈물을 감추기 위해 마스크를 고쳐 쓴다. 임용철 원장 선치과의원 <한맥문학> 단편소설 ‘약속’으로 신인상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2013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
어둠이 찾아간 산기슭엔 아직 빛의 따스함이 말라버린 나뭇잎 거적 덮고 깊이 숨어있습니다 어제는 누군가 밟고 갔지만 그제는 누군가 눈물 흘리기만 여러 날이었습니다 바람이 불어 불어 모두 날아오른 그날이 오면 비로소 투명한 가면이라도 쓰고 그대 앞에 나설 용기가 나게 될까요 강인주 -2021년 《가온문학》 시부문 신인상 등단 -경북대학교 치과대학ㆍ대학원 졸업 -대학병원 치과 인턴ㆍ레지던트 수료 -치의학석사. 치과 보존과 전문의. -시집 《낡은 일기장을 닫다》
'우리 부모는 나에 대해 1도 몰라' 낯선 이야기 설익은 입술에서 사람 홀리는 날 선 눈빛 우린 왜 함께 살지 왜 노려보는 거야 마음을 모르겠어 도대체 왜 그러니 아이들을 1도 모르는 내 입술 잔소리로 부은 목이 통뼈처럼 굵어졌다 자정을 넘긴 시각 다시마 멸치로 육수를 내고 수프는 2/3만 묵은 김치 곁들여 보글보글 라면 끓는 소리 이 방 저 방 아이들 젓가락 챙기는 소리 울 엄마가 그랬어 “아들 은혜를 다 갚으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위에서 아래로 사정없이 사랑이 흐른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싶을 때 밥 잘 잡숫는다는 엄마 옛날보다 용 됐다는 아이들 그래 그거 하난 건졌네 그거면 충분하지 임용철 원장 선치과의원 <한맥문학> 단편소설 ‘약속’으로 신인상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2013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