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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는

스펙트럼

내가 어릴 때에 우리집은 새해 명절과 추석 명절에 제사를 지냈다.

 

그래서 명절이라는 의미가 내게는 우리 가족 간에 가지는 풍성한 나눔과 즐거움의 날이라기보다는 어머니께서 힘들게 차례음식을 준비하는 때, 그리고 너무나도 많은 친척분들(아버님께서 9남매시라 작은 아버님과 고모님들 가족까지 모두 오시기 때문에 상당히 대부대이었으며 그나마 시간을 정해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아침, 점심, 저녁까지 분산되어 찾아오셔서 어머님은 하루 종일 부엌에 서서 일하셨고, 우리들은 음식 나르고 인사드리고)께서 방문하셔서 복잡하고 힘들었던 날들로 기억된다.

 

나는 그 날들이 우리 가족들 간에 오붓하게 함께 덕담을 나누고 즐기는 그러한 때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하기는 만일 많은 친척분들께서 오시지 않았더라도 내 바람대로 화목한 우리가족의 시간이 되었을지는 미지수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도 전혀 우리집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흑백 TV 속에서 그래도 크리스마스라고 영화는 ‘왕중왕’이라는 예수님 나오시는 것을 항상 방영했었고,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징글벨 캐롤은 여기저기서 들려왔는데 우리집 부모님께서는 그런 날을 즐기실 줄을 모르셨던 것 같다.

 

내 기억속에 가족들이 둘러앉아서 케이크에 촛불을 붙여서 함께 박수치면서 선물을 주고 받았던 추억은 없으니 말이다. 케이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오는 것처럼 그 당시에는 모두들 먹고 살기 바빠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우연하게도 크리스마스 즈음에 놀러갔던 친구집에는 제법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트리나 산타의 흔적들을 볼 수 있어서 많이 부러웠던 기억이 꽤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 속에는 우리가족의 그런 아쉬운 분위기를 반면교사로 삼는 마음이 서서히 싹을 텄는지 모르겠다. 내가 철이 들고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한 고등학교 3학년 학력고사를 치른 후 맞이한 크리스마스 이브에 드디어 이벤트를 가졌다.

 

광화문 뒷골목에서 싸구려 돈까스를 나이프로 자르는 특별음식을 먹었고, 캐롤이 흘러나오는 종로거리를 친구들과 함께 정말 즐겁게 박장대소를 하면서 걸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매일을 똑같은 삶을 살지 않고 매 순간에 의미부여를 하면서 즐길 때는 그럴 줄 아는 삶을 살고자  다짐했다.


그로부터 어언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10대 때에 떠올렸던 마음가짐을 열심히 실천하면서 살고 있다. 대학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만들었던 많은 동아리 활동과 MT의 추억, 그리고 서로 챙겨주었던 생일파티들은 지금도 많은 사진으로 남아있고, 결혼 후에 아내와 아이들과 가진 여러 가지 이벤트들은 어느 때에도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이야기를 꺼내면 대화거리가 되는 공동의 추억이다.

 

그 중에서 다른 분들이 들으면 모두들 깜짝 놀라는 차별화된 이벤트는 결혼기념일에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결혼식 비디오를 보는 행사이다. 결혼한 지 28주년이 되는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오고 있는데 두 딸들은 최근까지 당연히 다른 집에서도 다 그런 이벤트를 가지는 줄 알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다른 어느 집도 그런 경우가 없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서 내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집에서 하는 행사들 외에 하루 중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치과에서도 생일,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등의 많은 이벤트를 하면서 추억 쌓기를 하면서 지내고 있지만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브 날 나를 포함한 전 전 소아치과 식구들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풍기는 복장을 한 상태에서 빨간 선물주머니를 가지고 진료실로 등장하고, 선물을 주고, 그 복장 채로 진료하기를 한 지도 20년이 넘어간다.

 

 

처음에 한 번 해볼까 하고 시작했던 때에는 그 복장을 하고 환자, 보호자 앞에 등장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부끄러워서 쭈뼛거렸었는데 이제는 12월로 들어서면 약간은 마음이 설렌다.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날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 날은 꼭 아이들 좋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소아치과 가족들이 동심으로 돌아가서 즐기고, 단체사진을 찍는 날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해 동안 찍은 그 사진들을 때때로 열어보면 짜증나는 일이 있다가도 빙그레 웃음이 지어지고 다가오는 크리스마스가 마구 기다려진다.


물론 올해도 그 이벤트를 했고, 내년에도 할 것이고,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소아치과 의사가 되어서도(그 때엔 산타 할아버지로서의 분위기가 더 날 것 같다) ‘크리스마스에는’ 어김없이 산타가 되어서 아이들과 우리 소아치과 식구들과 즐길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