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조선의 제4대 임금인 세종이 1443년 음력 12월에 창제해, 1446년 음력 9월 상순에 반포한 우리나라 고유의 문자이고, 한글 창제시의 명칭은 훈민정음(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다. 훈민정음의 문자 체계를 해설한 한문본 책인 『훈민정음(해례본)』(https://kostma.aks.ac.kr/classic/gojunViewIframe.aspx?dataUCI=G002+CLA+KSM-WO.1446.0000-00000000.0002)은 1446년(세종 28년) 음력 9월 간행된 목판본 1책으로,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과 이 문자의 음가 및 운용법, 그리고 이들에 대한 해설과 용례를 붙인 책이다. 1940년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발견되어 현재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10월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훈민정음(해례본)』의 체재는 크게 ‘예의(例義)’와 ‘해례(解例)’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예의(例義; 예와 뜻)’는 세종의 훈민정음 서문과, 새로 만든 문자 훈민정음의 음가 및 그 운용법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은 국립국어원(2008) 역에 의하면, “한
2021년 7월 25일 중용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중용 1장은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脩道之謂敎(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하늘이 부여한 것을 일러 성(性)이라 하고, 그 性대로 따르는 것을 일러 도(道)라 하고, 道를 닦는 것을 일러 교(敎)라고 한다’로 시작한다. 공자님께서는 “나이 50에 하늘의 명을 깨닫게 되었다(五十而知天命)”라고 말씀하셨다. 50대 후반 항상 天命(천명)을 가슴에 담고 중용 글쓰기를 하였다. 하늘이 나를 태어나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2021년 초 광주 의료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이하 의료사협) 준비위원으로 활동한 후 지금은 부위원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의료사협은 장애와 노환 및 질환으로 인해 병원을 방문하기 힘든 분들을 집으로 방문을 하여 진료를 한다. 의료사협의 주축인 50대 초반 가정의학과 전문의 임원장은 대학 교수라는 안정된 직장을 정리하고 방문 진료를 하고 있는 의료사협을 준비하며 방문진료와 간호, 요양, 호스피스 관련 자료와 책들을 읽었다. 자료를 보며 호스피스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해 9월 어머님께서 임종을 맞이하게 된 것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죽음이 외롭지 않은 세상을
춘분은 경칩(驚蟄)과 청명(淸明) 사이에 있는 4절기 중 네 번째 날로 북반구에서는 이날부터 밤보다 낮이 길어지고, 남반구에서는 낮보다 밤이 길어진다. 춘분은 태양의 황경이 0°인 날로 추분으로부터 꼭 반년째 되는 날이며, 북반구에서는 태양이 황도(黃道)와 적도(赤道)의 교차점인 춘분점에 있게 된다. 춘분에는 추위가 물러가고 더위가 시작되는 날이며, 남쪽에서 제비가 날아온다. 이 무렵에 농촌에서는 봄보리를 갈고, 봄기운이 듬뿍 들어 있는 들나물을 캐어 무치거나 국을 끓여 먹는다. 24절기는 기본적으로 태양의 궤도인 황도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정해지므로 양력 날짜에 연동되어 3월 20일이나 21일이 된다. 올해 3월 20일은 춘분이기도 했고 우리가 잘 모르는 UN(국제연합)이 지정한 ‘국제 행복의 날’이기도 했다. BBC 등 외신은 ‘2024 국제 행복의 날’을 맞아 친구, 취미, 가족, 운동 등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언제나 잊지 말고 나누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국제 행복의 날은 2012년 UN 총회 당시 UN 고문이었던 제인 일리엔에 의해 제창되어 193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제정되었다. 행복은 인간의 궁극적 목적이라 규정하며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
요즘 의과계가 어지럽다. 이번엔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입장에 따라 의견이 다른 것 같다. 그 불똥이 우리한테도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던데, 그래도 우리는 많은 자료들을 갖고 있다고 하니 든든하게 생각한다. 오늘 아침 SRT를 타고 내려오는데 주요 일간지 1면과 2면 전면에 걸쳐 의사사직서 제출을 반대하는 지방대학 소아암 전공 교수의 기사가 났다. 필자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환자 곁을 떠나는 파업은 반대한다. 의학한림원 의학용어개발 및 표준화위원회 회의가 있었는데. 부산에 있는 의과대학 교수가 교수들 사직서 받느라고 바쁘다고 하면서 의사파업 이야기를 하였다. 의사파업 얘기가 나오다 보니 마침 집사람도 파업 때문에 진료가 3주 연기 되었고, 옛날에 나태한 의사 때문에 마음에 걸렸던 점도 있었고 하여 의견을 주고받게 되었다. 2000명이 늘면 뭐가 문제냐 부터 시작해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의사협회나 그 누구도 적정한 의사 수에 대한 자료도 제시하지 못하고 2000명이 많다면서 어디서 그런 숫자가 나왔는지 모르겠다고만 한다. 의사 정도 되면 우선 2000명의 근거가 된 자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종합된 의료계의 案을 내놔야 하는
