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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역사 만들기

월요시론

미국 연수시절 은사 오킬 교수는 이슬람 교도이다. 몇 년전 그를 서울로 초청해 이태원 이슬람중앙사원을 함께 방문했다. 사원으로 향하는 좁은 골목에는 이슬람 계율에 따라 도축한 하랄 음식을 파는 가게와 아랍어로 쓰인 여러 간판들이 즐비했다. ‘서울에 과연 이런 곳이 있었나?’ 할 정도로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마침 금요일 점심 기도시간을 맞은 사원 안은 많은 신자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는데, 내 눈에 신기했던 것은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손에 들고 있는 신자가 한사람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의 설명으로는 이슬람 교도는 누구나 어릴 때부터 신약성경보다 많은 114장의 아랍어 코란 전부를 외우기에 굳이 두꺼운 코란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몽골에서 만난 우형민 회장의 꿈은 출판사업이다. 20년 전 한국과 몽골의 외교관계가 수립된 직후 손가방 하나 달랑 들고 울란바타르 공항에 내렸던 그는 조그만 식당을 시작으로 몽골 최대 부동산개발회사인 몽골서울그룹을 일궈냈다. 소탈한 그가 여생의 봉사로 몽골에서 출판사업을 하고 싶어하는 것은 몽골역사가 대부분 구전으로 전승되어 칭기스탄 시대를 비롯한 영광된 역사가 책으로 남아있지 못한 것이 오늘날 몽골인들이 책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 여겨져 안타깝기 때문이라 한다.

이슬람의 코란 암송과 몽골의 구전 관습은 유목생활이라는 공통된 환경적 요인이 배경에 있다. 물과 풀을 찾아 사막과 초원 사이를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유목생활의 키워드는 ‘단순함(simplicity)’이다. 갈아입을 최소한의 옷가지와 간단한 가재도구 외에 부피가 큰 책 같은 것은 오히려 짐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쓰여진 책은 없어도, 밤이 되면 초원과 사막의 별빛을 배경삼아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그 아들은 또 손자에게 구약 이야기와 마호메트의 가르침, 그리고 옛날 옛적 칭기스칸의 영웅담을 신나게 들려주었을 것이다.

반면 농경과 유교문화가 접목된 동아시아, 특히 우리나라는 기록문화가 풍성하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문화유산만 보더라도 일본, 중국보다 한국이 월등히 많다. 훈민정음은 물론이고 직지심체요절,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모두 11편이 등재돼 있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다. 유럽의 경우엔 주로 개인의 악보나 원고가 주가 되지만, 우리나라는 옛 왕조의 공식기록물이 대부분이다. 규장각 문헌도 방대한 양일 뿐 아니라 민가에도 조상의 개인문집들이 아직 얼마나 많이 있는지 다 파악되지 않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 이처럼 훌륭한 기록문화의 DNA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닌가?

필자가 속한 대한치주과학회에서 최근 2년동안의 활동을 담은 연보를 만들어 국회도서관과 언론사 등 주요기관에 배포하였다. 분과 학회 차원의 연보 제작은 이것이 아마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3년 전 학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50년사’를 만들 때 과거의 누락된 기록을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이 계기가 되어,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연보를 기획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하찮은 일이라도 훗날에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는 원칙 아래 가능한 한 모든 학회 활동을 담으려고 노력하였다.

3, 4월은 협회와 소속 지부, 그리고 많은 분과학회의 집행부가 임기를 마치고 새 팀에게 회무를 넘기는 시기이다. ‘기록되지 않은 과거는 역사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힘들여 노력한 흔적들을 잘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것으로 작은 역사를 만들기 바란다.
구 영 서울치대 치주과 교수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