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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환자에게 더 비싼 치료를 권해도 될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54)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가상 사례) 강 원장은 막 새로 치과를 연 개업의로, 최근 상황에 맞게 상당한 비용을 인테리어와 장비에 들였다. 보증금에 월세도 큰돈이 필요했기에, 강 원장은 꽤 많은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 강 원장의 치과는 환자 수를 쌓아가고 있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빠르지는 않다. 월세도 압박이지만, 최근 금리 인상으로 인한 이자의 부담이 무엇보다 심하다. 해결책으로 환자들에게 더 비싼 치료 방식을 권하거나 구강위생 기구를 판매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 방법만이 더 좋은 방법이라면 비싼 것을 권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러나, 더 저렴한 선택지들이 비슷한 효과를 보이는 데도 비싼 치료를 권하는 것은 어떨까. 예컨대, 작은 파절이나 우식에 대한 전치부 심미 치료를 위해 레진 대신 라미네이트/비니어를 권하거나, 수조작에 크게 문제가 없는 환자에게 비싼 전동 칫솔을 판매한다면. 이것은 문제일까. 문제라면 어떤 문제이고, 대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멀지 않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당 사례는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st)에 해당합니다. 이전에 이해상충이라고 많이 쓰던 이해충돌은 의료계에서 주로 리베이트 문제로만 다루어지다 보니, 진료비와 관련해서 생각되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습니다. 이해충돌 관련해선 보통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득을 얻기 위해 뒷돈을 주거나 정보를 부정 활용하는 경우가 나오기 때문에 그렇죠.

 

이 사례에서, 강 원장은 수익을 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고 있으며 그것은 본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진단이나 치료에 관한 전문가적 의사결정이 환자의 이익과는 다른 이유로 인해 영향을 받는 모든 경우를 우리는 이해충돌로 정의합니다. 예컨대, 가족이 아파서 빨리 돌아가 보려고 치과를 조금 일찍 정리하려던 원장님 앞에 응급 환자가 온 경우도 이해충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경우엔 가족 돌봄이라는 사적 이유가 환자 치료라는 전문가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 가족이 심하게 아픈 경우엔 의사가 지금 치료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진료를 거부할 정당한 사유로 인정될 수 있겠지요. 물론, 문제가 될 경우엔 법적 판단이 필요할 수도 있긴 하지만요. 저희는 여러 원인과 힘에 둘러싸여 있으며, 따라서 모든 이해충돌이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금전과 관련한 이해충돌이지요.

 

다시 사례로 돌아가면, 강 원장은 자신의 경제적 안정성과 환자에게 편향되지 않은 환자 중심의 진료를 제공할 전문가적 의무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치과가 자선사업인 경우가 아니라면, 전자를 무시할 수는 없을 거예요. 한편,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전문직에게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행동 원칙이지요. 이 사례의 해결책은 자신의 금전적인 압박을 머릿속에서 지우거나 제2, 3금융권에 의지하는 것이어선 안 됩니다. 그렇다고, 환자에게 더 나은 치료를 제공하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비싼 치료만을 권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전자는 치과 경영의 실패일 것이며, 후자는 이해충돌의 나쁜 사례로써 윤리적, 법적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강 원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몇 가지 추상적인 해결책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첫째, 아마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윤리적 마케팅 전략을 찾는 것이겠지요. 전통적인 STP(세분화, 표적, 포지셔닝) 전략 같은 마케팅 방법을 떠올려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지면상 더 다루지는 않으려 합니다. 더 많은 환자를 확보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며, 이는 저희가 더 좋은 경영 방침이나 광고 전략들을 계속 살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둘째, 경영 비용을 줄이거나 재정 상황을 재설계하는 방식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습니다만, 검토해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동료, 선후배 치과의사나 직원 팀과 함께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

 

마지막으로, 평판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리라고 믿으며, 환자에게 같은 효과나 예후라면 더 저렴한 치료법을 제공하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결국, 평판 또는 입소문으로 인해 나중에 치과 환자가 더 많아질 것을 믿으며. 이 방법은 당장 현실적이지는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경제적 압박이 견딜만한 상황이었다면, 이런 고민도 크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오랜 치과 전통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방법이 되어 오기도 했지요.

 

어려운 상황임을 알며, 송구하지만 저라고 놀라운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 중 하나가 완벽한 답이었다면 사실 굳이 제가 지면에 글로 남기지 않아도 이미 다들 그렇게 하고 계실 거예요. 하지만, 현 사례를 분석하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많은 경우 이해충돌 상황에 부닥치며, 금전적인 영역은 언제나 문제가 됩니다. 금전적인 영역을 무조건 포기하는 것은 답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금전적 이유로 인해 진단이나 치료 결정에 영향을 받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좋지 않습니다.

 

둘째, 해결책을 고려함에 있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으로 성실성(integrity)이 있습니다. 성실성은 치과의료윤리에서 고유하게 고려되는 윤리적 원칙으로 치과의사가 정직하고 진실할 것을 요청하며, 환자에게 정보를 진실하게 전달하고 사적 이익을 위해 환자-치과의사 관계를 부당 활용하지 않으며, 전문직 표준을 시인하고 준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논의의 자리가 필요한 것 같아요. 서로 함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동료 치과의사 공동체의 자리가, 그리고 성실성을 지킬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지역사회의 배경이 점차 현대 사회는 이런 것을 찾기 어려운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만, 그럴수록 더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 금전적인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는 것보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보는 자리를 만드는 데 드는 힘이 더 적기도 할 테니까 말이죠.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