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굽은나무
길가에 서서 한평생 흘려보낸
등 구부린 우람한 정자나무
검푸른 잎마다 활짝 펴
잠시 쉬어가라 한다
가지 끝으로 뻗어나는 여름
새들과 이름 모를 벌레까지 모여
맨몸으로 노래하며 악단 이룬
이 나무 그늘에 내 땀은 잦아든다
곧은 나무들은 다 어디로 가고
긴 세월 혼자 지켜온 이 자리
등 굽은 정자나무 아래 다가서면
모두가 허물 가린 길손이 된다
나는 이제까지 멀쩡한 몸으로
누구에게 즐거움 주었으랴
수많은 사연 등에 건 이 정자나무
우러러보고 다시 떠난다.
김영훈
-《월간문학》으로 등단(1984)
-시집으로 《꿈으로 날으는 새》, 《가시덤불에 맺힌 이슬》, 《바람 타고 크는 나무》, 《꽃이 별이 될 때》, 《모두가 바랍니다》, 《通仁詩》 등
-대한치과의사 문인회 초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