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심미 목적을 위한 치료는 무조건 비윤리적인 걸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22)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저는 심미 개선에 관심이 많습니다. 구강 기능 개선과는 크게 관련 없다고 하지만, 전치부 보철이나 교정을 하는 일은 저와 환자에게 만족감을 주고 저는 중요한 치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전에 학교에선 이런 치료를 낮게 보는 시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치과는 미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는데, 의료보험 제도 때문에 이런 치료는 미용이라고 무시당하는 것 같아 억울합니다. 심미 개선을 위한 치료는 비윤리적인 건가요? 익명

 

 

먼저 우리가 임상에서 수행하는 치료를 분류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전통적 의미에서 구강 질환 치료가 있습니다. 우식이나 치주염 등 구강에 발생한 질병과 연관하여 나타나는 기능 장애와 불편감을 치료하고 회복하는 것입니다. 근관 치료나 지치 발치가 대표적으로 여기에 속하겠지요. 이 경우 외관은 크게 중요하진 않습니다. 둘째, 심미 치료(esthetic treatment)가 있습니다. 이것은 기능 회복에 더하여 외관 보완, 개선을 동시에 추구합니다. 교정, 보철, 수복 등 치과 치료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합니다. 치과의사는 기능 회복과 불편 제거를 가져옴과 함께 구강의 아름다움을 구현해야 합니다. 치의학이 예술과 과학의 결합이라는 오래된 표현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지요. 셋째, 미용 치료(cosmetic treatment)가 있습니다. 이 경우 기능 회복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외형이며, 이를 위해 때로 기능을 약간 감소하는 절충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백이 있으며, 턱관절과 관계없이 사각턱 축소를 위해 보톡스 주사를 하거나, 외모 개선을 위해 문제없는 치아를 삭제하여 전부도재관 보철을 시행하는 것과 같은 치료가 여기에 속합니다.


미용 치료가 시행의 주를 이루는 성형외과나 피부과와 달리, 치의학은 워낙 심미 치료의 범위가 넓으므로 미용 치료가 오히려 곁가지 취급을 받습니다. 미용 치료를 할 때도 기능 회복을 그 이유로 내세우는 때도 있습니다. 환자의 저작 기능을 회복하기 위함을 그 목적으로 꼽곤 하지요. 이런 이유는 우리가 치료에 관해 가지고 있는 생각 때문일 것 같아요. 치료란 환자의 질병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질병이란 환자에게 기능 장애와 통증 등 불편을 초래하는 것이며, 따라서 질병과는 무관한 미용 치료는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치료보다는 미용 시술에 가깝다는 생각.


이를 놓고 미용 치료는 환자의 심리적 안정이나 정서적 개선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치료라고 주장할 수 있으나, 이는 증명이 필요합니다. 외모의 개선이 심리적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은 개연성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심리적 안정이 필요하다면 다른 방법들을 시행하는 과정에서-정신과적 상담을 주로 하여-필요가 도출되었을 때 미용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미용 치료가 우선이 되긴 어렵죠.


그렇다면 미용 치료는 치료가 아니므로, 윤리적 원칙이 적용되는 분야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물론 전통적인 의료윤리의 원칙들, 즉 선행과 악행 금지 같은 것을 이런 치료에 적용하긴 쉽지 않습니다. 선행이란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하는 것인데, 미용 치료의 경우 최선의 이익을 따지기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해를 끼치지 말라는 악행 금지의 경우 미적 개선을 위해 기능을 절충하거나 하는 요소는 허락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미용 치료에선 가능한 접근이 되지요. 그렇다고 이런 부분을 완전히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영역으로 놓아두는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윤리적인, 즉 전문직의 환자를 향한 의무 하에서 시행되는 미용 치료는 무엇일까요?


우선 전문직이 개입할 때, 이득과 위해의 선을 그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미용이라는 이유로 모든 치료가 허용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까요? 환자에게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 선이라는 기준이 기본이겠지만, 이것은 자의적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적정 치료라는 기준에 호소할 필요가 있는데 다른 지면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적정 치료라는 것을 정의하기는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술자의 기능이 다르고 치료 개념도 상이합니다. 환자의 치료 요구도에 차이가 있지요. 그렇다 보니, 적정 치료라는 것은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으로 정의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치료에 있어 문제가 되는 선을 정해 줄 필요가 있지요. 이것은 기능 회복을 위해 치료를 하고, 실패 가능성이 상존하는 전통적인 치료와는 접근이 달라짐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근관 치료는 치료 실패 가능성이 있고, 이를 환자에게 설명했으며 치과의사가 치료 과정에서 충분한 주의를 기울였을 경우 치료가 실패하여 재근관 치료를 하는 것에는 잘못이 없습니다. 미용 치료의 경우에는 조금 달라야 합니다. 현재 시행하는 술식에서 의도된 부작용(보톡스의 경우, 초기 저작력이 상당히 감소하는 것), 일반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보톡스의 경우, 근 활성이 기대했던 것보다 많이 떨어져 수척해 보이는 것), 의도치 않았으며 특이적인 부작용(다시 보톡스의 경우, 다른 근육에 주사되어 표정 변화에 문제가 생기거나 침샘이 마비되는 것)을 구분하고, 이런 부작용을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더하여 의도된 부작용은 허용 가능한 것인지에 관한 표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전치부 전부도재관 보철을 위해 멀쩡한 치아를 근관 치료하는 것은 잘못일까요? 여러 개의 답이 도출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정해진 답이 있다기보다는 사례에 따라 치과계가 사회의 통념에 비추어 합의를 만들어 내야 하는 부분이 됩니다.


부작용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치료의 목적일 것입니다. 전문직이 전문직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부분은 단지 “환자가 원하기 때문에 그것을 한다”에서 벗어나는 것이죠. 미용 치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자가 외모의 개선을 원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어떤 방법을 권할지, 단지 치과 치료만이 해당 목적을 해결하는 방법의 전부인지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환자 자율성은 언제나 존중되어야 하나, 전문직은 환자와 더 좋은 방법을 고민하고 함께 실행하는 것으로 그 존재를 증명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미용 치료에서 환자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을 명확히 하고, 이를 환자의 필요와 절충 또는 조화시키는 방법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치과는 미용 치료에 있어서 새로운 접근을, 또는 “윤리”를 의과에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문가로서 환자에게 어떤 기준을 가지고 미용 치료를 권할 것인지, 상담 과정에서 환자를 설득할 수 있는지와 그 필요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넘지 않을 선이 무엇인지 설정하고 이를 함께 구성해 나간다면, 치과의사로서 단지 미용 치료를 상품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 방법의 하나라고 자신 있게 말할 방법을 마련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