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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금연상담 전 알아야 할 흡연자의 심리

Relay Essay 제2011번째

저희 치과에서는 종종 금연이 대화의 주제로 떠오릅니다. 스케일링이나 치주치료를 하러 오신 경우는 물론이고, 임플란트 시술이 예정돼 있는 환자분들에게도 금연은 중요한 상담 키워드입니다.

더욱이 올해부터는 담뱃값이 큰 폭으로 인상되고, 이 기회에 금연을 결심하려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에 치과 환자분들의 금연에 대한 관심도는 예전보다 크게 늘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금상첨화로 지난달 25일(2월 25일) 부터는 금연 치료와 금연 상담이 건강보험 지원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도 금연 캠페인(치과의사가 투자한 시간에 비해서 금연 상담료가 작기 때문에 병원의 수익보다는 환자에게 재능기부를 한다는 개념으로 생각합니다)이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흡연자들과 담배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저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금연을 결심하는 흡연자들은 본인이 담배를 끊고 나서 금단증상을 못 견뎌서 다시 피게 될 것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예상하고 심지어 내심 기대(?)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분명 의지를 갖추고 담배를 끊으려고 결심하지만, 다른 금연자들이 실패했듯이 끔찍하고 파괴적인 금단증상 앞에서 결국 무너질 것이라는 두려움 섞인 예측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몸에도 나쁘고 눈치 보면서 피기도 구차해서 금연을 일단 시작하지만 언젠가 내가 담배의 유혹 앞에서 다시 무너진다면 그것은 내 탓이라기보다는 니코틴의 강력한 힘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속마음입니다. 하지만 니코틴과 니코틴 대사물들은 담배연기를 통해서 혈액 속으로 빠르게 흡수된 후, 금연을 한 지 2일이 지나면 99%가 몸 밖으로 거의 배출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니코틴 때문에 신체적인 금단증상이 온다면 금연을 한 지 수일 이내에  찾아올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사실상 니코틴에 대해서 의학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신체적인 금단증상은 허전함 같은 것으로 가벼운 감기처럼 경미하며 1~2주일만 참으면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한 마디로, 담배를 수 주일동안 잘 끊다가 혹은 수 개월간 잘 참다가 신체적인 금단증상이 심해서 다시 핀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흡연자들은 담배 끊기가 어려운 걸까요? 의지로 잘 참았다가도 술자리 앞에서, 스트레스 받는 사건 앞에서, 너무 기쁜 일 앞에서 왜 결국 다시 담배를 물게 되는 것일까요?

흡연자들을 상담하면서 직접 깨닫게 된 사실은 대부분의 장기 흡연자는 니코틴에 대한 신체적 중독증상보다는 정신적인 의존현상이 훨씬 심각한 상태라는 점입니다. 스트레스를 감소시켜주고, 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주고, 불안할 때는 집중력을 높여주며, 기쁜 일이 있을 때는 그 누구보다 나를 축하해주는, 식사 후에는 세상 어느 디저트보다도 달콤함을 제공해주는 그 담배에 대한 애틋함과 믿음이, 담배에 대한 의존성이 되어서 흡연자의 무의식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흡연자들은 담배를 끊는 것을 나를 이해해주던 오래된 친구나 애인과 헤어지는 것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담배를 끊게 하고자 옆에서 잔소리를 하는 사람을 겉으로는 고마워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는 적으로 여기기까지 합니다. 이성적으로는 백해무익하다고 믿는 담배이기에 의지를 발휘해서 끊으려고 하지만 감성적으로는 담배에 대한 필요성과 애틋함이 남아서 무의식을 꽉 지배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심리학적으로도 무의식은 언제나 의식을 압도하여 흡연자의 삶을 보이지 않게 조정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른 비유를 들자면, 마치 게임중독에 빠진 청소년이 중간고사 기간에 그렇게 하고 싶은 게임을 억지로 끊고 의지로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그 청소년은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 바로 피씨방으로 달려가서 그동안  못했던 게임의 회포를 실컷 풀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의지로 하는 금연 결심자들도 잘 참다가 술자리에서 혹은 큰 스트레스 앞에서, 혹은 식후의 달콤함을 못 잊어서 언젠가는 다시 담배의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담배에 대한 무의식적인 의존성을 이해하고 없애지 못한 상태로 의지로만 담배를 끊으려고 하니 결국 대부분의 흡연자가 금연에 실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강직증으로 뼈에 꽉 붙어있는 치아를 쉽게 뽑을 수 없는 것처럼,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흡연자의 삶에 꽉 붙어있는 담배에 대한 의존과 애착을 해결하지 않고는 금연 성공률은 낮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의지로만 금연을 시도했던 기존의 흡연자들 사이에서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고 평생 참는 것’이라는 말이 종종 명언처럼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금연은 담배를 참는 것이 아니라 담배가 참을 가치가 없는 것임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내가 담배를 못 끊는 것은 금단증상 때문이 아니라 내가 담배에 부여했던 의존성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담배를 펴서 스트레스가 감소되는 것이 아니라 니코틴 중독 때문에 담배를 피고 싶은 스트레스가 쌓였다가, 흡연하면서 그 스트레스가 일시에 사라지는 것임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담배를 펴서 집중력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니코틴을 흡입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떨어진 집중력이 담배를 한 모금 빨면서 겨우 회복되는 것임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담배를 펴서 기분이 두 배로 좋아진 것이 아니라 담배를 못 펴서 생긴 불안이 해소되면서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처럼 해방감을 느끼게 된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느끼는 담배에 대한 모든 애틋함은 니코틴을 흡입하고 싶은 욕구를 합리화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 합리화가 습관처럼 반복되면서 생긴 정신적인 의존성을 이해하고 천천히 그 의존성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금연이라는 것을 저는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 속 다른 대상에는 흡연자처럼 의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원장님은 본인 치과의 월 매출의 엑셀 숫자에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의존성이 있고, 어떤 부모님은 자녀의 성적에 따라 자신의 감정이 요동치게 되는 의존성이 있습니다. 어떤 학생은 SNS의 답문에 종일 매달리며 핸드폰을 두고 오면 불안·초조해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직원은 다른 사람의 칭찬이 없으면 늘 마음이 허전하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씩은 고기를 먹어줘야 에너지나 행복감이 유지된다는 사업가도 있고, 저녁마다 집에서 술을 조금씩이라도 마셔야 숙면을 취한다는 주부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니코틴에 의존하는 흡연자처럼, 내 삶의 일정 부분을 다른 것에 의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흡연자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다른 것에 의존하는 것처럼 흡연자들도 똑같은 마음으로 니코틴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금연운동의 시작이고 마지막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주변의 흡연자들은 우리 대신 조용히 자기 말을 언제나 존중하고 이해해주는 담배라는 벗을 계속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옥용주 내이처럼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