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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소금 카펫

세계 33개국 430일간의 여행길...행복한 시간여행을 찾아서④세상에 없는 풍경 소금사막 '우유니'

■글 싣는 순서
1 세상의 끝 파타고니아
2 불과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
3 시간이 멈춘 나라 쿠바
4 세상에 없는 풍경 소금사막 우유니
5 트럭으로 달린 아프리카 남부


별이 가득한 날엔
바닥 깊이 별들이
그대로 투영되어
우주에 있는 것 같은…

우유니는 볼리바아의 행정수도 라파즈로부터 자동차 길로 약 546km 떨어져 있다.

여행자들은 우유니 소금사막을 보기 위해 칠레 북부로부터 올라오거나 볼리비아의 행정수도 라파즈를 거점으로 버스를 타고 내려온다.

우리 부부는 라파즈에서 저녁 7시 버스에 올랐다. 티켓부스의 불친절한 아저씨는 열두 시간이 걸린다고 퉁명스럽게 이야기했다. 남미 여행을 하면서 이만큼의 장거리 버스 여행은 이제 익숙해졌다.
스무 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여행자도 허다하니까. 나라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남미의 버스는 좌석 등급이 다양하게 나누어지는데 이렇게 장거리를 이동할 때는 의자가 몸이 뉘어질 정도로 젖혀지는 까마 등급의 버스를 탄다.

돈을 조금 아낄 요량으로 더 낮은 등급의 버스를 탄다면 새우 모양으로 굽은 허리를 펴지 못하고 좀비가 되어 걷는 자기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버스가 우유니 마을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아직 어스름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 간밤에 버스가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예정된 시간보다 두 시간 이른 새벽에 조용하고 황량한 마을에 내려야 했다. 버스가 일찍 도착해서 슬픈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너무 추웠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유니로 떠나기 전 인터넷으로 숙소를 예약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우유니에는 요즘 숙소가 많이 남아 굳이 예약하지 않고 가도 된다는 라파즈에서 만난 일면식 없는 여행자의 말만 믿고 우리는 숙소 예약 없이 떠나는 것으로 결정했다 결정했다. 그 덕분에 현지에 도착한 우리는 이 작은 마을을 꽤 쏘다녀야 했다. 간판에 호텔이라고 쓰여 있지만, 호텔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곳들은 직접 문의하니 인터넷에 나와 있는 가격보다 더 저렴했다.

우유니 마을에 있는 숙소들은 세계적인 관광지라는 말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노후 되어 있다. 다행히 비교적 깨끗한 시설의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우리는 서둘러 귀한 라면 하나를 끓여 먹었다.

# 힘겨운 여정 끝 라면의 정겨움

옆 테이블에는 대여섯 명의 중국인들이 고산증세로 쓰러져가고 있었는데 저런 상태라면 그 아무리 아름다운 우유니 소금사막이라 한들 눈에 들어 올 리 없을게 뻔했다. 한 명이 내게 와서 이 라면을 어디서 샀느냐며 힘겹게 물었다. 여기서는 살 수 없다는 말을 듣는 그의 눈에 절망이 가득하다.

나와 아내는 두 개 남은 라면 중에 하나를 가장 아파 보이는 사람에게 주자고 결정했다. 그에게 다가가 라면 끓이는 방법을 그림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달걀도 하나 주었다. 정말 감사해 할 줄 알았는데 반응이 뜨겁지 않았다. 너무 아파서 그런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유니 사막은 우기가 되는 12월에서 3월 사이 하늘을 비추는,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을 만들어낸다. 장기 여행자들은 이 거대한 거울 아래 서기 위해 여행 일정을 조정하거나 우기에 맞추어 다시 볼리비아로 돌아오는 수고를 마다치 않는다. 그러나 우기라고 항상 이 장면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금 바닥 위로 물이 머무를 만큼의 비가 온 뒤 맑은 날씨가 이어지면 이때가 투어의 적기인데 아예 우유니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비 오는 날을 기다리거나 주변 도시를 여행하면서 언제 비가 온다는 혹은 왔다는 소식을 기다리는 여행자들이 적지 않다.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몇 일 전 내린 적당량의 비가 우유니 사막을 한층 아름답게 꾸며놓았으니까.

