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안경
어느 날 문득 아버지에게 필요한 물건이 없느냐고 여쭈었더니, 새로운 안경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나는 내심 놀랐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특정한 물건을 갖고 싶다고 하신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여가시간이면 소설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시던 분이 토요일 내내 낮잠만 주무시던 모습이 이상하기는 했었다. 노안(老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딸이 아버지에게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는 단어는 아니었다. 내가 잠시 머뭇거리던 찰나, 아버지는 ‘하산할 때 무릎이 아픈 것, 식당가서 주머니에 요지를 챙기는 것, 책 읽을 때 슬그머니 안경을 벗는 것 중에서도 가장 볼품없는 게 세 번째’라며 나름 유쾌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여기서 다시 한 번 놀랐다. 마침 시내의 큰 안경점에서 일을 하고 있는 아는 동생이 생각났다. 몇 달 전에 그 안경점 앞을 지날 때, 모 회사의 다초점 렌즈 광고가 크게 붙어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사실 아버지는 예전부터 시내에 있는 번잡한 상점을 부담스러워 하셨다. 옷이라도 사 드리려고 함께 백화점에 가면, ‘너희들끼리 보고 와라, 나는 여기서 기다리마’ 하고 엘리베이터 앞 소파에 앉으며 신문을 꺼내들곤 하셨다. 함께 레스토랑에 가면, 딱 식사만
- 정유란 대한여자치과의사회 공보이사
- 2016-10-28 1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