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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가 돌보는 사람이라고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59)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어느 강의에서 보니 치과의사가 돌보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은데, 맞나요? 돌봄은 보통 간병인이나 복지사가 하는 것 아닌가요? 굳이 돌봄이라는 말과 치과를 연결시키는 이유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익명

 

지금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집약할 수 있는 단어 중 하나로 돌봄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거시적으로 기후 위기나 대규모 집약형 축산은 환경과 동물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의 문제지요. 올해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도 돌봄의 문제들이었어요. 한국 소멸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저출생, 애초에 아이를 돌볼 수 없는 한국 환경의 문제입니다. 교육에서 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이나 모 작가의 자녀 교사 신고 사건은 지식 전달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라는 돌봄 환경에서 벌어진 충돌과 비극이었습니다. 여름, 잼버리 운영의 파탄 또한 세계 각국에서 온 청소년들을 돌보지 못한 국가와 기관의 문제였죠. 해를 이어 계속되는 장애인 이동권은 물론 기본 인권의 문제지만, 소수자에게 어떤 돌봄이 제공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사회적 합의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준 사태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제가 윤리 연구 주제로 주로 삼고 있는 인공지능과 데이터의 영역에서도 돌봄의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문제는 인간이 이런 정보 객체(information entity)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멀고 어려운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 같아 송구합니다. 가까이로 렌즈를 좁혀 보지요. 의료의 문제들은 어떻습니까. 소아과 오픈런, 필수의료 붕괴, 의대 증원 등 올해 화두가 되었던 의료적 이슈들은 환자들이 필요한 돌봄을 받지 못한다는 요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물론, 법과 정책에서부터 시작해서 한국 사회의 병폐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그 논의와 해결이 제대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까지도 치과와는 거리감이 조금 있지요. 그렇다면, 아예 치과 이야기를 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2023년 치과 관련 기사들을 모아보면 별로 달갑지 않은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특히 크게 이슈가 되었던 일로는 치과위생사에게 대신 마취를 시킨 치과의사, 환자가 보험금을 더 받을 수 있도록 허위 진단서를 발부한 치과의사에게 벌금형이 선고되었던 소식이나 연초에 떠들썩했던 간호법 관련 충돌이 보여요. 이런 판결이나 제도 관련한 일은 어떨까요. 물론 의료 제도의 문제지요. 하지만 한편, 저는 그 뒤에 돌봄의 문제가 놓여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치과의 현행 인력 체계나 실비보험 관련한 문제는 관계적 차원(치과의사-치과위생사 관계, 환자-치과의사 관계)에 걸쳐 있기 때문인데요. 예컨대 여러 선생님께서 토로하시는 직원 구인난은 다분히 관계의 문제이기도 하고(관계의 문제이기만 하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런 문제를 읽기에 돌봄이라는 관점이 좋은 통로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돌봄이라는 말이 그렇게 가깝게 다가오지는 않으시리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돌봄노동이라는 말은 보통 간병인이나 사회복지사와 같은 직업을 기술할 때 사용하는 말이지, 의료인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고, 돌봄이라는 말이 주로 요양 환경에서 쓰이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요. 저는 돌봄이 인간의 삶에서 필수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많은 직업이 돌봄노동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를 낳고 기르는 양육, 소아·청소년의 교육,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 노인이나 장애인 등에게 주어지는 요양 이 모두가 돌봄의 영역이고, 이런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을 우리는 돌봄노동을 하는 이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런 돌봄노동은 대상자의 신체적, 정신적 필요를 다룬다는 점에서도, 인간 삶의 여러 순간에서 반드시 주어져야 한다는 점에서도 무척 중요합니다. 한편, 돌봄노동은 쪼개질 대로 쪼개진 현대 사회의 사람들을 연결할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성을 지닌다고 학자들은 지적합니다. 이전, 사회를 연결하는 것이 거대 담론이나 방향성이었다면, 더는 그런 것이 작동하기 힘든 지금 각 사람을 연결할 몇 안 되는 가능성 중 하나가 돌봄노동에 있다는 지적입니다.

 

사실, 앞에서 돌봄과 관련한 여러 이슈를 살핀 것도 이 가능성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어요. 기후나 동물의 문제도 그렇지만, 저출생이나 학교 문제는 각자 다른 관점과 이해관계를 가진 우리가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돌봄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같은 정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돌봄이 제공되는 환경을 떠올려 보시면 직관적으로 이해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어머니의 돌봄을 받는 아이의 모습을요.) 돌봄이 지닌 힘을 암시하고 있지요.

 

물론, 돌봄은 오랫동안 가치 없는 허드렛일로, 공적 영역이 아닌 사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적인 것으로 치부됐어요. 조금 전에도 저 또한 돌봄을 설명하면서 “어머니”를 상기시켜 드렸으니까요.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돌보는 다양한 상황과 직군을 생각해 본다면 사실 돌봄은 여성만의 일일 이유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의료도 돌봄이라면(보건의료는 health“care”이며, 저희 치과의사의 사명 또한 구강건강을 돌보는 데에 있으므로), 우리 삶에서 중요한 일들은 이미 모두 돌봄으로 다루어지고 있지요.

 

단지, 지금까지의 통념이 삶의 현실을 제대로 살피는 것을 방해하고 있기에, 돌봄의 가치와 책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공적 “업무”(또는 “일”)와 사적 “돌봄”이 대비됐기에, 일을 하는 사람은 돌보는 데 참여할 필요가 없다고 간주해 버린 것이지요.

 

그러나, 돌봄의 다양성과 필수성을 생각할 때, 돌봄의 책임이 면제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최근의 돌봄 이론가들은 주장합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며, 사회는 서로 돌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이죠. 돌봄의 현재성은 우리가 서로에게 진 책임을 살펴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 지금까지 환자의 구강을 돌보고, 그를 통해 환자의 온몸을 살피려고 애써온 치과의사는 요구할 수 있지요. 우리 또한, 적절한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요.

 

여러 일로 힘들어하시는 주변의 선생님들을 만납니다. 특히, 많은 치과의사 선생님이 근골격계 질환을 포함하여 몸의 여러 문제로 고생하고 계시지요. 돌봄의 요구는 이런 상황에 대해 사회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합니다. 우리가 환자들을 돌보면서 얻은 병이니, 이제 당신들이 우리를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네, 돌봄을 말하려는 것은 저희가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서로 돌보는 사회 체계 안에서 새로이 우리 자신을 정의하고, 우리의 일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는 방식을 제시하려 함입니다. 아쉽게도 소개할 내용이 너무 많다 보니 다 담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더 기회가 있을 것이기에 돌봄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청하며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모든 선생님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24년 함께 돌보는 한 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