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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의학과 플라톤의 사상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

이전 칼럼들에서도 소개했듯이, 고대 그리스에서는 의학과 철학이 상호 긴밀한 관계 속에 있었다. 우선 고대 그리스 의학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갖는 알크마이온이나 히포크라테스의 전집의 저자들은 질병의 원인을 신의 격노나 그 밖의 초자연적인 것에서 찾기보다 자연적인 것에서 찾음으로써 합리적인 의술의 길을 열었다. 그런데 이는 신화적 사고의 틀을 벗고 합리적인 사고를 시작한 밀레토스의 철학자들의 영향으로 간주된다. 이들 “자연철학자들의 합리주의의 배경이 없었다면 히포크라테스 의학은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롱리그의 말은 공연한 말 같지는 않다. 그런데 철학과 의학의 관계는 일방적으로 한쪽에서 다른 쪽에 영향을 주기만 한 것이 아니고, 여러 면에서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건강과 질병에 관한 고대 그리스 의학의 전통적 사상은 ‘히포크라테스 이전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하는 크로톤의 알크마이온(Alkmaion)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알크마이온은 우선 인간의 신체가 대립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인체를 대립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것은 알크마이온 이후 고대 그리스 의학의 일반적 견해로 되었다. 다만 무엇을 그 대립적인 요소들로 보는 게 옳은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알크마이온은 온과 냉, 씀과 닮, 건과 습 등을 대립적인 것들로 본 데 비해, 메네크라테스(Menekrates)는 피와 담즙(온)을 숨과 점액(냉)과 대립되는 요소로 보고, 페트론(Petron)은 온과 냉을, 필리스티온(Philistion)은 불(온), 공기(냉), 물(습), 흙(건)을 대립적인 요소들로 본다. 그리고 히포크라테스(Hippokrates) 전집 속에 있는 저작들에는 저자들에 따라 다른 여러 요소들이 대립적 요소들로 상정되고 있다. 그중 <전통 의학에 관하여>에서는 쓴 것과 단 것, 신 것과 떫은 것, 짠 것과 싱거운 것, 뜨거운 것과 찬 것 등이 제시되고, <인간의 본질에 관하여>에서는 네 가지의 체액, 즉 피, 점액, 황색 담즙, 검은 담즙이 제시되고 있다. 

더 나아가 대체로 고대 그리스 의학에서는 ‘건강’이란 대립적 요소들이 균형을 이룬 상태라고 보고 있는데, 이런 견해의 원형은 다시 알크마이온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발견된다. “힘들(dynameis), 즉 습과 건, 냉과 온, 씀과 닮 및 여타의 것들의 평형상태(isonomia)는 건강을 성립시키는 반면, 그 힘들 사이에서 [한쪽 것의] 지배 상태(monarchia)는 질병을 만들어낸다. 왜냐하면 한쪽 것의 지배는 [다른 쪽 것을] 파괴시키기 때문이다… 건강은 성질들의 균형 잡힌 혼합(symmetron krasis)이다.” 이 인용절에서 ‘평형상태’라 번역한 ‘isonomia’란 사회적 평등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쓰여던 것인데, 알크마이온은 그것을 인체에 적용하고, 인체의 요소들 사이의 균형(symmetria)이나 조화(harmonia)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건강이란 대립적인 요소들의 ‘평형상태’나 ‘균형 잡힌 혼합’이라는 것이 알크마이온의 견해인데, 이것은 고대 그리스 의학의 전통적인 견해가 되었을 뿐 아니라, 고대 그리스 철학의 중심적 인물인 플라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플라톤은 <티마이오스>나 <필레보스>에서 균형과 불균형이란 개념을 몸이나 혼의 질병과 건강에 대해 설명하는 데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우주 자체와 그 속에 있는 온갖 좋은 것이 생성되는 이치뿐 아니라, 인간의 좋은 삶이나 좋은 나라도 균형과 불균형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곧 그는 여러요소들의 ‘균형 잡힌 혼합’이 자연적, 인위적 온갖 좋은 것의 보편적인 생성방식이라고 보고 있다. 다음 칼럼에서는 구체적으로 의학의 전통적 견해가 플라톤의 철학 속에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기백
정암학당 학당장 역임
정암학당 이사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