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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치과의사

스펙트럼

어느 토요일 오후, 이제 10분만 지나면 즐거운 퇴근시간! 예약해놓은 영화를 아내와 보러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진행된 환자아이들은 어린 남자형제였는데 귀엽기도 하지만 치료를 스스로 보호자 없이도 잘 하는 아이들이어서 함께 오신 아버님은 다른 환자분들 계시지 않는 조용한 작은 대기실에서 쉬고 계셨다.

아이들을 이런 저런 치료를 해주고 잇솔질 교육까지 다 마치니 어느덧 한 시간 이상 소요되어 아버님께서 꽤 지루하셨겠다 싶어 직원이 아이들 치료 잘 마쳤다라고 알려드리러 대기실로 갔다가 공포에 질린 놀란 표정으로 내게 뛰어왔다. 보호자분이 대기실에 쓰러져계시고 의식이 없다고 말이다….

깜짝 놀라서 함께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대기실 소파에 아버님께서 옆으로 쓰러져서 눈을 감고 계셨고 흔들어 깨우면서 대화를 시도해보아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vital sign을 체크해보니 다행히 맥박이 약하긴 하지만 잡혔고 호흡하는 숨소리도 느껴져서 약간 안심을 하였지만 그래도 빨리 진료실로 옮겨서 응급용으로 비치된 산소를 공급해드리니 다행히 아주 약간은 의식이 돌아오시면서 작은 소리지만 대화를 할 수가 있었다. 본인도 왜이런지 모르겠는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고 어지럽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고 하셔서 119에 연락해서 응급상황을 알렸다.

다행히 수분 내에 구조대가 도착해주었다. 전문가답게 환자분의 상태를 살피면서 상황보고를 받고 환자와 대화를 시도한 후에 신속히 약물을 투여하였다. 이어서 이송용 침대를 이용하여 차량으로 옮겨서 인근 병원 응급실로 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이 문제였다. 우리 병원은 이제 문을 닫을 시간이고 구조요원분들께서 아이들까지 돌보아주시지는 못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순간 난감한 상황에서 실장이 본인이 따라가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이 구조요원분들이 데려가준다고 하더라도 응급실에서 봐줄 사람이 없을 것이고 봐줄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병원에 어린 아이들이 오랜 시간 있는 것이 좋을 것이 없을 것 같다고 아이들 엄마가 올 때까지 저녁먹이고 있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집에서 가족을 챙겨야하는 가정주부가 그러면 안된다고 하면서 미혼인 남자 원무직원이 병원으로 따라가겠다고 서로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어린 아이들을 잘 돌보아줄 수 있는 주부 실장이 따라가기로 하였다.

오후 4시 좀 넘어서 그렇게 병원 응급실로 출발했고, 남은 다른 사람들은 일상처럼 퇴근하였다. 중간마다 문자로 환자분 상황을 실장이 보고해주었는데, 다행히 아버님 상태는 점점 좋아지고 있고 아이들은 엄마 따르듯이 보채지 않고 저녁도 맛있게 먹고 간식도 즐기는 중이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아이들의 인내심이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어서 지겨워하는 모습들이 보인다고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은 저녁 7시쯤에 어머님께서 연락받고 도착하셔서 아이들과 아버님을 인계받으시고 모든 것이 잘 해결되어서 이제 귀가한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안도의 마음과 함께 실장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월요일에 출근하여 병원 데스크 앞에서 토요일의 무용담(?)을 실장으로부터 들으면서 정말 그만한 것이 다행이라는 것과 함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그렇게 해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오히려 실장은 본인은 전혀 번거롭거나 싫지 않고 그러고 싶어서 한 일이었다고 하면서 마침 그날 남편과 아이들이 밖에 놀러가 있어서 빨리 들어가서 식사준비나 집안일을 하지 않다도 되는 날이어서 본인에게 그런 역할을 하라는 상황이라고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데 진심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병원문이 열리면서 바로 그 장본인인 아버님께서 불쑥 나타나시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그런 일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평소대로 너무나도 활기차고 밝은 표정으로 말이다. 들어오시더니 멋쩍은 웃음과 함께 내 손을 잡으시면서 그날 정~말 고마웠다고 하셨다. 실장님이 너무 수고하셨고 병원에 정말 빚을 졌다고까지 하시면서 쑥스러운 얼굴로 손에 든 빵을 내미셨다. 이걸로 모든 보답은 안되겠지만 일단 이렇게라도 마음을 표시하고 싶으시다고. 아직 정확한 검사결과는 지금 병원에 들러서 들어야하는데 십중팔구는 저혈당증에 의한 쇼크인 것 같다고 병원에서 이야기했다고 하시면서 주머니에서 사탕봉지를 꺼내셔서 보여주셨다. 이제는 상비약으로 항상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고 하시면서 해맑게 웃으시는 모습에서 토요일의 급박했던 상황이 언제 그랬냐 싶었다.

원장실로 들어와 의자에 앉으니, 다시 한 번 토요일에 보여주었던 실장과 다른 직원들의 환자에 대한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방금 그분이 보여주시는 진정으로 고마워하시는 모습들이 겹쳐지면서 떠올라졌다. 어찌보면 단순한 반복적인 일들이 계속되는 치과에서의 지루할 수 있는 일상이 오히려 매 순간마다 바뀌는 새로운 다른 환자와 보호자와의 만남의 축복, 그리고 병원일을 내일처럼 생각해주고, 환자분들을 사랑하는 직원들과의 매일의 친밀한 관계속에서 전혀 새로운 설레임의 상황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정말 행복한 치과의사이다! 라는 감사가 절로 나왔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승준 분당예치과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