내년이면 협회 역사가 100주년을 맞이한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백수(白壽)다. 오랜 역사다. 이제 치과계는 다시 한번 강건하게 용트림할 때다. 지금이라도 그 준비를 차근히 세워나갈 때이기도 하다. 새로운 백년의 미래를 열어가야 하는 이 시점에서 한가하게 사극에서나 봄직한 나이 든 양반 나부랑이처럼 주변 잡다한 일들을 다 간섭하며 웨죽걸음 할 때가 아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각 시도 치과의사회의 총회가 열렸고 이제 치협의 대의원총회만 남겨두고 모두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도 총회를 살펴보니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각 시도 치과의사회의 뉴스를 보다보면 언제나 각 지역마다 자신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함께 논의하고 풀어가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기에 항상 존경과 감사하는 마음 뿐이다. 단지 우리 치과계가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인지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광의의 주제들이 별로 없다는 점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나마 올해 각 시도치과의사회 총회가 조금 남다른 것은 부산, 대구, 충남 등 국립치의학연구원을 유치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뜨거운 유치경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슈적인 안건 말고는 서울 등 일부 치
협회에서 인정한 대한치과의사협회 창립 100주년 행사가 내년 4월 11일부터 사흘간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개최하기로 하고 작년 5월에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한국인 최초 치과의사 면허 1호인 함석태 선생이 1914년 6월 19일 개원을 하고, 당시 일제 강점기였지만 조선 땅 최초의 치과의사회인 조선치과의사회가 일본 치과의사와 함께 1921년 10월 2일 창립되었다. 그 이후 60여년만인 1981년 제30차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창립 기념일 제정을 만장일치로 의결하고 집행부에 구체적인 날짜 결정을 위임하고 기념일로 제정되었다. 하지만 2020년 11월경 치협 창립일을 앞두고 공청회가 개최되었다. 쟁점은 1981년 경주에서 개최된 대의원총회 기존 의결대로 일본인 치과의사들이 주축이 돼 조선치과의사회를 창립한 1921년을 100주년으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조선인 치과의사 7인이 중심이 되어 1925년에 창립한 한성치과의사회를 새로운 기원으로 삼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다. 당시 치협 협회사 편찬위원장을 역임한 변영남 위원장은 기존 1921년을 창립 기념일로 지정한 이유는 조선치과의사회는
용궁을 다녀왔다. 숨차고 가래 끓는 증상이 롱코비드 기관지염 때문인가 해서, 진해거담제로 3개월을 버티던 중이었다. 정기검진 받고 오던 중 호흡곤란으로 서울역 계단에서 쓰러져, 휠체어-KTX-휠체어-119 순서로 충남대병원 응급실에 이르렀다. 호흡기 걸고 40시간, 내과중환자실 사흘, 폐부종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심장 약 후유증 문제 분석을 위하여 심장중환자실 나흘, 도합 9일 만에 퇴원하였다. 전에는 하나뿐이던 중환자실(Intensive Care Unit)은 응급·심장·신경의 3개 ICU로 진화되어 있었고, 교수·간호사 모두 과로로 탈진(Burnout) 상태였다. 필자가 충남대 병원에 근무하던 70년대 말 이래 전문과 숫자는 3배가 늘고 세부전공이 분화하여, 영상의학과·내과 수술 또는 시술(施術)이라는 다양한 진료형태가 생겨나 일반화 하였다. 치의신보에 ‘피안성과 정재영’이라는 A4 5장 분량의 칼럼을 쓴 것이 2010년 4월인데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의료대란이 국가적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칼럼 내용은 ‘통합치과’ 인정을 촉구하는 목적이었지만, 의료계 인기 과가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에서 정신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로 확대되는 시점에, 생명을 다루는 필수
오래전 어느 설탕회사의 설립 초기에 있었던 일화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어렵게 사업허가를 받고 차관을 얻어 기계를 사고 기술도입계약을 맺어 공장을 세우는 데 성공하였다. 드디어 대망의 시운전을 하는데, 기계에서는 나와야 할 설탕이 아닌 원당이 쏟아져 나오더라는 것이다. 몇 번을 다시 기계를 돌려봐도 똑같았다. 공정을 점검하고 기계를 뜯어봐도 문제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 골머리를 앓던 차에, 지나가던 현장의 다른 직원이 무심하게 던진 ‘원료를 왜 저렇게 많이 넣지?’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났다고 한다. 욕심이 지나쳐 생산설비가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을 넘어서는 원료를 들이부은 탓에 제대로 완성품이 나오지 못한 것이다. 다시 기계와 매뉴얼을 확인하고 적정량의 원료를 넣자 비로소 새하얀 설탕이 제대로 생산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설탕이 귀한 대접을 받던 오래전 이야기건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있다. 첫째로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 사람의 공로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닐터이다. 국내 최초로 도입된 기계 조작에 능숙한 사람이 있었겠는가. 몇달이나 여러 사람이 매달려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것을 보면 기술
