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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곳적 심장이 뛰는 미지의 세계 “이 순간을 영원히”

세계 33개국 430일간의 여행길...행복한 시간여행을 찾아서 ②불과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

■글 싣는 순서
1 세상의 끝 파타고니아
2 불과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
3 시간이 멈춘 나라 쿠바
4 세상에 없는 풍경 소금사막 우유니
5 트럭으로 달린 아프리카 남부


영화 속 수많은 장면이 떠오는 곳
무엇이 나를 들뜨게 하는지
감동하는 것 앞에서 멈추어 서라고…


장호진 씨(LG Display에서 10년간 근무)와 홍경이씨(한국투자증권에서 9년간 근무). 이들 부부는 2014년 6월. 직장생활 10년 차, 부부생활 5년 차가 되던 해 회사를 그만두고 함께 세계여행길에 올랐다.
이렇게 살아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판단이 지금까지의 삶을 지탱해 주던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여행을 떠날 때 아내와 다짐했다. 태어나 지금까지 성과를 내며 살아왔으니 ‘성과없는 1년을 살아 보자’고. 행여 성과가 나오면 어떻게 하나 노심초사로 여행길에 올랐건만 결국 33개국 430일간의 여행길에서 이전보다 더 행복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관계가 더 견고해진 부부가 된 성과를 얻어 돌아왔다. 본지는 이들 부부의 33개국 여행 여정중 5곳을 추천받아 매주 목요일자에 게재한다.

아이슬란드의 유일한 멸종 위기종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북위 65도 북극권에 가까이 위치한 이 고독한 섬은 남한과 비슷한 면적에 고작 33만 명의 사람이 산다. ‘지구에 사람이 살지 않았다면’의 상상이 눈 앞에 펼쳐지는 나라 아이슬란드.

현재 활동하고 있거나 활동을 멈춘 화산의 숫자가 130여 개에 이르고 국토 면적의 12%를 덮고 있는 빙하가 아이슬란드 전역을 지구가 아닌 것 같은 분위기로 연출한다. 그래서 과거가 되었든 먼 미래가 되었든 현시대를 벗어나는 미지의 세계를 연출해야 하는 영상 제작자들은 모두 아이슬란드를 떠올려야 했는지 모른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오프닝 시퀀스에 나오는 거대한 검은 폭포, ‘인터스텔라’에서 만 박사가 구조요청을 보내온 얼음행성,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 존 스노우가 이그레트와 사랑을 나누는 온천 동굴은 모두 아이슬란드에 촬영된 장소이다. 이뿐만 아니라 ‘반지의 제왕’과 ‘드래곤 길들이기’외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영화 속 수많은 장면이 아이슬란드의 지형에서 영감을 찾았다.


#게이시르의 간헐천

레이캬비크(Reykjavik)에서 출발 한 우리는 링 로드(Ring Road)라고 불리는 1번 도로를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첫째 날의 여러 관광 코스 중에 우리가 가장 기대했던 게이시르(Geysir)의 간헐천에 도착했다. 땅에서 부글부글 끓어 오르다 높게는 30m에서 60m까지 한 시간에 서너 번씩 뜨거운 물이 하늘로 솟구치는 장관이 펼쳐졌다. 지구가 주는 이 뜨거운 세례를 받는 장면을 여행 떠나기 전 몇 번이나 상상했는지 모른다. 물기둥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뒤이어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그제야 우리가 아이슬란드 땅을 밟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아이슬란드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둘째 날 스코가 폭포(Skógafoss)근처에서 머물게 된다. 여행 중에 만난 가장 아름다운 캠핑장을 꼽으라면 바로 이 스코가 폭포(Skógafoss) 캠핑장이다. 폭 25m 높이 60m로 떨어지는 모습이 이 땅에 처음 정착했다는 바이킹처럼 힘이 넘쳐 보였다. 폭포 양쪽 경사면부터 그 아래 펼쳐진 캠핑장 모두 낮고 고운 풀들이 마치 누군가에게 관리되어지는 잔디처럼 깔려있었는데 그 때문에 이 모든 장면이 우아해 보였다.

폭포 아래에서의 하룻밤이라니. 우리는 모두 가장 아이슬란드다운 곳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며 신이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날 다시 길을 달리며 아이슬란드가 주는 놀라운 풍경들이 우리를 세우기 시작했고 이 예정에 없는 멈춤은 여행 내내 계속되었다.

