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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치의학연구원 설립에 대한 작은 바람

특별기고

2012년 11월 치의학연구원 설립과 관련된 첫 법안이 상정되고 한국치의학연구원, 한국치의학 융합산업연구원 등 여러 이름으로 변경도 되면서 몇 번의 논의와 몇 번의 좌절을 거쳐 근 10여 년이 흐른 2023년 12월에 드디어 국립치의학연구원 설립 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그간 대한치과의사협회, 각 지자체 및 지역 국회의원 등 치의학연구원 설립에 관심 가지신 모든 직역 간 노력의 결과가 아닌가 싶어 이 지면을 빌어 그간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연구원 설립을 추진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역별로 들인 공들이 상당할 것입니다. 대한치과의사협회와 별도로 지역 치과의사회에서 노력을 기울인 곳도 있을 것이고, 유치를 희망하는 지자체가 앞장서서 주도한 곳도 있을 것이고, 지루하고 긴 시간에 식어버린 열의로 설립과 유치를 희망한다는 명맥만 이어오는 곳도 있을 것입니다. 11년이라는 시간을 한결같이 보내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토록 염원하던 법안이 11년 만에 통과된 마당에 이제는 한숨을 돌리며 그동안 소홀했던 부분들도 돌아보고 해야 하겠지요. 법안이 통과되었으니 행정부 소속 공무원 중 누군가는 연구원 설립과 관련된 세부사항을 정리할 것이며, 누군가는 예산 편성 및 운영 방안들을 살펴볼 것이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어딘가에 연구원이 설립될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두어도 좋은가요? 국립치의학연구원이 어디에 어떤 형태로 어떻게 언제 들어서게 될지 관심 가지지 않아도 되나요? 설립 법안 통과를 위해 10여 년간의 공을 들인 국립치의학연구원이 대한민국 치과계의 장식장 내부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수집품에 불과한 것인가요? 단체장, 지자체장, 정부 관료들의 임기 중 업적으로 한 줄 쓰이고 마는 그런 기관인가요? 설립 법안 통과에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국립치의학연구원 설립 법안에 따르면 치의학 기술의 연구를 통해 산업진흥을 촉진하고, 기술 표준화 및 치의학 기술의 연구개발 성과의 보급확산 등을 지원하기 위하여 국립치의학연구원이 설립, 운영되어야 하며 치의학 분야에 특화된 연구개발 지원 및 전문 인력양성 등 정책적인 지원이 뒷받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과계이기 때문일까요? 요즘 유행하는 MBTI 척도 속 T여서 일까요? 설립 법안에서 말하는 목표 및 운영 방안이 다소 포괄적이고 두루뭉술한 표현들입니다. 물론 설립위원회가 구성되고 목표 및 세부적인 운영 방안들이 수립되고 나면 누구나가 다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를 응원하면서도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것 또한 연구원 설립 법안 통과 만큼이나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사실 설립 법안 통과 후의 모습을 보면 운영 방안 같은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가 더 쟁점이 되는 듯합니다. 여러 지자체가 연구원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여러 지부 치과의사회에서 행사마다 이슈 몰이에 나서고 있습니다.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와 중소도시를 막론하고 다들 나름의 논리로 무장하고 있고 유치에 혈안이 되어있는 모습입니다. 물론 과열 양상으로 치달아서 함께 해야 할 치과계가 분열되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연구원 유치를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는 모습은 치의학연구원이 더 나은 역할을 하도록 타 경쟁지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기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유치전에 정치적인, 행정적인 논리들이 등장, 개입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치의학연구원은 지역 발전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사회 간접 자본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아니란 것이지요. 대학이나 기업이 독자적으로 하기 힘든 연구과제를 수행하거나 그러한 연구를 수행할 연구인력을 양성한다든지 연구 기술을 상용화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연구원 본연의 역할일 것입니다. 적절한 인프라 위에 연구원이 더해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하는 기관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특정 지역에 대한 누군가의 약속이라는 논리는 첨단의 치의과학을 다루게 될 치의학연구원의 소재지를 정하는 데 있어서 적절한 논거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합리적이지 않으나 정치적인 선택의 예시는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몇 가지들이 떠오르실 것입니다. 물론 외교, 안보 등에서는 그러한 선택도 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치의학연구원은 합리적으로 논리적으로 위치가 선정되고 운영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정하는 것은 광고 문구에나 어울리는 글귀입니다. 치의학연구원 유치를 희망하는 많은 지자체가 있습니다. 최소한, 이 후보지들 가운데 치의학연구원 설립에 적합한 곳이 어딜지 고민해보고 선정하여야 합니다. 각 후보지의 장점을 어필할 기회가 있어야 할 것이고 그 장점들을 분석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절차가 공모입니다. 무턱대고 설립 위치를 지정하거나 설립위원회 내부에서 몇 번의 회의로 선정하는 방식보다는 대중에게 널리 알리어 공모 형태를 취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입니다.


10여 년을 기다려서 맺은 결실입니다.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빨리’ 일이 되었으면 합니다만 더 기다려도 좋으니 ‘바르게’ 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