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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적이 얼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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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적이 얼마예요?


전 승 준
분당예치과병원 원장

  

출퇴근용으로 이용하는 차가 2005년에 구입했으니 어느덧 나이가 8년이 되어간다. 그러다보니 달린 거리는 그리 많지 않아도 이제 슬슬 부속이 하나 둘 수명이 다하는가보다. 한 달여 전부터 약간 높이가 있는 둔턱을 지나갈 때 마다 ‘삐거덕’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쩌다 그런가보다 생각했고 차의 본질인 달리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어서 애써 무시하면서 참고 지내오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소리가 더 커져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결국 차량정비소를 방문해야지 하고 마음먹게 되었다.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시간을 할애해서 고치러 가는 것을 차일피일 연기하다가, 어느 날 친구와의 약속장소에 이상하게도 1시간 이상 일찍 도착하게 되어 시간을 보낼 방법을 강구하던 차에 눈앞에 한 차량정비업소가 눈에 보였다. 집에서는 먼 곳이었지만 수리가 간단하면 해야지 하고 들어갔다. 차량의 증상을 이야기하고 직원분이 시운전과 검사를 하는 것을 휴게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점검하는데 시간이 꽤 많이 걸리기에 ‘심각한 상황인가?’하는 생각에 조금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체크를 마친 직원이 휴게실로 들어와서 전문용어를 섞어가면서 설명을 해주는데 이런저런 장황한 내용과 더불어서 결론은 거의 100만원 정도를 들여야 수리를 마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집도 멀고, 원래 예상한 금액보다 너무 높으니 오늘은 꼭 필요한 것만 고치면 안되냐고 물어보니 조금은 무시하는 분위기로 지금 전체적으로 수리하지 않으면 조만간 또 탈이 날거라고 겁을 주면서 수리를 종용하는 것이었다. 부담되는 마음에 결국 거절하고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하고 나오게 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집 근처에 있는 원래 이용하던 다른 정비소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다시 그 설명과 검사과정을 반복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견적이 20만원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주요 증상에 대한 원인파악은 같은데 말이다. 지역적인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너무 많은 비용의 차이였다. 이전의 정비소가 바가지를 씌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이 들었다. 결국 저렴한 수리비로 고친 후에 차는 전혀 소리도 안나게 되었고 이후로 지금까지 만족스럽게 잘 타고 있다.


치과에 방문하시는 환자분들 중에 노골적으로 ‘견적을 알아보러’ 왔다고 하시면서 여러 병원의 치료비를 비교하시려는 분들이 최근에 많이 생긴 것을 느낀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분명히 우리가 의료의 가치를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분들 중에는 치과치료과정을 기능 쪽으로 생각하시는 분도 많다는 것을 느낀다. 아무리 우리가 그것을 부인하려고 해도 말이다. 우리가 현실은 인정하고, 그 인식을 어떤 노력을 해서 바꿀 수 있을 것인가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야할 것으로 생각된다.


경험을 예로 든 차 정비소에 관한 것을 치과에 적용해본다면, 어느 환자가 평소에 약간씩 불편한 치아가 있었지만 씹는 기능은 크게 문제가 없어 바쁜 와중에 그냥 버티고 지내다가 어느 날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시간이 남아서 간단하면 치료받아볼까 하고 치과를 방문했는데 긴 시간동안 진단과정을 거친 후에 상담된 향후 치료에 관한 내용은 환자의 생각보다 매우 높은 금액의 치료비용 산정이 되었다라는 것이다. 환자가 치료의 내용이 잘 이해가 가지 않고,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산정되어서 부담된다고 했는데 그 상황에 맞춤의 진료계획을 세워주지 않아서 결국 치료를 받지 않고 나오게 되었고, 집 근처의 다른 치과에 가보니 치료비가 1/5 수준이어서 그곳에서 치료를 받고 원하는 결과를 얻었으며 처음 갔던 치과가 장삿속인 곳 이었나보다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라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차량정비소와 치과를 단순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있지만 고객(환자)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것을 개선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돈으로 지불한다는 상황은 똑같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고맙게도 나에게는 이번에 차를 수리하면서 진행됐던 일련의 과정들이 내가 병원에서 여러 환자들과 만나고 상담하고, 치료하면서 과연 그분들의 입장에서 진정으로 생각하고 소통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덴탈 IQ가 높지 않은 분들에게 나의 어설픈 지식을 강요하면서 그분들이 이해하기를 억지로 바라지는 않았는지, 또 그분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는지 반성도 해보았다.


사회 전반적인 현상과 마찬가지로, 또는 그 이상 의료계도 이전과는 많은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어왔다. 단순히 아픈 것을 cure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care 해달라고 요구되어진다. 질병의 제거뿐만 아니라 환자의 향후 삶의 quality도 배려해드려야 한다.


필자가 수년 전에 대장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받았던 경험은 또한 병원과 환자에 대한 서로의 입장 차이를 너무나도 극명하게 느낄 수 있었던 사건이었기도 하다. 당시에 종양덩어리가 항문에 너무 근접한 곳에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평생을 옆구리에 인공장루를 이용해서 변을 배설해야할 지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아직 보편화가 되어있지는 않은 ‘복강경수술법’을 어느 중소병원에서 소개받고 확인을 위해서 대형대학병원을 방문해서 문의를 했더니 그 교수는 너무나도 환자를 무시하는 어조로 그런 치료법은 당신에게는 맞지 않는 방법이며 도대체 어느 누가 그런 말도 안되는 말을 했느냐 라고 야단치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상해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그 때의 그 모멸감이란… 그런데 어이가 없었던 것은 그 교수가 지금은 그 수술법으로 나와 같은 case를 치료하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됐다는 것이다. 지신의 입으로 절대로 말도 안된다던 그 방법으로 말이다. 의료인이 자신의 권위를 손상받는다고 생각하면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의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 교수를 다시 만난다면, 비록 본인이 제시하는 치료법과 다른 것을 문의하는, 암으로 당황하고 근심에 쌓여 있던 불쌍한 환자의 마음을 조금만 더 따듯한 말로 어루만져 줄 수는 없었는지 한 번 물어보고 싶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라는 명제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일 것이다. 과연 환자가 본인의 치과치료 비용을 문의할 때에 견적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환자의 수준 문제인지 우리 치과 의료진이 스스로 자초한 것인지 누구도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일선에서 진료하고 있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부터 환자의 마음까지 돌보아드리는 진료와 상담을 해드린다면, 우리 세대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할지는 몰라도 그것이 작은 씨앗이 되어서, 먼 훗날 언젠가는 치과의료의 진정한 가치를 일반 국민들이 대부분 알게 되는 세상이 오리라고 확신한다. 그 멋진 날을 꿈꾸며 오늘 아침도 아이들과의 즐거운 시간을 꿈꾸며 병원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뎌 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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