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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로맨스’ 사랑하고 노래하고 춤춰라

세계 33개국 430일간의 여행길...행복한 시간여행을 찾아서-③ 3시간이 멈춘 나라 쿠바

■글 싣는 순서
1 세상의 끝 파타고니아
2 불과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
3 시간이 멈춘 나라 쿠바
4 세상에 없는 풍경 소금사막 우유니
5 트럭으로 달린 아프리카 남부


낡은 건물에 빨간 스포츠카
느긋이 여유 즐기는 매혹의 땅


장호진 씨(LG Display에서 10년간 근무)와 홍경이씨(한국투자증권에서 9년간 근무). 이들 부부는 2014년 6월. 직장생활 10년 차, 부부생활 5년 차가 되던 해 회사를 그만두고 함께 세계여행길에 올랐다.
이렇게 살아서는 행복할 수 없다는 판단이 지금까지의 삶을 지탱해 주던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여행을 떠날 때 아내와 다짐했다. 태어나 지금까지 성과를 내며 살아왔으니 ‘성과없는 1년을 살아 보자’고. 행여 성과가 나오면 어떻게 하나 노심초사로 여행길에 올랐건만 결국 33개국 430일간의 여행길에서 이전보다 더 행복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관계가 더 견고해진 부부가 된 성과를 얻어 돌아왔다. 본지는 이들 부부의 33개국 여행 여정중 5곳을 추천받아 매주 목요일자에 게재한다.


지금도 그들은 흔들 의자에 앉아 야구 중계를 보고, 야구 선수들은 경기 전날 해변에서 늦도록 축구를 하고, 아이들은 축구와 야구를 하려고 거리로 쏟아지고 그 거리 한 구석에선 어른들이 체스를 두고 마작같이 생긴 퍼즐게임을 하고 있겠지.

 쿠바의 수도 아바나(Havana)에 도착하기 전 내가 가진 쿠바의 이미지는 모두 1999년에 개봉된 빔 벤더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 기인한다. 카이스트로 집권 이후 흩어져야 했던 쿠바 음악의 거장들을 미국의 프로듀서 라이 쿠더가 녹음실로 소환했을 때 이들은 쿠바 음악이 침체기를 겪었던 시간 만큼 늙어 70대 이상의 노인들이 되어 있었다. 이들이 다시 마이크를 잡고 악기를 연주하며 녹음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음반은 기대 이상의 흥행을 이끌며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된 것이다.

미국의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인 라이 쿠더가 그의 아들 요하킴 쿠더와 함께 타고 달리던 오토바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리더 이브라힘 페레가 베레모를 쓰고 시가를  문채 걸었던 아바나의 거리 그리고 기타리스트 콤파이 세군도가 올드카 뒷 좌석에 타고 달리던 말레콘 해변도로의 모습들이 마치 ‘필름 사진 효과’를 입혀 놓은 것 같은 흐릿한 이미지로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개봉한 지 15년이 넘는 영화에서 본 쿠바의 모습, 그 실제 앞에 서는 여행을 기대하며 쿠바 여행 비자가 허락하는 30일을 꽉 채우는 일정으로 항공권을 결제했다. 여행 중 목격한 쿠바는 15년 전 영화에서 만났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쿠바의 시계는 멈추어 있었고 내 머릿속에 남은 이미지는 거기 그대로 살아 있었다.

우리가 아바나에 도착했을 때 가지고 있었던 쿠바에 대한 사전정보는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보다 훨씬 빈곤했다. 인터넷 검색 몇 번이면 잘 정리된 현지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다른 여행지들과 달리 쿠바에 대한 정보는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쿠바를 여행하는 한국인들이 아직은 소수이기도 하지만 현지의 정보를 바로바로 인터넷에 업데이트하기 어려운 환경이 한몫을 한다.

가정에서 인터넷에 접속하는게 불법이며 인터넷을 쓰려면 선불카드를 구입해서 지정된 장소에 가서 접속해야 한다. 지정된 장소는 기껏해야 고급호텔 한 두 군데 정도다. 처음에는 인터넷 접속이 안되는 상황이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사용하던 구글맵을 대신해 종이 지도를 보거나 먼저 쿠바를 다녀온 친구들이 그려준 약도 그리고 입으로 전해지는 정보에 이끌려 여행을 해야 했다.

#마법책 같은 여행 정보지

어디를 가나 와이파이가 전혀 잡히지 않는 덕분에 내 전화기는 배터리가 꺼지지 않고 2~3일이 유지가 됐다. 그래서 아바나에 도착하는 한국,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 호아끼나 아줌마의 까사로(민박집)모이게 되어 있다. 그곳에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머물며 여행한 사람들이 직접 글로 적어 놓은 정보책은 사람들의 손때가 너무 많이 타고 오래되어 마치 마법 책 같았다.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남기는 여행자들 덕분에 책은 계속해서 업데이트 된다. 본인이 겪은 쿠바를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곳. 아날로그식 정보공유가 마치 농업시대만큼 귀하게 여겨지는 곳에서 쿠바의 여행이 시작된다.

