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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스펙트럼

몇 년 전 본 영화에서 주인공이 강연을 다니면서 청중들에게 던졌던 질문입니다.

“당신 가방엔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이제 영화 제목도, 주인공이 누군지, 내용이 뭔지도 잊어버렸지만, 저 질문만은 제 마음에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내 가방엔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맘처럼 치료가 안 되는 환자들에 대한 걱정, 공부안하는 딸아이에 대한 욕심, 떨어져가는 수입에 대한 불안감, 의욕없는 남편에 대한 불만, 정치적 의견이 다른 친정엄마와의 갈등, 멋진 여행에 대한 욕구, 때때로 밀려오는 건강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잘 살고 있는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
 

오랜만에 (남자)대학동기와 카톡으로 이런 저런 애들 교육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 친구가 위로를 해줍니다.
“치과에서 일하고 피곤한데 집에 와서 저녁 준비하고 빨래에 청소에 집안일하고 공부봐주고 얼마나들 힘들겠어. 땡땡이가 엄마 마음을 조금만 이해해주고 파이팅해주면 얼마나 좋을꼬?”

친구가 써 놓은 걸 보니, 내가 정말 많은 일을 하며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것만 하나요? 쉬는 날은 친구들도 만나야지, 운동도 해야지, 취미활동도 해야지…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일상의 일들을 쉴 새 없이 하면서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요즘은 일련의 일상속에 내가 쉴 시간을 만들어두곤 합니다. 젊을 때는 침대에서는 잠만 자는 건줄 알았는데, 이제는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기도 합니다. 다음 날 피곤할까봐 걱정되어 저녁 약속을 피하기도 합니다. 공부안하는 애도 슬쩍 모른척하고, 더러워진 집은 못 본 척하고… 이렇게 게을러진 저를 보면 한심해집니다.

주변에는 아직도 열심히 살고 있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왜 이제 열심히 살기가 싫을까? 아니, 왜 열심히 살아지지 않을까?
 

하긴, 내일이면 오십입니다. 반짝반짝한 뇌로 열정적으로 움직이던 스무살보다 30살이나 더 먹었고, 자신감에 차서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던 서른살보다 20살이나 더 먹었습니다. 이제는 체력도 떨어지고 기억력도, 순발력도 딸립니다. 스무살처럼, 서른살처럼 살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내 가방에 들어있던 욕심도, 불안감도 조금씩 조금씩 꺼내어놓고, 내 체력이 할 수 있는 만큼, 내 머리가 수용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려합니다.

열정은 줄었으나 여전히 끈기있게, 천천히 내가 할 일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사는 것… 짧은 시간에 무엇인가 많이 하는 것만이 아니라 천천히, 꾸준히 할 수 있는 것도 내 나이의 열정이겠죠.

당신의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있습니까? 당신의 가방은 얼마나 무거운가요?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윤정 원장
장미치과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