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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고립하고자 떠난 여행이었지만…

Relay Essay-제1919번째

지난 1월 실습을 마치자마자 바로 여행을 떠났다. 온전히 자신만으로 고립된 곳에서 있고 싶었다. 언어도 환경도 달라서 믿을 것이라곤 자신 밖에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2013년을-비록 25년 밖에 안 살았지만-25년의 인생 중 가장 바쁜 해로 보냈기에, 여유도 찾을 겸 떠난 여행이었다.

여행지는 지난 여행들과는 달리 딱히 가보고 싶은 곳이라곤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지은 SF MOMA(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s) 하나뿐인 샌프란시스코로 정했고, 정한 이유도 역시 그 동안 관심이 없었지만, 친동생의 적극 추천으로 단순하고 게으르게 결정하였다.

비행기 안에서 시차적응을 마치고, 내린 샌프란시스코의 공항은 전형적인 미국 같았다. 무엇보다 햇살이 따스해서 기분 좋게 공항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지역 전철인 BART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 있어서 나에게 진정한 여행의 맛을 알게 한 숙소이기도 했다. 여자 혼자 ‘총기소지’가 자유인 국가로 떠나는 여행이라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한인민박으로 숙소를 정했는데(부모님께서 나의 행방을 찾기 쉽고, 연락도 쉬운 곳이라는 판단 하에), 이 곳에서 나는 생각은커녕 오로지 나의 모습인 채로 자유롭게 웃고 떠들다 용기를 얻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스스로 고립시킨 채, 나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숙소에 있는 사람들과는 ‘사무적인’ 태도로 인사만 간단히 하고,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조차 줄이려 여행객들이 거의 나갔을 무렵 아침식사를 하러  갔고, 아침에 외출을 했다가도, 저녁에는 사람들이 들어오긴 전에 미리 들어와서 침대에서 책을 읽거나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민박집 사장님의 추천으로 같은 숙소에서 묵고 있는 미술을 가르치신 다는 교수님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고, 이번 여행이 ‘신나는 여행’으로 전환되는 일이 발생했다.

민박집에서는 사장님께서 2~3일에 한 번 꼴로 와인파티를 여셨는데, 민박집에 머무는 사람들과 서로 여행이야기도 공유하고, 친목을 도모하고자 만든 자리였다. 그 자리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숙소에 묵은지 4일 만에 그 자리에 함께하게 되었고, 여기서 진짜 여행은 시작되었다.

술자리의 매력이 사람 사이의 어색함을 없애고, 대화 테이블을 풍성하게 해준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모두가 여행객들의 ‘민낯’으로 모인 자리였기에 그 술자리는 여느 술자리와는 달리 서로가 갖고 있던 ‘사회적 가면’을 벗고 오롯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였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사람의 숲에 있어 진정한 여행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샌프란시스코가 자랑하는 Golden gate의 위용에 감탄하고, 황홀한 아침 햇발이 금빛 주단처럼 깔린 바다를 유유히 가로지르는 흰색 요트에 감동한 일, 두꺼운 원서를 끼고 미국의 사립 명문 스탠포드대학의 드넓은 교정을 산책하는 일 등은 평생 내 여행 책 갈피에 고이 간직될 추억들이겠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을 거울삼아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은 무엇보다 소중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으로부터 도피하고, 스스로 고립하고자 했던 내 여행은 ‘철저히’ 실패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의 숲으로 성공적인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여행은 사람’이라는 명제를 새삼스레 깨달았던 경험이었다.

김나경  연세대 치위생학과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