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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400년 째’ 숲 지킴이 원장님

‘아홉산숲 지기’ 문백섭 원장의 숲 사랑
600여 종 서식 주왕산국립공원과 비견
체험학습장 등 생태가치 시민들과 공유

부산광역시 기장군에는 ‘도시의 보배’ 같은 숲이 하나 있다.

부산과 울산을 오가는 길목, 대도시 근교에 있지만 깊은 산에서나 볼 수 있는 삼나무, 편백나무, 대나무 등속이 우거져 있는 철마면 ‘아홉산 숲’이다.

이 숲의 주인은 문백섭 원장(울산 문치과의원). 단순한 산주(山主)가 아니다. 400여 년 전, 전란을 피해 조상이 이곳 철마에 터를 잡은 후, 9대를 이어오며 애면글면 숲을 가꿔 온 ‘숲지기의 후예’다. 문 원장은 현재 ‘생명공동체 아홉산 숲 대표’라는 직함을 쓰고 있다.

문 원장은 “산정에서 보면 골짜기가 아홉이라 아홉산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적어도 일제강점기 훨씬 전부터 이 이름으로 전해져 왔는데, 순우리말 지명이라 지역주민들은 이 이름에 아주 큰 애착과 긍지를 갖고 있어요”라고 소개했다. 

아홉산 숲은 생태학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식물표본조사 결과 약 600여 종이 서식해 주왕산국립공원과 비슷하며, 산림청으로부터 ‘아름다운 숲’ 지정을 받기도 했다. 문 원장은 “수령 400년 이상의 금강소나무 군락과 참나무 군락이 청청해 군청에서 지정하는 보호수에 150여 그루가 등재되기도 했어요. 오색딱따구리, 새홀리기, 도룡뇽 등의 멸종위기종도 서식하고 대도시 근교임에도 여름엔 반딧불이도 보입니다”고 전했다.

숲이 지금까지 온전히 보전되는 데에는 조상의 덕이 컸다. 증조부와 조부, 부친까지 100여 년에 걸쳐 체계적으로 조림이 진행됐으며, 일제 말기에는 집안 어르신들의 지혜로 공출을 위한 벌목을 피할 수 있었다.


“일부러 놋그릇을 숨기다 들키는 겁니다. 그릇을 뺏긴 뒤에는 조상들 제사를 어떻게 모시느냐며 땅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고 순사는 놋그릇만 갖고 슬며시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순사가 간 뒤에는 어른들이 ‘그래도 나무는 남았다 아이가’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해요. 서너 차례 그렇게 해서 아홉산 숲의 나무를 살렸다고 합니다.”

문 원장은 이런 숲의 생태적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는 사업에 힘쓰고 있다. ‘농업회사법인 아홉산숲’을 설립, 본격적으로 아이들의 체험학습장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숲속 음악회 등 다양한 문화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입소문을 타 많은 행락객이 모여 숲이 몸살을 앓기도 하고, 지자체의 개방 압력도 있었지만 지금은 보전과 공익적 개방의 절충점을 찾았다는 게 문 원장의 설명이다.

문백섭 원장은 공익사업을 토대로 다음 300년을 이어갈 준비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좋은 생태적 가치를 가진 환경을 그대로 보전하는 일과 이런 결과물을 남겨놓은 조상들의 뜻을 이어 가는 게 사업의 목적”이라며 “더 잘 된다면 이 숲은 또 다른 300년을 이어갈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