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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는 치매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9)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내원하신 노인 환자 중엔 알츠하이머병 초기에 걸리신 게 아닐까 의심이 드는 환자가 종종 계십니다. 우리 치과를 오래 다니셨음에도 치료받은 것을 잊어버리시는 것은 예사요, 벌써 5년 넘게 정기 검진을 해드렸는데 서먹해 하신다거나 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최근에 어떤 할머니를 아들이 모시고 왔어요. 치주염이 심해 어금니를 더 쓰기 어려우실 것 같은데 한사코 이가 괜찮다고 주장하시더라고요. 아드님이 식사할 때마다 불편하다고 하시니 이를 빼 달라고 하시길래 발치를 시행했지만, 어딘지 석연치 않더라고요.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익명

 

우리 사회가 점차 고령화되어 간다는 증거 중 하나는 진료실에서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점점 더 많이 만난다는 사실이겠지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8년 자료를 보면 알츠하이머성 치매 질환 수진자 수는 2007년 98,630명에서 2016년 543,406명으로 5.5배 증가하였습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구강 관리에 어려움을 느낄 것은 당연하죠. 연로하신 경우 치과 치료를 해드리기도 쉽지 않은데, 치매 환자이신 경우 그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치매국가책임제에 치아 관리가 포함되길 바라는 치과계의 목소리가 널리 전달되어야 할 텐데요.

 

오늘 논의해볼 내용은 그중 일부일 거예요. 알츠하이머병 등으로 경증의 인지장애가 있는 환자의 치과 치료,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환자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정도로 인지능력을 상실한 상태는 아니며 의사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인지장애가 있는 환자의 경우, 치과 치료의 중요한 결정을 혼자서 내려도 되는 걸까요? 게다가 주로 개인의 의사결정 능력만을 따지는 외국의 경우와 달리, 우리나라는 가족, 특히 아들을 자기의 일부이자 대리자로 생각하여 결정을 위임하는 일이 많지요. 이런 자녀의 의사결정에 따라도 되는 걸까요?

 

먼저 처지를 바꿔 생각해 보려 합니다. 제가 알츠하이머병으로 인지장애가 생겼다고 가정해볼게요. 아직 심하지 않아서 주변 상황을 인지할 수 있고, ‘가끔 정신줄을 놓은 상태’에 처하는 정도일 때요. 이때, 치료 결정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라면, 아직 완전히 인지능력을 상실한 상태는 아니므로 이때까지는 제가 직접 결정을 내리길 바랍니다. 이때 고집을 피울 수도 있을 텐데, 그건 아마 제가 가진 인식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는 것에 대해 제가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겠죠. 저는 이때 만난 의료인이 저에게 친절하고 쉽게, 하지만 분명하게 상황을 설명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가능하다면, 함께 결정을 내릴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요.

 

이를 의료윤리적인 용어로 풀어낸다면 환자 자율성 존중의 원칙을 유지하되, 의사결정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로 적어볼 수 있을 거예요. 환자 자율성 존중이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환자의 경우, 그가 자율적으로 내린 의학적 결정을 다른 것보다 우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대 생명윤리가 환자와 연구참여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치료와 연구를 수행했던 여러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 파생했기에, 환자 자율성 존중이라는 원칙은 다른 것보다 중요하게 다뤄져 왔지요.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환자 자율성 존중이 답일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서 생각해 보고 있는 사례, 즉 의사결정 능력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환자의 경우가 하나의 예시가 될 텐데요. 사실 이런 경우가 아니라 해도, 누군가가 어떠한 외부적 영향도 받지 않고 온전히 자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치과의사인 제가 정기적으로 치과를 방문하지 못하는 것은 제가 가진 지식과 사회적 압력이 제 행동을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잘 관리할 수 있으리라는 만용과 혹여나 우식이나 치주염이 생겼을까 하는 부끄러움이 자유로운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막고 있지요. 우리는 모두 의사결정에 있어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의사결정 능력에 일부 문제가 있는 환자의 경우, 그 도움이 조금 더 필요한 것뿐일 테고요.

 

그렇다면 문제는 환자가 자율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로 초점이 옮겨집니다. 그것은 환자의 수준에 맞추어 분명하고 쉬운 표현으로 설명하기, 두려움, 공포 등 환자의 정서적 어려움을 고려하여 이를 줄일 수 있도록 정서적으로 지지하기, 단번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시간 여유를 주어 천천히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사이에 내용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인쇄물이나 영상물 등을 제공하기 등으로 이뤄질 수 있을 거예요.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환자가 너무 많은 선택지를 앞에 놓고 고민하게 만드는 대신 환자의 구강 건강과 전신 건강을 위해 적절한 선택지를 환자가 선택하기 쉬운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 또한 접근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예를 들면, 위 사례의 할머니에게 두려움을 가능한 한 낮춘 뒤 현재 구강 상태를 분명하게 인지시키고 발치와 후속 치료의 분명한 이점을 제시하는 것이 될 겁니다.

 

여전히 골칫거리로 남는 것은 자녀를 대하는 문제입니다. 자녀의 결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최근 연명의료 중단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데에서도 점차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환자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음에도 자녀에게 결정을 위임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는 것이지요. 이런 위임 결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틀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은 데다가, 환자 자율성 존중을 놓을 수 없는 분야의 특성상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논란이 될 것 같아요. 이를테면 질문의 사례에서 할머니의 생각과 아들의 생각이 서로 다른 경우라던가, 할머니가 의사를 밝히지 않는 상황에서 아들이 치료를 요구하는 경우 치과의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여기에는 더 많은 고민과 연구가 필요합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