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한 신부님의 강론집에서 보았던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필 박사는 몇 명의 외국인과 함께 독일을 여행하던 중 공원에서 한 무리의 소년들을 만나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사인이 끝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자동차가 오는 바람에 그는 급히 자동차를 타려다가 그만 만년필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잠시 뒤에 창밖을 보던 필 박사는 자신의 만년필을 든 채 달려오는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만년필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에 차를 멈추지 않고 창밖으로 소년에게 만년필을 가지라는 뜻으로 팔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곧 자동차를 필사적으로 뒤쫓아오던 소년의 모습도 희미하게 작아졌습니다.그리고 육 개월이 지난 어느 날 필 박사는 다 찌그러진 그의 만년필과 한 통의 편지가 들어있는 소포를 받았습니다. “필 박사님께, 그날 선생님의 만년필을 우연히 가지게 된 소년은 제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만년필을 들고 온 다음 날부터 선생님의 주소를 알아내려 애썼지요. 그것은 겨우 열 세살 어린아이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아들은 꼭 주인에게 물건을 돌려주어야 한다며 포기하지 않았답니다. 박사님의 주소를 찾으려고 노력한지 오 개월이 지났습니다. 드디어 어느 날 아들은 우연히 선생님의 글이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반대로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지기도 한다는 말일 것이다. 얼마 전 한 여류인사가 텔레비전 대담프로에서 결혼생활에 관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의 남편은 매일 저를 살인합니다. 흉기가 아니라 말로 살인을 합니다. 그러나 그이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일 많은 말을 한다. 그러기에 말의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며 종종 남에게 상처를 주기 쉽다. 친구와 마주 앉으면 습관적으로 하는 남의 험담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를 깨닫지 못할 때도 많다. 어떤 이는 말을 하는 것을 밭에 씨앗을 뿌리는 것에 비유한다. 좋은 말, 사랑스러운 말의 씨앗을 뿌린 사람은 항상 좋은 열매를 맺지만, 험담과 악담의 씨앗을 뿌린 이는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되고 고통과 어려움을 안겨주는 열매를 따야 한다는 것이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말에 대한 지혜문학의 가르침은 대단히 많고 다양하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평가받는 잣대가 된다. 사람은 누구나 말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한다. 사람과 사람을 맺어주는 일차적인 끈도 말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통해서 자신의 품위를 드러내고 다
새해 교례회에서 외부 인사를 다수 모셔 놓은데서 축배를 들고 장광설을 늘어 놓아 어색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서로 머쓱한 눈길을 주고 받으면서, 일부는 잔을 미리 비우는 넌센스를 시작으로, 마치 자신만이 최고의 지성인양 적절치 않은 풍경이나 비키니 미녀 화면을 비추고, 어느 고독한 디자이너처럼 외국어를 혼합해 강연하면서 농담을 아끼지 않는 볼썽사나운 강연이 또 반복되고 있다.우물안 개구리가 자신은 해당되지 않는 당당한 언행 자체는 가상하나 그로인한 피해자가 있기 마련이어서 간과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째서 즐거운 자리에서 팔이 아프도록 오랫동안 잔을 들고 어색한 가운데 그것도 유익하지도 않은 너스레를 지루하게 들어야 하는가?강연은 지식전달 내지 계도가 목적일진대 유식한 수준을 상대한 어려운 말과 익숙치 않은 외국어를 구사하고 쓸데없는 농담으로 시간을 뺏어야만 하는가?무식해서 유식하려고, 피곤한 몸으로 배우려고 하는 사람을 의식하는 의도가 도통 안보인다. 누구를 의식하는가? 치과의사가 아닌 일반대중을 의식한 인기유도에 중심을 둔 소위 황수관, 김용옥, 서한샘, 구성애가 연상돼 환멸까지 느낀다.강연 내용이나 그들이 마련한 슬라이드를 보면 그것이 보통 일이 아님을 알
간경화로 위독한 상태에 빠진 아버지에게 두 딸이 간을 동시에 기증, 아버지의 생명을 살렸다는 기사가 감동을 주었습니다. 두 딸이 간경화에 걸린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건강한 간을 이식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먼저 아들이 간 기증 의사를 밝혔으나 혈액형이 맞지 않아 이식할 수 없었습니다. 다급해진 큰 딸은 동생보다 자신이 당연히 간 이식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검사를 받았지만 지방간으로 판정돼 간 기증이 어렵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결국 마지막으로 둘째 딸이 검사를 받았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아버지에게 간을 떼 줄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둘째 딸은 평소 앓던 빈혈이 악화되면서 1개월을 기다린 끝에 간 이식수술을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간 크기가 작아 혼자서는 안된다”고 만류했습니다. 그러다 둘째 딸의 지방간 증세가 호전되어 자매는 병원에서 간 일부를 동시에 이식하는 2대1 간 이식수술로 드디어 아버지의 목숨을 구해 냈습니다. 이웃은 누구인가? 루가 복음서 10장에는 유명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웃 사랑’에 대해 나옵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에서 그 당시의 사제, 레위, 율법학자 등 바리사