#스카프타펠 국립공원

스코가 폭포(Skógafoss)에서 스카프타펠(Skaftafel)l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을 달리다 보면 이 길 양쪽 지평선 근처까지 피어있는 루핀(라벤다를 닮은 보라색 꽃) 밭을 지나게 된다. 수십 킬로미터 이어지는 루핀 꽃밭은 보라색 바다였다. 우리는 이 길에서 몇 번이고 차를 세우고 아이슬란드가 주는 축복을 누렸다. 장인, 장모님은 꽃밭 넘어 설산을 향해 한국에 두고 온 가족의 이름을 불렀다. (여행 시작부터 한 달 반가량을 장인, 장모님과 함께 여행했다.) 입에서 불리는 이름들을 들으며 보라색 바다에서 불어오는 은은한 꽃향기를 맡았던 추억이 떠오를 때마다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슬란드의 풍경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특히 이 구간은 그 변화가 경이롭다. 꽃 천지가 지나면 요정이 푸른 이끼를 뒤집어쓰고 위장한 것 같은 둥근 바위 지형이 시작되고 그러다 갑자기 검은 땅이 양옆으로 펼쳐지다가 어느 순간 유럽 제1의 거대한 빙하 바트나요쿨(Vatnajökull) 일부를 마주하게 된다. 빙하는 마치 하얀 용암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이는데 주변 검은 땅이 오롯이 그 빙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유빙이 떠다니는 요쿨살롱

유빙이 떠다니는 요쿨살롱(Jökulsárlón)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새들이 장인어른과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날렵한 새들은 우리의 머리 위로 수직 낙하하는 것처럼 떨어졌다가 위협을 가하고 다시 하늘로 올랐다. 북극 제비였다. 나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지만 장인어른은 새가 날아오는 허공에 주먹질을 하셨다. 위협을 받은 제비들이 장인어른께 배설물 공격을 시작했다. 돌아서는 나오시는 장인어른의 얼굴을 보니 입가에 한 방 정통으로 맞으셨다. 그것은 마치 마요네즈 가득한 샌드위치를 먹은 사람같이 보이게 했다. 장인 어른은 혼비백산이었지만 우리는 차 안에서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자세히 보니 북극제비들은 둥지없이 땅에다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고 있었다. 그걸 모르고 서식지에 들어가면 누구든 새들의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슬란드 북서부의 작은 마을 홀마빅(Hólmavík)에서 남쪽에서 내려오는 길에 말 한 마리가 도로로 올라온다. 나는 또 사진이나 몇 장 찍을 요량으로 차를 세우고 내렸다. 그런데 첫 번째 말 뒤로 대여섯 마리가 그 뒤를 따라 나에게 다가온다. 나는 손을 들어 나에게 다가온 녀석의 콧잔등을 쓰다듬어 줬다. 나는 이날을 잊지 못한다. 누군가 주인이 있겠지만, 울타리 없이 야생마처럼 다니는 녀석들이 나에게 인사하듯 다가온 이 경험을. 그리고 마음속으로 정말 아이슬란드에 잘 왔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아이슬란드에 도착했을 때는 여정의 초반이었다. 여름이 시작되기 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지났고 다시 기차를 바꿔 타고 북유럽의 관문인 핀란드 헬싱키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스웨덴의 스톡홀름까지 와서 아이슬란드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가 세울 수 있었던 여행 계획은 약 한 달 반 정도였고 그 계획안에 아이슬란드가 있었다.(실제로 한 달 반 이후엔 발이 닫는 데로 여행을 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들뜨게 했는지 모르지만 내 마음이 몸보다 먼저 아이슬란드에 도착해 있었다.

제도권 안에서 교육을 받고 회사에 들어가 열심히 일하고 그러다 서로 만나 결혼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기찻길이라고 한다면 나와 내 아내는 이 기찻길 위를 달리는 열차에서 단 한 번도 내려본 적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큰 결정을 하고 이 여행길에 올랐지만 우리는 아직도 계획없이 멈추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 이런 우리를 아이슬란드는 계획에 없는 곳에서 멈추게 하고 차에서 끌어 내려 아름다운 자신 앞에 서게 했다. 그리고 말한다. 천천히 가도 된다고. 당신이 감동하는 것 앞에서 멈추어 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