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30 (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나쁜 갈등

Relay Essay
제2247번째


얼마 전 자동차를 바꾸었다. 누구나 새 차에는 애착이 가고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그런데 조심을 하고 주의를 기울이면 기우릴수록 여기저기 부딪치고 까지고 터진다. 희한한 일이다.


아마도 새 차에 대한 적응이 안 된 탓이리라. 예전 차에 익숙하다보니 새 차는 서툴고 부자연스러운 게 사실이다.


나도 3일이 안 돼 앞 범퍼가 주차장 기둥에 걸려 찢겨 나가 80만원의 수리비가 들었다. 나의 부주의이지만 얼마나 화가 나고 아까운지 모르겠다.


밥맛이 없을 정도이다. 물론 언젠가는 스치고 박고 부딪치고 깨져서 중고차가 되게 마련이지만 처음 몇 달은 새 차에 대한 관심이 애지중지해 작은 흠집이라도 용서를 못하고 끙끙 앓게 된다.


그 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가물다가 오는 비라 모두가 반기는 비다.


급한 볼일이 있어 작은 시장 통을 초저녁에 지나게 되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데 좁은 골목통 앞에 SUV차 한 대가 마주 오고 있다. 비 때문에 후진하기도 시야가 나쁘고 옆으로 피하자니 피할 간격이 없다. 차 운전을 하루 이틀 한 처지도 아니니 공연한 자존심과 과욕을 부려 옆으로 약간 피하면서 앞차가 지나가게 자리를 마련하려 했다.


이게 잘못된 계산이고 주제넘은 착각이었다.

나는 충분한 거리와 유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옆으로 피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의 차 백미러가 옆에 서 있는 오토바이를 스치게 되었다. 오토바이는 힘없이 옆으로 넘어지면서 또 다른 오토바이를 치고 넘어갔다.
창문을 여니 비가 세차게 들이친다. 밖을 내다보기도 어렵다. 밖을 내다보려니 옆에 지나가는 사람이 “그냥 가세요. 별일도 아닌데요.”
“그냥 가도 되겠죠?” 낮 모르는 사람에게 응원을 구했다.
내 차가 얼마나 상 했는지 문제가 아니다. 다만 접촉 사고에 대한 두려움에서 빨리 헤어나고 싶을 뿐이다.


낮 모르는 사람의 응원에 힘입어 난 힘 있게 그 자리를 빠져 나올 수 있었고 안도의 한 숨을 쉬게 되었다. 집에 도착했다. 아니 이건 뺑소니가 아닌가? 누군가가 나의 차번호를 알아서 신고를 하면 나는 꼼짝없이 뺑소니차인 것이다.


아무리 오토바이의 파손이 미약하다 하더라도 사고 당시 상대방에게 사고 사실을 알리고 사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면 이는 분명히 뺑소니인 것이다.
잠이 오지 않았다.


비가 오고 늦은 밤에 누가 신경 써서 남의 차번호를 관심 있게 보았겠으며 설사 보았다 하더라도 무슨 좋은 일이라고 신고를 하고 남의 일에 콩이야 팥이야 끼어들 일이 있겠는가?
한결 마음이 휘둘러 싸잡힌다.


아니지! 요새 사람들은 영약하고 알뜰해서 남의 부당한 행동에 절대로 참지 못하고 어영부영 지나는 일이 없지.


나도 어느 때 저런 일이 나에게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내가 챙길 수 있는 것은 꼭 챙기고 손해를 보지 말아야 해.


주위에 여러 사람들이 있었으니 누군가가 분명히 나의 차번호를 보았겠지? 머리털이 송송해 진다. 또 잠이 저 멀리 사라진다.


맘의 갈등은 또 다른 갈등을 낳고 새끼에 새끼를 쳐 한 밤을 날밤으로 새웠다.


결국 갈등의 끝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냥 소리 없이 지나가는 나쁜 갈등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암만 너그럽게 생각을 해 봐도 뺑소니는 분명한데, 뺑소니 아닌 것처럼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자는 거는 분명 나쁜 갈등이 분명하다.


아무리 나쁜 갈등을 옳다고 우기고 겨뤄 봐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나쁜 갈등이 좋은 갈등으로 바뀔 수는 없는 일이다.
아침 새벽에 접촉사고 났던 골목을 찾아 갔다. 새벽이라 사람들도 없고 사고 난 오토바이도 없다. 마음이 시원하다. 그냥 지나도 되겠구나! 나쁜 갈등의 승리다.


내가 이긴 것처럼 누구도 안 만나고 곧장 병원으로 가 환자를 봤다.


진료하는 손이 제멋대로 논다. 글씨도 삐뚤빼뚤 하다. 에이! 아침에 누구라도 만날 걸 그랬나?
진료를 어떻게 마쳤는지 모른다. 곧 그 골목길을 찾았다.


골목길은 또 다시 분주하고 떠들썩하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아마, 이 집이었지?”
“죄송합니다. 어제 저녁 이 곳에서 오토바이 접촉 사고가 났었는데 그 오토바이 주인 좀 만날 수 있을까요?”
“우리 가게와 오토바이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오토바이는 오토바이 배달 회사가 따로 있어서 그 곳에서 관리를 해요”
“그래도 만날 수 없을까요?”
“오토바이 배달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아서 누가 누군지 몰라요”
“제가 00치과를 하거든요. 명함을 놓고 갈 테니 혹시 연락이 되거나 오토바이 주인이 나타나면 연락을 해 주세요.”
“네, 연락이 되면 알려 드릴게요. 그렇다고 일부러 찾지는 않을게요.”
마음이 후련해지고 나쁜 갈등이 좋은 갈등으로 바뀌는 듯하다.


신덕재
중앙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