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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하고 성실한 내 마음에게

스펙트럼

얼마 전 핸드백을 습득했다가 주인을 찾아준 일이 있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다가, 내릴 정류장에 거의 도착하여 내리려는데 맞은 편 자리에 사람은 없고 하얀 핸드백만 하나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아까 어떤 여자 분이 앉아 있는 것을 얼핏 본 것 같은데 실수로 가방을 놓고 내리신 것 같았다.

 

내려야 할 순간인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저 핸드백을 그대로 놔두면 버스 회사 분실물 센터를 거쳐 주인에게로 잘 돌아갈까···. 버스 기사 아저씨나 경찰에게 맡기면 주인에게 잘 갈까···. 서로 믿지 못 하는 불신 사회, 대한민국의 구성원답게 여러 가지 의심을 하다가 결국 핸드백을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핸드백을 열어보니, 이런… 신분증도 명함도 주인에 대한 어떤 메모도 없다. 돈과 카드, 백화점 상품권, 시계, 로션, 사진 그리고 카드전표 한 장이 전부였다. 그냥 놔둘 것을 괜히 갖고 내렸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는데 카드전표에 적힌 상호가 눈에 들어왔다. W피부과의원···.

 

치과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 지가 즉시 머리에 떠올랐다. W피부과의원에 전화를 건다. 피부과 직원에게 카드결제가 이루어진 시간과 금액을 불러준다. 피부과 직원이 일일 장부를 살펴보아 환자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연락을 취한다. 연락 받은 사람이 핸드백을 잃어버린 사실이 있으면 좋은이웃치과 데스크에 핸드백이 잘 보관되어 있으니 방문해서 가져가시라고 한다.

 

다음 날 아침, 그대로 했고 다행히 예상대로 됐다. 핸드백 주인은 감사해하며 핸드백을 찾아갔다. 기분이 좋았다. 사실, 아침에 W피부과의원에서 카드결제가 이루어진 시간과 금액 정보를 가지고 핸드백을 분실한 환자가 누군지 찾아냈을 때부터 기분이 좋았다. 특별히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진료를 하는 아침 내내 기분이 좋았다.

 

착한 일을 했다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았던 걸까. 몇 일 전부터 진료가 하기 싫고 가슴이 답답해서 힘들었는데 그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서 진료를 기쁜 마음으로 했다. 매일 비난을 당하다가 스스로 칭찬할 일이 생긴, 그런 기분이었다. 환자로부터 잘못한 것 없이 당하는 컴플레인이 비난의 화살이 되어 내 마음에 감당하기 힘든 정죄감을 쌓았던 것 같다. 운 좋게 하게 된 착한 일 한 번에 정죄감이 떠나가고 비난을 이겨낼 수 있는 방어막,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잠시 회복한 것 같았다.

 

작은 불편 하나 하나에 뭐 잘못된 거 아니냐고 의심의 말을 쏟아내는 환자에게 시달리다가 의외의 곳에서 고맙다는 표현을 받고 나니 상처받은 마음이 조금 나은 것 같다. 신뢰받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신뢰를 얻으려 애써야 하는 상황을 견디느라 늘 고생하는, 정직하고 성실한 내 마음을 토닥토닥 위로해주고 싶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