쿠바의 혁명과 해방이 무엇인지 체감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그곳에 있으면 인터넷으로부터 해방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 할 것처럼 강요되는 정보들에서 소외되니 그제야 하루가 제 속도로 살아진다. 불안은 모두 감당하지 못할 만큼 쏟아지는 정보에서 시작된다는 걸 비로소 배운다. 우리가 쿠바를 나와 멕시코 칸쿤에 도착했을 때 대형 슈퍼마켓에 진열된 수많은 종류의 상품들을 보는 순간 ‘최선의 선택’ 병이 순식간에 다시 도졌고 두통을 감내하고 핸드폰을 열어 정보의 바다에 기꺼이 빠져드는 우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한 번의 여행이 생활을 바꿀 수 없었다. 쿠바가 소개해준 보물은 그렇게 쿠바에 두고 와야 했다.

#살아있는 중세풍의 거리

아바나에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들이 다양한 양식으로 건축돼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골목마다 살아 있는 중세풍의 거리를 다니면서 놀라울 정도로 싼 간식거리를 먹고 마시고.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라이브 음악을 듣다가 말레콘 해변을 달리는 올드카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쿠바 관광의 시작이다. 밤에는 올드 아바나를 벗어나 뉴 아바나로 재즈 공연을 관람한다. 입장료 10CUC(약 $10)에 작은 바에서 진행되는 공연을 보는 내내 수준 높은 공연을 이 가격에 볼 수 있는 곳은 쿠바가 유일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만원이 조금 넘는 입장료 가격에는 맥주 다섯 병이 포함되어 있다. (재즈바 마다 제공되는 음식 메뉴가 다르다.) 다른 한편으론 아바나를 여행 할 때 관광객들에게 한 몫 챙기려는 상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다. 바가지를 씌우려는 사소한 시비들 때문에 쿠바를 싫어하게 된 사람들도 있다.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돈을 받을 요량으로 일부러 시가를 물고 있는 할머니들과 연주하는 척하는 노인들은 귀여운 수준이다.

#순수한 쿠바를 만나고 싶으면 더 깊은 골목으로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자본주의에서 온 관광객과 상대적으로 가난한 쿠바인들이 함께 만든 상황이다. 더 순수한 쿠바를 만나고 싶다면 관광객들을 떠나 더 깊은 골목으로 더 먼 도시로 떠나야 한다.
다만 열악한 교통 시스템으로 도시 간 이동이 불편한 것이 단점이다. 아바나에서 산티아고 데 쿠바까지 열 시간 정도 걸릴 거라는 버스는 860km의 거리를 열다섯 시간을 달려 도착했다. 중간에 자동차가 고장 나 24시간을 걸려 도착한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바라코아로 이동 할 때는 55년을 달린 자동차를 탔다. 매연이 차 안으로 들어오는 특이한 시스템 때문에 아내는 결국 감기를 선물 받았다. 바라코아, 트리니다드 구간은 대중교통도 없었다. 겨우 택시를 섭외했는데 컨디션이 나빠진 아내는 그나마 앞자리에 앉았고 동행 두 명과 나는 소형차 뒷좌석에서 열 두 시간 동안 소시지처럼 합체가 되는 경험을 했다.

관광객들이 활기찼던 아바나와 달리 현지인들이 활기찬 산티아고 데 쿠바(Santiago de Cuba)와 어느 곳보다 아름답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한가로운 해변을 가진 쿠바의 첫 번째 수도 바라코아(Baracoa),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로 빛나는 트리니다드(Trinidad)와 시엔푸에고스(Cienfuegos)를 비롯한 수많은 쿠바의 도시들은 나름의 역사와 색깔이 분명하고 다양하다. 그래서 여행객이 기대하는 그것이 쿠바의 음악과 춤이든 혁명의 흔적이든 16세기 식민 도시의 건축이든 놓치게 되는 위험은 없다.

고된 삶은 쿠바 담배 공장의 노동자와 지구 반대편 한국 노동자에게 동일하다. 하지만 쿠바인들은 그 삶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다르다. 그들은 커피를 마실 때 설탕을 듬뿍 넣는다. 고된 삶처럼 쓴 에스프레소 한 잔이 입안에서 달콤하게 넘어가도록. 그래서 그들이 부르는 음악과 춤도 언제나 흥겹다. 시장경쟁 체제를 모르는 순수한 쿠바인들을 기대하고 그곳에 가면 실망할 수 있다. 그대신 쫓기며 사는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이 필요하다면 아직은 시간이 멈춘 쿠바로 떠나는 것이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