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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였다고, 평소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이 새해 인사를 나누려 문자도 보내 주시고, 전화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수고스럽게도, 엽서와 편지를 보내 주셨습니다. 이렇게 정중한 편지를 받았을 때에는 감사한 만큼이나 편지로 답장을 드려야하는데, 부끄럽게도 몇 년 전부터 편지를 안 쓰다 보니, 메일이나 간편한 문자로 의무를 다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새해 인사를 나누려 보내 온 편지 중에 꼭 답장을 편지로 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는 가슴 뭉클한 사연이 있습니다. 


『신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늘 영육 간에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신부님, 저는 올 한 해 마음의 목표를 나의 약점 돌아보기로 정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부님, 몇 일 전 연말이라 부모님 댁에 아내와 인사드리러 간 적이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몇 달을 가지 않다 보니, 오랜 만에 찾아 뵌 부모님 댁에서 인사드린 후, 효도 한답시고, 이리 저리 둘러보면서, 혹시나 내 손길이 필요한 것이 없나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어머니는 빨래를 삶고 있었습니다. 순간 놀람과 한숨이 동시에 나왔습니다. 사실 어르신이라 깜빡하거나 해서, 혹시 불이나면 어쩔까 싶어서, 몇 달 전에 빨래 삶는 기능까지 갖춘 꽤 괜찮은 세탁기를 새로 사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탁기에 있는 ‘삶음 기능’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또 다시 가스렌지에 세탁물을 삶는 것을 보면서, 짜증난 목소리로 어머니께 물었지요. 왜 세탁기의 삶음 기능을 사용하지 않느냐고!


그러자 어머니는 세탁기 기능이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며, 그냥 세탁기는 간편한 것들을 빨 때에만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리 좋은 세탁기의 좋은 기능들을 잘 쓰지 않는 것이 속상하고, 화가 나서 어머니께 큰 소리로 말했지요. ‘어머니, 지난 번에도 작동 방법을 일일이 설명해 드렸잖아요. 그리고 이 세탁기는 왠만한 기능을 다 한다고! 혹시나 집에 불이나 나면 어떡하시려고 이렇게 가스렌지에 빨래를 삶으셔요!’ 어머니께서도 미안한지, 다음부터는 세탁기의 여러 기능을 잘 쓰겠다고 하셨고, 나는 또다시 어머니께 작동 방법을 가르쳐 드렸지요.


그런데 신부님, 그 날 저녁에 직장 일로 중요한 메일을 확인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부모님 댁에는 인터넷이 없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인터넷 기능이 되는 핸드폰으로 메일을 확인한 후에 이내 답장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핸드폰을 주로 전화하거나 문자를 주고 받는 기능으로 사용하다 보니, 갑자가 핸드폰의 인터넷 사용 방법에 대해서 생각이 나지 않더군요. 그래서 큰 아들에게 물었지요, 방법을 좀 가르쳐 달라고! 그러자 아들 녀석이, ‘아빠는 전화 받거나 문자만 사용하려면 간단한 핸드폰으로 바꾸세요. 뭐 그리 사용 기능 복잡한 비싼 핸드폰을 써요? 그리고 지난번에 메일 쓰는 방법 가르쳐 드렸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신부님, 아들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늘 낮에 어머니랑 있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면서 순간 ‘아… 어머니, 지금의 내 마음이 들었겠구나!’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있고, 나는 내 나름대로 지금까지 살아온 방법이 있고, 우리 아들 녀석도 자기가 살아온 방식이 있는데, 세상의 중심이 내 방식으로만 고집을 하다 보니, 어머니를 탓하게 되고, 아들에게 핀잔을 듣게 되는 것 같아요.


신부님, 가전 제품 쓰는 방식 뿐 아니라, 일상에서 가만히 나를 돌아보면, 나도 잘 모르면서, 아니 나도 부족한 사람이면서, 때로는 자주 내 삶의 방식대로 주변 사람들을 대할 때가 참으로 많았던 것 같아요. 내 삶의 방식만 옳다는 독선을 인정하고, 그것을 통해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많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는지, 내 약점을 통해 내 자신의 살아온 방식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겠지요. 신부님, 편지가 너무 길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 편지를 읽고, 그 분의 이야기였지만, 나에게 하신 말씀 같았습니다. 그리고 올 한 해 내 자신부터 어떤 부분이 변화되어야 할런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나도 잘 모르면서, 아니 나도 부족한 사람이면서, 내 방식대로의 삶이 옳다고 독선을 피우고, 내 뜻대로 안되어 짜증내고, 힘들어하는 내 모습부터 보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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