인공지능(AI)은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진 기계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으로, 70년의 역사가 있고, 크게 4번의 주요 흐름을 거쳤다. 1)초기 연구(1950년대-1970년대). 1956년 다트머스 회의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고, 앨런 튜링의 튜링 테스트를 통해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제시했고, 논리적 추론에 기반한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이 개발되었으며, 게임 플레이, 자연어 처리, 증명 등 특정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일반적인 지능을 구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2)침체기(1970년대-1980년대). 초기 AI 연구의 한계와 높은 기대에 대한 실망으로 AI 연구에 대한 투자가 감소했으며, AI 연구는 전문가 시스템, 퍼지 논리, 신경망 등 특정 분야에 집중되었고, 컴퓨팅 성능 향상과 알고리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 지능을 구현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이 많았다. 3)부활(1990년대-2010년대). 딥러닝 기술 발전과 컴퓨팅 성능 향상으로 AI 연구가 재활기를 띠었고, 이미지 인식, 음성 인식, 기계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딥러닝 기반 AI 모델이 성공을 거두고, 빅데이터 등장으로 AI 모델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 확보
20년 후 나는 81세이다. 61세인 박병기가 81세인 박병기에게 편지를 써본다. 지금 내가 꿈꾸는 것이 이루어졌는가? 결과가 궁금하다. 81세인 박병기가 61세인 박병기에게 편지를 쓴다. 61세의 꾸고 있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묻는다.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이룰 수 있었을 텐데’, 아님 ‘지금처럼 꾸준히 노력하면 꿈이 이루어진다’고 격려할 것인가? ‘퓨처 셀프’를 접하는 것은 페이스북에 올라온 광고를 통해서이다. 저자 벤저민 하디는 조직심리학자로 자기계발 분야 파워블로거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는 미래의 나를 적용하는 과학 분야에서 전문가다. 현재 <The Daily Upgrade>라는 팟캐스트를 통해 미래의 자신을 명확하게 하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정기적으로 삶의 방식을 도약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전략을 공유하고 있다. ‘20년 후의 내가 다시 돌아와 남은 오늘을 산다면 어떤 기분일까? 미래의 나는 다시 살게 된 오늘 무슨 일을 할까?’(퓨처 셀프) 1995년 나보다 4살 어린 남동생이 설 명절을 보내고 직장으로 돌아가다 고속도로 사고로 운명을 달리 했다. 동생이 죽고 나서 누나들(둘째, 셋째 누나) 꿈
우연히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 헤어지면서 “언제 밥 한번 밥 먹자”라고 하는 것은 부담 없이 주고받는 통상적인 인사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식사 자리를 같이하자고 하는 것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동안 못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서로 즐거운 시간을 갖자는 선의의 뜻이다. 모임이 정해지고 식사하게 된다면 누가 밥값을 내느냐는 서로 말은 안 하지만 언제나 신경 쓰이는 일이다. 정치인, 경찰, 기자가 함께 밥을 먹었다면 밥값은 과연 누가 낼까? 돈이 많은 사람? 힘이 있는 사람? 윗사람? 승진하거나 좋은 일이 있는 사람? 아니다! 정답은 ‘식당 주인이 낸다’라는 썰렁한 아재 개그가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과 만나 식사할 일이 많이 생기는데 대게는 힘없는 사람, 잘 보여야 하는 사람, 부탁할 일이 있는 사람, 아랫사람이나 약점이 있는 사람, 도움을 받은 사람이 밥값을 내고 힘이 있거나 윗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은 밥값을 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사람들과 따로 볼 시간을 얻기 힘드니 밥 먹는 시간이라도 기회를 잡아 대접하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밥값을 내도 좋다는 것이다. 내게 밥을 사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내게 물질적이든,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