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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vs 71년생

스펙트럼

10월말에 경주에서 1년에 한 번 열리는 정기학회가 있어 다녀왔습니다. 몇 년에 한 번씩 경주에 가본 적이 있어도 학회로 경주에 방문하기는 1999년 이후 무려 18년만이었습니다. 18년 사이에 나는 얼마나 많이 변하였던가. 아니, 내 주변의 상황이 변한 것인가요? 그 때는 수련을 받을 때라 혈혈단신 자유로왔고 학구열도 넘쳤던 때였지요. 지금은 그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이번처럼 지방에서 학회가 열릴 때면 병원 스케줄 조정은 이차적인 문제고, 아이 혼자 집에 두고 와야 하기에 자유의 기쁨을 누리기 전에 내가 없는 동안, 아이와 집안일에 문제가 없도록 준비해두어야 하는 마음의 무거움이 더 큽니다.

사실 지방학회 뿐만이 아닙니다. 오늘은 이른 아침에 열리는 세미나에 다녀왔는데, 아이를 깨우고 고구마 두어 개를 에어프라이에 돌려놓고는 허둥지둥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예전에는 치의신보를 보면 이번에는 어떤 재미있는 강의가 있을까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신문을 보면서도 “어떤 강의”를 들을까가 아니라 “어떤 날짜”에 하는 세미나를 갈 수 있을까를 보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일요일에 열리는 세미나에 가서 여자선생님들을 보면 “저 선생님은 아이들을 어떻게 해두고 오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책을 추천받아 읽어보았습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다큐로 느껴질 정도로 주변에서 흔히 들어본 스토리였습니다. 상투적이고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워킹맘의 생활. 전문직은 좀 낫지 않을까 싶었으나 역시나 소설의 마지막에 나오는 의사 선생님의 모습 역시 보통의 워킹맘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미쳐버린 소설 속의 김지영씨와는 달리 현실의 우리는 미치지 않고 살아내고 있다는 점이 다를까요.

71년에 태어난 나의 삶에 비교해 82년에 태어난 김지영씨는 뭐가 좀 달라질 줄 알았는데, 10년이 지나도록 그다지 변한 게 없는 것을 보니 한창 자라나는 딸에게 미안해집니다.

워킹맘은 일과 가정이라는 공을 저글링하며 둘 다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아슬아슬한 묘기를 부리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영역 모두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이 좀 부족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넘어, 일과 가정 그리고 나 사이의 균형을 찾고,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현재를 즐기려 애써봅니다.

모처럼 일요일에 어딘가에 나들이가지 않고 오랜만에 공부라는 걸 하려고 앉았다가도 삼시세끼 가족들 식사 챙기기에 딸과 함께 빼빼로 만들어 보기.

오늘도 한쪽으로 저울이 기울어지지 않게 기우뚱거리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대통령님도 선물받으셨다는 ‘82년생 김지영’, 자라나는 우리의 딸들과 동료 여자치과의사들의 삶의 변화를 위해 우리 선생님들도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