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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금지를 금지

스펙트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중학교 2학년때. 학기초 수학시간에 옆 자리에 앉은 서로 데면데면한 짝꿍이 갑자기 저 선생님 이름이 뭐냐고 묻기에 정확히 기억 나지는 않지만 ‘뭐라뭐라’ 선생님의 존함을 불경스럽지 않게 알려주던 그 찰나에 왼쪽 정수리를 때리던 묵직한 타격감과 눈앞에 흩뿌리던 분필가루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앞에서 2번째 자리에 앉아 칠판에서 내 자리까지의 거리는 비교적 짧아 분필지우개를 던지는 선생님의 제구력은 완벽했고, 그 분필지우개를 포구하는 내 정수리의 위치도 완벽했던거 같다. 그 순간 칼날 같은 제구력을 뽐내시던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잡담금지’.

 

엄밀히 말하면 선생님의 존함을 친구에게 알려주는 정보의 전달이 잡담은 아니었으나, 그 날 이후 잡담은 내 머리 속에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며, 자칫 잡담을 하면 폭력적인 응징으로 나의 육체를 힘들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한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어린 시절을 보내왔다. 어른들에게 잡담은 그리 생산적이지 않은 일이며 성공의 반대편에나 있는 무리들이나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낙오의 방정식이었던 것이었다. 잡담은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일이고, 자칫 인생에서 낙오자로 자리잡게 하는 낙인이었다.

 

세상에는 뭐 이리 금지가 많은지. 소변금지, 취사금지, 반입금지 등등등.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리 소변금지라고 쓰여 있는 곳에서 소변을 보고, 취사금지라는 곳에서 왜 그리 고기를 굽는지. 금지라는 결연한 두 글자는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네 마음 속의 무언가를 자극하곤 하나보다. 가만히 두었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이 금지라는 훈장을 달면 왜 이리 그 벽을 넘어보고 싶은 건지. 사람들이 잡담을 하지 않았으면 잡담금지라는 무시무시한 금지도 없었을지, 아니면 잡담금지라는 금지가 있기에 더 잡담의 매력에 빠지는지는 알 길이 없다.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생각보다 아주 많다. 살다 보면 크건 작건 여러 계약이라는 양식들도 채워야 하고, 환자를 치료하는 숙명으로 좋은 말이건 싫은 말이건 무게감을 갖고 들어야 하는 일이 우리네의 일이기도 하다. 이와 더불어, 때로는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쉽게 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경우들도 많다. 어차피 인연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부담 없이 부담스러운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는 내가 잡담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와 정확히 일치한다. 어느 날 문득 머리 속을 우겨가며 불편함을 부여잡지 않아도 되는 잡담이라는 따스함을 함께 할 수 있는 대상을 몇 명이나 가지고 있을까 궁금했다. 세상에서 말하는 중요한 이야기가 아닌 그냥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며 낄낄거리며 가슴 속의 풍족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하루 종일 답답했던 퇴근길에 전화 한통의 잡담과 하소연이 큰 에너지로 다가오는 경험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잡담의 양이 관계를 정의한다. 잡담을 할 수 있는 대상의 크기와 양이 우리의 삶을 건강함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네 삶에서 잡담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많지 않다. 늙으신 부모님께 문안 차 드리는 전화에서 오고 가는 내용들은 살면서 백번도 더 들었던 이야기들, 어쩌면 옛날의 어른들이 쓸데없는 이야기라고 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오랜만에 만나건 매일 만나건 내 삶을 윤택하게 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가까운 이들과 나누는 잡담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대부분도 시간 지나면 잊고 마는 잡담이 대부분이다. 아들, 딸과의 관계도 잡담의 양과 빈도가 관계의 밀도와 깊이를 결정한다.

 

이쯤되면 오명이 씌어져 있던 잡담에게 미안할 지경이다. 일상을 버티는 힘과 용기를 주는 에너지의 근원이라 말해도 미안함을 감출 수 없다. 삶에서 위로를 받고 지지를 얻을 수 있던 잡담은 금지의 대상이 아니라 격려의 대상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환자들도 좋아하는 원장님이 ‘환자와 대화를 많이 나누는 원장님”이라고 하니 더욱더 힘을 내어 잡담에 몰두해 볼까 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