이스라엘에서 학교나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에게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우리의 어머니는 대부분 “그래, 학교에서 재미있었니? 오늘은 선생님한테 무얼 배웠니?”하고 묻는다. 그러나 이스라엘 어머니는 절대로 그렇게 질문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어머니는 어린이에게 “그래, 오늘은 선생님한테 무엇을 질문했니?”하고 묻는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학교에서는 말만 잘 듣는 아이는 바보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선생님 말씀을 무조건 잘 듣거라”라고 가르치는 법이 없다.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나중에 훌륭한 어른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아이가 말수가 적다는 것은 사회성이 약하거나 바보스럽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성서시대에도 이스라엘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어린이의 교육에 자신들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를 세우는 규정도 아주 철저하고 세밀했다. 우선 어린이들의 학교는 위생상 사람이 많이 붐비지 않는 곳에 세워야 했다. 또한 마을 중간에 강이 있는 경우 학교를 하나 더 세워야 했다. 어린이들이 다리를 건너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학
얼마전 텔레비전에서 국회의원들과 시민단체 대표, 교수 등 사회 지도자급 인사들이 나와서 정치 현안문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어느편의 주장이 올바르냐를 떠나서 그들의 말은 그야말로 거의 싸움 수준이었다. 상대방의 말에는 귀를 막은 채 일방적으로 자기말만 해댔다. 때로는 듣기 역겨운 말까지 섞어가며 거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막말을 쏟아냈다. 오히려 텔레비전을 보고있는 사람이 수치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국민의 행복을 책임지는 정치 지도자들의 말은 일반사람들의 말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지도자들의 말이 일반 국민들에게 주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도자의 말은 책임감이 뒤따른다. 많은 이들은 정치에 염증을 느낀다고 거리낌없이 이야기한다. 이 말은 정치 지도자들의 말에 실망을 느끼고 믿음을 가질수 없다는 의미를 갖는다. 적어도 정치 지도자들의 말이 국민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책임한 말 때문에 국민들이 얼마나 좌절하고 불안해 하는 지를 잘 알아야 한다. 특히 지도자는 거짓말을 해서 위기를 넘기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마련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평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가 선행돼야 하며 중요한 의료서비스까지가 치과의 품질이다 2005년 12월 12일 부천시청에서 열린 부천시 ‘ISO 9001/ 14001인증서 합동 수여식’에서 부천시에서 서비스 부분 최초로 ‘부천모아치과’가 ISO 9001인증을 받았다. 치과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ISO 9001인증을 받기 위해 품질시스템 계획 중이라고 말한 후에 반응은 모두가 한결같았다. “ISO 9001이 뭐야?”, “그런 걸 왜 따니?”이런 무관심과 치과계에 생소한 인증제도를 따기 위해서 노력하기란 쉽지 않았다. 자료도 많이 부족했고 심사하는 심사원 측에서도 치과 심사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서로 조율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개원가에서는 생소한 이야기일지는 모르나 벌써 각 대학병원은 대부분이 인증제도를 수여받았으며 향후 치과계에 반드시 필요한 국제 인증이기도 하다.치과에서 왜 ISO를 도입해야 하는가? 치과는 엄연한 서비스업이다. 공장에서 양산된 제품을 생산하는 그런 1차 산업은 분명히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ISO인증을 획득해야만 하는 것인가?80~90년대 산업이 발전되면서 소비가 풍족해지다 보니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다른 대우를 받기를 원하기 시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생각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오 헨리가 쓴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단편소설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한 번쯤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두 부부가 성탄절을 맞게 되었습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두고 델라는 혼자 쓸쓸하게 울고 있었습니다. 