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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전부인 사회에서 환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14)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잘 맞지 않는 환자도 있기 마련이죠. 굳이 나쁘게 대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매번 세심하게 신경을 쓰면서 대하기도 어렵죠. 더구나 요새같이 돈 문제가 가장 중요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돈 앞에서 윤리를 말할 수 있나요? 익명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이 질문은 의료윤리에서 가장 큰 주제 중 하나인 환자-의료인 관계를 통해 살펴볼 수 있을 거예요. 환자와 치과의료인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환자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면 되는 걸까요? 치과의료인, 특히 치과의사는 환자에게 어떤 권위를 가져야 하는 건 아닐까요? 환자가 말을 들어야 치료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등등.


무언가를 생각해 보기 위해 우리에겐 개념화가 필요합니다. 환자-의료인 관계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를 생각해 보기 위해 환자-의료인 관계의 모형을 몇 가지 살펴보려 해요. 여기에는 크게 온정주의 모형, 소비자주의 모형이 있을 거예요. 더 있지만, 양극단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모형을 비교해보는 것이 나머지를 생각하기 위한 출발점이 됩니다. 온정주의 모형은 의료인의 권위를, 소비자주의 모형은 환자의 소비적 결정에 우선권을 두지요.


먼저 온정주의 모형을 볼까요? 근대로 들어서면서 의학이 축적해 나간 환자-생물학적 지식은 의사에게 비대칭적 지식 소유에 따른 힘을 부여합니다. 이 지적 비대칭성이 온정주의 모형의 핵심입니다. 온정주의 모형에서 의료인은 아버지 또는 교사와 같은 위치에서, 환자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선택해요. 이때 이를 “온정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의료인이 지식을 바탕으로 환자는 알 수 없는 환자의 선을 추구할 수 있는 주체임을 의미하지요. 즉, 환자는 자신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며, 따라서 의학적 의사결정에서 수동적인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20세기 초엽, 의학은 교육 모형을 정비하면서 이후 의학적 특권이라고 불리는 것을 확립하기에 이르지요. 의·치과대학 교육은 의사에게 결정의 권위를 부여하며, 이를 옳게 수행하는 의사가 선한 의사라는 의사상을 확립합니다.


그러나 점차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의업 또한 상업의 하나가 되었고, 의술은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인식이 현대 의학에 부가되기 시작합니다. 환자는 의사에게 의료 서비스를 구입하고, 의사는 환자에게 거래 계약에 따라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죠. 이것이 현대 의료윤리 태동기, 의료계를 흔들고 있던 소비자주의 모형입니다. 소비자주의에서 환자와 의사는 대등하게 만나며, 환자는 필요에 따른 선택을 내립니다. 여기에서 의사는 환자의 선택에 개입할 수 없고, 오로지 시장의 투명성만이 환자를 구할 거예요.
이 모형은 당시 온정주의적 의학이 노출한 한계와―환자의 이익을 의사가 규정할 수 없음―맞물렸습니다. 의사는 환자에게 유익한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그것이 환자에게 꼭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들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지요. 당시 논쟁이 된 연명의료 중단이나 임신중절,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의 생명 유지 등이 의사의 지적 권위에 도전했어요. 결국, 의료인은 환자의 결정을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이 법, 사회문화, 윤리를 주도하게 되었지요.


이것은 현대 의료윤리의 기본이 된 원칙주의(principlism)에 잘 명문화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원칙주의란 네 가지 원칙―자율성, 선행, 악행금지, 정의―을 의료윤리적 판단의 시금석으로 삼는 접근인데요. 여기에서 가장 우선하는 원칙은 환자 자율성입니다. 의사는 환자의 결정을 우선해야 하고, 그렇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내세우는 경우 심지어 좋은 뜻에서 그리할지라도 비윤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눈초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원칙 두 번째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선행(주로 의료인이 환자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거나 결정을 내리는 것을 가리킨다)에 해당할 때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인 건데요.


저는 의료인으로서, 이런 상황이 마뜩잖게 여겨져요. 굳이 환자의 아버지, 교사 역할을 맡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 의학적 지식을 지닌 자로서 환자가 자신에게 해로운 선택을 내릴 때 충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의료인으로서 지닌 의무라고도 여겨요. 물론, 이미 이런 문제는 여러 차례 제기되어 왔고, 현재 의학적 의사결정의 윤리적, 법적 요건인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informed consent)는 의료인이 환자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설명한 후 환자의 서면 동의를 받게 함으로써 환자가 아무런 정보 없이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해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을 피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제게 여전히 아쉬움을 남깁니다. 의사는 환자의 일을 놓고 함께 고민하는 자가 아닐까요?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할까요? 더구나, “충분한 설명”은 어디까지일까요? 의료분쟁 판결 사례를 보면, 심지어 환자의 서면 동의가 있었음에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환자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걸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 프로이트로부터 출발한 정신분석학은 그 후계자를 따라 지역마다 다른 열매를 맺었어요.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로부터 미국으로 이어진 자아심리학(ego psychology), 프랑스의 정신분석 이론가 자크 라캉이 체계화한 라캉주의 정신분석학 등이죠. 영국에선 멜라니 클라인을 통해 대상 관계 이론(object relation theory)이 발달하게 되었어요. 다른 이론이 개인의 힘과 욕망을 파고들 때, 대상 관계 이론은 어릴 때 부모와 나눈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아기는 부모와 맺은 관계를 간직하고 있다가, 어른이 되어서도 이 경험을 반복한다는 이론이며, 따라서 심리치료에서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을 중시하지요.


산업화는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지만, 그중에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도 있어요. 초고속 산업화를 이룬 우리나라에선 그 차이가 명확히 관찰되지요. 어르신들은 여전히 친밀한 가족 공동체를 기억하고, 어린 시절 아버지와 맺었던 시간을 추억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산업역군이라는 이름으로 내내 자리를 비웠던 전후 세대에게 그런 추억은 있을 수가 없지요. 비어있는 아버지의 자리라는 표상이 어느덧 우리 모두에게 자리 잡았어요. 이제 ‘아버지’의 자리에 놓였던 이들, 예를 들면 선생님, 의료인은 더는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없어요. 대상 관계 이론에서 보자면,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를 경험하지 못한 지금 어른들은 여전히 그 관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본다면, 환자-의료인 관계에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어요. 사회가 경제적 관계나 환자의 권리만을 중요하다고 말할 때, 이런 생각이 환자, 또는 더 나아가 사회가 지닌 부재하는 아버지의 표상에서 나왔다는 것을, 이것이 환자와 의료인이 맺는 현재의 경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려주는 일이 필요할 거예요. 우리는 그에 따라 대안적인 관계를 제시해야 할 거고요. 그렇다면, 소비자주의가 일으키는 문제 말하기, 온정주의와는 다른 대안을 살펴보기는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손에 달린 과제일 거예요.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