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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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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rum

다시 산다면

 

전 승 준
분당예치과병원 원장


위잉~~ 핸드피스와 석션 소리가 그치면 하루의 일과가 마무리된다. 마무리 할 일이 남아서 직원들 먼저 퇴근시키고 책상에서 조금 더 이것저것 정리를 한 후에 전원을 내리면 좀 전 까지도 북적대던 대기실 소파위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을 보면서 경보장치를 작동시키고는 집으로 발걸음을 뗀다. 아침에 집을 나서서 병원에 도착, 그날 올 환자들의 차트를 하나씩 미리 보고나면 어느덧 환자들이 들어서서 진료가 시작되고 이런저런 치료와 상담 속에 또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게 된다. 퇴근길의 쭈욱 뻗은 고속화도로를 달리면서 머릿속에서 고등학교 학창시절이 다시금 떠오르고, 많은 조언 속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대학 학과를 선택할 때의 그 순간에 나는 치과의사의 길을 선택하였다.


노랗게 물든 숲속의 두 갈래 길, 몸 하나로 두 길을 갈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그곳에 서서 덤불 속으로 굽어든 한쪽 길을 끝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른 쪽 길을 택하였다. 똑같이 아름답지만 그 길이 더 나을 법하기에. 아, 먼저 길은 나중에 가리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는 법.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먼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느 숲속에서 두 갈래 길 만나 나는, 나는 사람이 적게 다닌 길을 택했노라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게 달라졌다고….


Robert Frost의 ‘가지 못한 길’이란 시는 어릴 때부터 내 마음 속에 왠지 모르게 깊이 자리잡고 지금까지도 자주 떠오른다. 읽고 또 읽어 보아도 무엇인가 눈앞에 펼쳐지는 내 미래의 어떤 모습이 아스라하게 떠오르면서 정말로 두 갈래 길 앞에서 서서 망설이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과 오버랩 되어진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이전에 인기 있었던 어떤 프로에서 두 가지 선택의 고민되는 상황을 두고 “그래 결심했어!”라는 유명한 대사와 함께 서로 다른 선택에 대한 결말을 보여주던 코너가 있었는데 그 속에서 한 주인공이 어느 인생의 한 선택의 순간에서 양쪽으로 방향을 정했을 때에 어떤 상황이 전개되는가 하는 것을 두 가지 선택의 삶을 다 보여주는 포맷이었다. 한 번 정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우리 인생의 흐름과는 달리 그런 대리 체험을 해주는 프로는 한 동안 인기리에 우리를 흥미 있게 해주었다. 집에서 시청하는 비디오 중에서도 일방적으로 시청만을 하는 비디오가 아닌 시청자가 특정한 상황에서 다른 스토리를 선택하여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Interactive 비디오’라 하고 영화에서도 ‘Director’s cut’이라고 해서 영화의 내용의 일부나 결말을 다르게 만들어서 색다른 경험을 하도록 해주는 기법이 있다. 이 모두가 한 번 선택하면 다시 되돌려서 살 수 없는 삶에 대한 동경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한 번 사는 인생에서 과연 무엇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정말로 정답이 없다. 우리 치과의사들은 다른 전공에 비해서 비교적 진로의 선택의 폭이 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원의 형태나 매일의 진료 스타일에 대한 고민, 그리고 직원의 채용이나 교육 등에서도 지나고 보면 아쉽기도 하고 다른 동료들을 부러워하며 지내기도 한다. 결국 매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고, 그에 따른 결과가 나오면 선택하지 않은 다른 쪽의 상황을 아쉬워하기도 하면서 지낸다. 분명히 다른 선택을 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말이다.


우리가 치과의사의 생활을 하면서 만일 이러한 상황에서의 선택을 다시 할 수 있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길을 가고 싶을까? 일단 근본적인 직업부터 보면 치과의사란 직업을 선택할까? 아니면 아예 다른 직업을? 과거를 돌아보면 한 가지 깨닫는 것이 있다고 힌다. 자신의 의지가 충분히 반영된 선택만이 후회가 생기지 않는다는 바로 그 사실!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과거를 생각하면 후회가 남는 것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현재 주어진 선택에 얼마나 자신의 의지를 불어넣는가 하는 것인 것 같다.


모 네트워크 치과 불법 영업, 치과의사 폭행사건, 치과의사 블랙리스트, 소독 안 된 임플란트 등, 연일 뉴스와 인터넷을 달구는 치과관련 기사들을 보면서 이 시대의 치과의사는 일반 분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질까? 라고 생각해보았다. 그래도 의사선생님들은 때로는 멋진 모습으로 영화나 소설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치과의사는 주로 바람둥이나, 냉혈한 등의 차가운 이미지로 많이 묘사된다. 과연 우리 동료 중에는 그렇게 훌륭한 치과의사가 없었던가? 그렇지 않다! 화려하진 않지만 조용히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성실하고 멋진 치과의사가 얼마나 많은가? 나도 그 분들을 본받고 싶다.


내가 다시 산다면, 그 인생의 직업적 고민의 두 갈림길에 서서 다시 한 번 선택을 할 수가 있다면, 그래서 나는 여전히 치과의사의 길을 걷고 싶다. 그것도 해맑은 아이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이 축복의 진료시간을 계속 느끼고 싶다. 내가 치료해준 아이가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가지고 오고, 또 태어난 아이를 데려와서 3대, 4대가 한 곳에서 진료를 받는 그런 치과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누구나 치과의사를 꿈꾸며, 치과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노래하는 그런 멋진 그런 곳에서 항상 생활하고 싶다.


조동화 시인께서는 ‘나 하나 꽃 피어’라는 시에서 나 하나 꽃 피고 나 하나 물들어 풀밭이 꽃밭 되고 온 산이 활활 타오른다고 하였다. 흔히들 나 혼자 애써서 뭐가 변할 수 있을까? 라는 마음에 그냥 대충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역으로 모든 이들이 나만이라도 올바른 길을 위해서 정열을 가지고 일한다면 정의로운 치과환경은 절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고 마음속에 다짐해 보면서 오늘도 내 앞에 펼쳐지는 두 갈래길 중에서 후회 없는 선택을 하리라 다짐해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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