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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3세기 ‘골드 심미치료’는 세계적 유행이었다?

동방견문록에 나오는 재미있는 금니 이야기
카르단단, 아즈텍, 바이킹 등 심미치료의 역사


“카라잔을 떠나 서쪽으로 가기를 닷새 만에 카르단단(현재는 중국 윈난성 다리 지역)에 다다른다. 주민들은 우상을 숭배하며 대칸에게 예속되어 있다. 수도를 보찬(Vocian)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누구나 금니를 하고 있다. 즉, 황금을 이에 씌우는 것이다. 그들은 우선 자기 이에 맞춰 황금 포피를 만들어 이것을 윗니, 아랫니 모두에 씌운다. 그러나 이것은 남자에만 한하고 여자는 하지 않는다.”

치아 심미치료의 역사는 생각보다 꽤 유장하다.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에 나오는 카르단단 부족민들의 금니가 대표적인데, 동방견문록이 13세기에 쓰여진 책임을 감안할 때 800여 년 전에 이미 금 세공을 통한 심미치료를 시행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힙합가수 릴 웨인이 뮤직비디오에서 금으로 만든 틀니를 선보이면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시점에서 이미 750여 년 전에 부족민들은 금니를 착용하고 있었던 셈이다.

남미대륙의 아즈텍에서도 귀족 취향의 치아 심미치료가 성행했다. 13세기부터 스페인 원정대의 침략을 받고 멸망한 16세기까지 부흥한 아즈텍은 고위층들이 앞니와 송곳니에 구멍을 내고 수정이나 금, 옥, 터키석 같은 아름다운 장식을 박아 넣어 자신의 신분을 치아의 화려함으로 과시하곤 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북유럽 국가의 시초가 되는 바이킹 민족(8~11세기)은 화려함이 목적이 아니라 공포의 극대화를 위해 치아에 무늬를 그려넣는 시술을 감행했다. 치아에 홈을 파거나 선을 긋는 행위를 통해 바이킹 민족 특유의 호전성을 적들에게 과시했다.

# 치아 금 장식은 만국의 유행?

위에서 언급된 카르단단의 금니 치아풍속에 대해 James Wynbrandt는 심미치료라고 정의했다. 얇은 금박으로 차이 전체를 감싸 치아 형태가 그대로 재현됐고, 영구적인 보철물로 유지됐다.

권 훈 원장(미래아동치과의원)이 대한치과의사학회지 2017년 제36권 제2호 통권40호에 기고한 ‘동방견문록에 나오는 치아이야기’를 살펴보면 금이나 보석을 가공해 치아에 심미치료를 행하는 풍습의 일단을 여럿 확인할 수 있다.

권 원장이 전하는 동방견문록의 내용에 따르면, 1560~1700년까지 마젤란 항해에 참여했던 탐험가들은 필리핀 원주민의 치아에서도 카르단단의 풍습과 유사한 금 보철물을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권 원장은 “치아 우식 또는 파절이 없는 건전치에 골드 크라운을 장착하는 것은 아메리칸 인디언, 아메리칸 흑인과 중남미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종족에서도 유행이었다. 금 보철물은 부를 상징하고, 귀, 코와 입술 피어싱처럼 치아의 장식물로 인식됐다”고 밝혔다.

20세기 초중반 미국에서는 치과에서 Gold shell crown 치료를 마구잡이로 한 흑역사도 발견된다. 권 원장은 “부적절한 치아삭제와 불량한 보철물 마진 때문에 결국 치아를 상실하게 하는 비윤리적인 치료였음에도 수입만을 추구한 치과의사들에 의해 마구잡이로 자행됐던 치의학의 부끄러운 역사”라고 부연했다.

# 조선에서도 한때 열풍

금을 이용한 장식용 치아보철은 일제강점기 시절 배출된 ‘입치사’들에 의해 조선에서도 수십 년 동안 유행했다. 신인철 선생은 ‘한국 근대치의학의 연혁’에서 당시 과시성 금 심미치료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그당시 민중의 구강위생사상은 전연 없었고, 소위 푼둔이나 있는 부자, 또는 모양 내는 멋쟁이, 또는 기생들이 보건 목적이 아니라 장식적 목적, 즉 장식도구로 알고 뻗내기 위하여 중절치, 측절치 등 건전한 치아에 금으로 전부 금관 또는 개면금관을 해씌우고 뻔적뻔적 거리며 다니는 것이 현재 ‘다이애’ 반지나 끼고 다니는 정도로 유세하였고, 일대 유행이 되었다. 이 유행은 상당한 시일동안 근 20년 간이나 그러한 악풍이 있었다.”

안종서 선생은 ‘우리나라 치과계의 금석담’이라는 글에서 일본인 치과의사들의 무분별한 골드크라운 과잉치료를 비판하기도 했다.

“일본인 치과의사는 한국이 식민지라해서 양심이나 의료인의 도의를 망각하고, 한국사람에게는 충치가 있으면 물론이거니와 무엇이던 간에 마구 금관(金冠)을 해씌우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영향이 지금까지 큰 치과의료에의 오인을 가져온 것이라 보면 내 심정은 이제 무엇이라 하면 좋을지 의분을 금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