우유니 소금사막을 사륜구동 지프를 타고 달리고 달려도 육각형의 결정체가 만들어 낸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소금 카펫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 아내와 차에서 내려 소금 결정들을 밟고 섰을 때 입에서 반복된 말이 있었다. 기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마주했을 때 누구나 주문처럼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있을 텐데 그게 나에게는 ‘이럴 수가’였다.

# 해발 3680m 고원지대

우유니 소금사막은 오래전 바다 아래 있던 땅이 융기되어 안데스 산맥을 만들 때 비교적 낮은 지형의 이곳에 호수가 생기고 건조한 기후로 사막화되면서 해발 3680m 고원 지대에는 세상엔 둘도 없는 풍경, 하얀 사막이 서울시의 두 배 면적으로 만들어졌다. 십수 년 전 남미를 먼저 여행한 후배가 찍어온 우유니 소금사막 사진을 보고 언젠가 꼭 가보리라는 다짐을 마음에 심었다.

그리고 다짐은 우유니 아래 깔린 소금처럼 변하지 않았다. 꿈에만 그리던 장소가 눈 앞에 펼쳐지던 순간 사진에 담겨 있던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 실재한다는 사실이 그제야 온전히 받아들여졌다. 소금사막 여기저기를 아내와 걷고 사진을 찍으며 석양을 기다린다. 물이 차오른 우유니는 하늘의 모든 변화를 투영해 반영해냈다. 우리가 같은 장소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모습이 다채로웠다.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오자 가이드 조니는 서둘러 차를 몰았다. 약속된 투어는 일몰까지였다. 한참을 이동하다 가이드에게 별을 볼 수 있도록 차를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마음씨 좋은 그 사람은 어느 한 곳에 우리를 내려줬다. 말 그대로 별들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함께 투어에 참가했던 사람 중에는 이날 생전 처음으로 은하수를 본 사람도 있었다. 하늘에 별이 빼곡했는데도 가이드 조니가 아쉬워한다. 바람이 불어 아쉽다고.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오늘처럼 별이 가득한 날엔 바닥 깊이 별들이 그대로 투영되어 마치 우주에 있는 것 같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며.

 # 도시의 끝과 끝을 잇는 케이블카

 우유니를 이야기할 때 거점 도시가 되는 라파즈를 빼놓을 수가 없다. 한 나라의 수도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볼리비아의 라파즈는 가장 높은 곳이 해발 4100m 가장 낮은 곳은 3200m에 이른다.

높은 고지대가 협곡을 둘러 쌓고 그 분지 안에 형성된 도시라서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마치 깊은 국수 그릇 안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라파즈에는 라마 태아를 비롯한 각종 주술용 물품과 약품들을 파는 마녀시장과 해발 4700m 지점에서 약 64km 거리를 다운힐로 달리는 데스로드 자전거 투어 등 흥미로운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은 바로 도시의 끝과 끝을 잇는 케이블카가 선사해 주었다.

라파즈의 케이블카는 투어용이 아닌 이동 수단으로 설치되었다. 지금은 세 개의 노선이 운영되고 2019년까지 다섯 개의 노선이 추가로 설치될 예정이다. 이중 노란색 노선은 이 도시의 남서쪽 가장 낮은 지역이면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시작해 중산층이 자리 잡은 도시의 중앙을 지나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가장 높은 곳 엘 알토까지 왕복으로 운행한다.

해가 지고 부촌에서 빈촌으로 연결된 케이블카를 탄다. 가파른 언덕 언덕마다 가난한 사람들이 지은 집들이 빼곡하고 집집마다 노란 불이 하나씩 켜진다. 케이블카 안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우주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사방의 하늘을 가득 메운 노란 불빛으로 날아가는 케이블카에서 일어나 유리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가난이 만들어 낸 우주, 경이롭고 아름다운 역설 앞에서 말을 잊었다. 케이블카는 이내 언덕의 꼭대기에 서고 우리는 내려 다시 한 번 올라온 길을 내려다본다.

가난한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이고 지고 오르락내리락했을 골목길이 저 아래 용광로처럼 빛나는 도심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값싼 케이블카 여행은 오직 라파즈에서만 가능하다. 편도 3볼리비아노 한국 돈으로 약 500원의 케이블카 여행은 놓쳐서는 안 되는 볼리비아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