성탄절인데도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선물을 살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울한 마음으로 거울을 바라보던 델라는 자기의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미용실을 찾아가 잘라 팔았습니다. 머리카락을 20달러에 판 델라는 남편의 시계에 아주 잘 어울릴 멋진 시계 줄을 선물로 샀습니다. 시계는 훌륭했지만 시계 줄이 낡아 몰래 시계를 꺼내보곤 했던 남편에겐 가장 좋은 선물이 될 듯 싶었습니다. 저녁때 집으로 돌아 온 남편은 머리를 짧게 자른 아내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랍니다. 남편이 화가 난 줄 안 델라는 머리를 자르게 된 이유와 그것이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남편이 건네 준 선물 상자를 연 뒤에야 델라는 남편이 왜 자신을 보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선물상자 안에는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아내를 위해 산 예쁜 머리핀이 들어 있었습
신재의 원장·대한치과의사협회 협회사 편찬위원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설립 기념일을 1921년 10월 2일로 지켜오고 있다. 이것은 1981년 4월 25일 경주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 총회 이후 금년이 25번째 일이다. 이러한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설립 기념일을 정할 때는 여러 가지 고증과 연구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1921년 10월 2일은 일제강점기 조선치과의사회의 설립일이다. 단순히 조선에서 치과의사에 의하여 설립된 의사회를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설립 기념일로 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는 듯 보인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필자가 일제강점기 조선치과의사회의 설립일을 1921년 10월 2일이라고 발표한 사람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3년 이전까지 일제강점기 조선치과의사회에 관한 연구가 거의 없었다고 하여도 심한 말은 아니다. 이때까지는 일제강점기 조선치과의사회는 설립 날짜나 설립자 등 몇몇 사례가 알려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에 관한 관심도 없었다. 2004년 일제강점기 조선치과의사회의 성격이나 활동에 관한 연구를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이 연구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치과의사회의 설립일을 ‘대한’ 이
몇해전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이수현(李秀賢)씨는 당시에 일본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술에 취한 한 일본인이 선로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자신도 선로로 뛰어내렸습니다. 그때 마침 플랫폼으로 들어오던 전동차를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의 의로운 죽음은 일본인들에게 희생과 용기의 가치를 새삼 일깨워주었습니다. 인간의 생명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늘 기쁠 수만은 없습니다. 어떤 때는 고생스럽지만 참된 보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급우 중에서 가난한 사람을 동급생들이 모두 힘을 합해서 도왔다는 이야기, 자기 목숨도 위태로운데 용감히 물에 뛰어들어 익사 직전에 있는 친구를 구한 이야기, 감동을 주는 이야기는 그 외에도 우리 주위에 무수히 있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용모가 잘생겼다거나, 재주가 있다거나, 돈이 많다거나, 지위가 높다거나 등 이런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용모가 잘생겼고 재주가 있고, 또 부잣집에 살고, 지위가 높아도 사람됨이 올바르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경멸합니다. 이것을 보면 사람의 가치는 역시 그 인품
성서에서는 ‘고아와 과부"를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꼽는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고아와 과부"들은 가난이나 질병이나 신체장애, 사회 환경적 이유 등으로 인해 생활 능력이 없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남자에 비해 여자의 신분이 절대적으로 불평등했는데 남편이 없는 과부의 경우에 생활의 어려움은 더 컸을 것이다. 성서에서 ‘과부’는 대부분의 경우에 단순히 남편이 죽어서 혼자 사는 여자라는 신분만을 뜻하지 않는다. 성서에서 가르치는 과부는 우선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 남편이나 아들등의 경제적인 뒷받침이 전혀 없는 여자를 가리킨다. 또는 법적 보호자나 후원자가 없는 여자를 일컫기도 했다. 과부는 이스라엘 성서시대의 현실에서 고아와 함께 최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약자로 규정되어 있다. 그 과부가 억울한 일을 겪었을 때, 어디에도 호소할 데가 없는 현실이 유지된다면 그 현실은 이 과부에게 이중의 고난을 지우는 셈이다. 남편이 먼저 죽으면 미망인은 과부의 옷차림을 해야했다. 과부가 된 여자는 아들이 없으면 고인의 형제와 살 수 있었다. 또는 자신의 친정으로 돌아가거나 나이가 젊고 지참금이 충분하면 재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