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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견

스펙트럼

아내와 아이들의 성화를 못 이겨 집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강아지, 애완견을 좋아합니다. 다만 사람 사는 제 집에, 사람 말고 다른 동물이 ‘함께’ 산다는 것이 영 꺼림직하게 느껴져 반대했을 뿐입니다. 평소 청결, 위생, 소독 개념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 저희 치과의사, 구강악안면외과의사로서는 선뜻 반길 수만은 없는 조건인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녀석은 집안 곳곳을 여기저기 마음대로 돌아다니는데 깨끗한 곳, (다소) 더러운 곳을 구별하지 않고 제멋대로 다닙니다. 유감스럽게도 사실상 이 녀석이 우리집에 있는 이상 ‘청결’은 늘 의심스러운 상황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일과 삶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태도는 한결같아야 할 것입니다. 의료인인 저로서는 적어도 녀석이 침대 위로 올라가는 것만은 ‘금지’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녀석은 ‘응가’를 하고 ‘쉬’를 싼 다음 사람처럼 스스로 적절하게 뒤처리를 할 수 없습니다. 교육을 통해 지정된 자리에서 일을 보긴 하지만, 녀석이 사전에 알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후에 비로소 알 수 있을 따름입니다. 즉 녀석은 일을 마친 직후 그 상태로 이미 쇼파에도 올라갔고 아내의 품에, 아이들의 품에도 안긴 것입니다.

 

민간인인 아내의 말로는 녀석이 ‘마른 응가’, ‘건조한 응가’를 누기 때문에 별도로 뒤처리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지만, 그것은 괜찮다고 믿고 싶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지 결코 실제로 괜찮다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일 것입니다. 불결, 오염, 감염 등의 개념들이 의료인인 제 머리속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아내의 말이 실로 맞다면 사람도 화장실에서 일을 본 후 굳이 화장지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제법’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지 않는다는, 그런 나름의 상식 수준의 반론을 제기해 보고 싶지만 ‘싸고 닦는다’는 이런 이야기 자체를 아내가 이미 싫어하기 때문에 좀처럼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사랑의 힘으로, 내뱉지 못하고 가슴 속에 묻어야 하는 말들은 사랑의 크기에 비례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과 동물 사이에 기준이 다를 수 있겠지만, 한 집에서 부대끼며 생활해 가는 상황이라면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가족이라는 민간인들과 함께 살면서 속으로만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의료인인 저는 오늘도 우리집 강아지를 품에 안고 있으면서 사랑스러움 동시에 얼마간의 찝찝함도 함께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만 직업병일 것입니다.

 

사람을 보면 반가워하고 꼬리치고 좋아하는 녀석을 보면 상당히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하지만 녀석이 실로 가장 격하게 꼬리를 흔들고 살갑게 다가오는 경우는 우리집 식구들이 무엇인가를 먹을 때입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런 녀석의 모습이 특히 더 귀엽다고 하는데, 제 눈에는 그저 안쓰러워 보일 뿐입니다. 어차피 녀석이 먹을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기특해 보이기도 합니다. 가끔 녀석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을 갈구하며 아양을 부리는 녀석의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입니다. 녀석의 입장에서는 처절한,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일 것입니다.

 

녀석은 순간순간을 매우 진실하게 살고 있습니다. 특히 먹을 것을 앞에 두고서는 처절할 정도로 진실의 순간을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번 실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렬하게 꼬리를 흔들고 최대한 들러붙어 아양을 부리며 낑낑, 평소에 내지 않는 소리도 내면서 최선의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다가 가끔 한몫 챙기게 되면 (녀석도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우리 식구들이 먹고 있는 경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기가 챙긴 것만 딱 챙겨서 뒤돌아보지 않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그것을 먹는데 열중합니다. 속되게 말해, 바로 쌩을 깐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차게 꼬리를 흔들더라도 어차피 녀석이 못 먹는, 먹으면 안되는 것들 (초콜릿이나 포도, 또는 간이 된 고기 등)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허탕치는 경우가 거의 90퍼센트 이상입니다. 하지만 녀석은 늘 새롭게, 언제나 늘 새롭게, 언제나 활기차게 꼬리를 흔들고 또한 지치지 않고 아양을 떱니다.

 

인간은 동물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이상’이다는 말이 더 이상 안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더 철저하게 그러한 다음에, 비로소 그 ‘이상’이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녀석만 못하다면 인간이라도 감히 그 ‘이상’이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을까요. 스스로 그러하고 있는지, 인간인 우리도 그러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지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언제나 늘 새로운 자세로 최선을 다해 꼬리치고 아양을 부리고 있는가. 우리집 애완견, 녀석조차 그러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