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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오라

두 발로 오라


변경수 목사
동녘교회


세계문화 여행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세상에 참으로 다양한 문화와 종교, 생활방식이 있음을 새삼 알게 됩니다. 세상 구석구석에 각양각색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의 모습에서 공통점으로 발견되는 것은 신(神)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신에 대한 대상이나 신앙의 내용, 형식은 다르지만 예를 갖추고 신을 대하는 겸허한 모습은 다 같습니다. 하나같이 진지하고 간절합니다.


연약한 인간이 절대자에게 자신의 안전과 안녕을 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신께 복을 비는 ‘기복(祈福) 신앙’은 인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 기복신앙을 미신이라고 터부시하기도 합니다만 기복신앙이 문제가 아니라, 책임감 없이 자신의 것만을 달라고 복을 비는 기복주의가 문제입니다.


새벽에 정한수 떠놓고 지극정성으로 천지신명께 가족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모습이나 가축을 방목하기 위해 몇 개월 집을 비우는 남편의 머리에 안전을 기원하며 버터를 바르는 티벳 여인의 간절함에서 인간미를 느낍니다.


천국가기 위해 교회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하느님을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동기가 어떠하든 그것이 그로 하여금 삶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원인이 된다면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천국가기 위해 믿는게 천박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천국가기 위해 믿는걸 저급하다고 생각하며 악하게 사는 것보다는 백배천배 낫습니다. 천국가기 위해 현세를 악으로 규정하고 외면하는 것이 나쁜 것이지, 천국가기 위해 남을 돕고, 사랑하며 살려하고,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않는 신앙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을 이성과 합리성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요? 어떤 이는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믿는다고 하고, 믿음은 이해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성이 배제된 믿음은 맹목과 광신의 위험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적 합리성을 갖춘 신앙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성(머리)이 강조된 신앙은 실천(가슴)이 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말은 잘하는데 행동이 빈약한 것이 이성을 토대로 하는 신앙인의 약점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형식이 중요해? 내용이 더 중요하지!’ 하면서 정기적 종교활동을 소홀히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정기적 종교활동을 하는 이들은 바보라서 그렇게 하는 걸까요? 신앙은 정성입니다. 절대자에게 온몸으로 바치는 나의 노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행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것이고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성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행함으로 믿음이 완전해진다’(야고보서 2장)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라고 합니다. 박노해 시인은 ‘두 발로 오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는 머릿속의 진리를 믿지 않는다/ 네 입술의 사랑도 뜨거운 가슴도/ 이젠 누구도 믿지 않는다// 나는 오직 네 발길이 가는 곳/ 너의 두 발이 딛고선 자리의/ 발자국의 무게만을 믿을 뿐이다// 마음 가는 곳에 몸은 가지 않지만/ 발이 가는 곳에 마음은 늘 함께 했으니/ 오라, 두 발로 오라, 내 사랑이여/ 너는 나직한 발자국에서 피어났으니

  

‘나는 더 이상 머리로만 진리를 받아들이고 떠드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두발 딛고 서 있는 자리가 어디냐, 그 자리가 그의 모습이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노동자로, 혁명가로 치열한 삶을 살아온 시인의 가슴 찢는듯한 외침이 들려오는듯 합니다.


위대한 성자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신학자였습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라는 큰 학문적 업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이 분의 믿음과 학문은 가봉으로 가게 했고, 거기서 50년 넘게 예수님의 삶을 실천하며 믿음을 완전하게 했습니다. ‘두 발로’ 믿음을 확증한 것입니다. 


어떤 이의 믿음의 내용이 약간 미숙하고, 비이성적이고, 답답한 구석이 있을지라도 그의 삶의 모습이 이타적이고 하느님의 말씀을 애써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나누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고, 섬기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가 이제는 더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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