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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사랑스러운/콩트 3

수원 팔달문에 있는 박 약사가 약대에 들어가면 장학금을 지원해줄 테니 나중에 본인의 약국에 와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을 때도 사랑스러운은 수녀가 되겠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약사의 말을 전해준 건 그녀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외가 쪽으로 먼 친척뻘 되는 대머리 국어 선생님이었다. 

 사랑스러운은 마치 인생 상담을 해주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같았다. 먼 동네까지 입소문이 나자 그녀는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 안에 상담실을 마련하고 예약제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녀의 부모님은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라며 ‘유 사랑스러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녀와 한 번이라도 상담했던 동네 사람들은 자신감 넘치는 그녀의 즉문즉답과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서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카페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그녀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찾아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밤새 소리 없이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낮부터 강한 비바람으로 돌변해 카페 창문에 들이치고 있었다. 카페 문을 닫기 위해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을 때, 회색 보더 스커트에 검은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비에 젖은 채 문밖에 떨고 있었다.

 “몸이 다 젖으셨네요.” 그녀는 자신이 두르고 있던 라벤더 색상의 숄을 여자에게 둘러주고는 출입문에서 가까운 자리로 안내했다. 잠시 후, 김이 피어오르는 청귤 차에 피칸타르트를 곁들여 탁자에 내려놓았다. 여자는 잠시 찻잔을 내려보다가 한기가 드는지 어깨를 움츠리며 잔을 입에 가져갔다.

 “수제 청귤 차 맛이 어때요. 자매님?”
 “절 아세요?”
 “성당에서 미사 드릴 때 몇 번 기도하는 자매님을 본 적이 있어요.”

 여자는 두 번째로 유산했다고 했다. 어쩌면 한 번의 임신 기회가 남았을지도, 아니면 영영 그 기회마저 사라졌을까 봐 불안하다고도 말했다. 비바람은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두 번이나 유산하게 된 건 제 죄가 커서일까요? 라고 찻잔을 감싸 쥔 채 사랑스러운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여자의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창문을 통해 빗줄기가 쏟아지는 회색빛 하늘을 한동안 올려다보았다.

 이곳에 카페를 열기 전까지 전 수녀였어요. 중증장애 가족들의 난방비 마련을 위한 자선바자회 행사였는데……. 그때,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하느님과의 서원을 파기하게 됐어요. 처음으로 수녀복을 벗고 사랑하게 된 남자의 품에 안기던 날, 그녀는 그날 자신도 죽었노라고 말했다.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 하느님과의 서원을 파기하게 된 건 제가 저지른 죄의 탓일까요? 아니면 저를 낳아준 부모의 원죄 탓일까요? 라고 그녀는 여자에게 되물었다. 찻잔을 쥔 여자의 떨리던 손이 시나브로 안정되고 있었다.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에요, 일어날 일이 그냥 일어난 것뿐이랍니다.” 여자의 야위고 창백한 눈동자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