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은행나무다. 내 나이가 1억 8000만 년이나 된다. 그러니까 모든 나무의 형님이 되는 꼴이다. 나는 살아 있는 화석이다. 중생대 쥐라기 때부터 살았으니 말이다. 나는 홀로는 못산다. 사람들과 같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향교 뒤뜰이나, 사찰 앞마당이나, 도심의 가로수나, 동구밖 정자 옆에 거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난 부부로 함께 산다. 암나무와 수나무로 부부이다. 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한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과 상쾌함을 주고 집안의 빈대도 없애준다. 또 심장이 나쁘거나 피가 잘 안 도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징코민이라는 약으로 사람의 생명을 구해 주기도 한다. 나의 열매인 은행은 굶주린 백성들을 긍휼하는 구황작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뭇 선남선녀들의 낭만과 데이트 장소가 되기도 한다. 덕수궁 돌담길, 삼청동길, 정동길, 신사동 가로수길, 영주 부석사, 홍천 은행나무 숲,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 전주 향교 은행나무,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등 명소가 전국 곳곳에 있어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식과 몸의 치유를 주고 있다. 이렇게 난 나의 낙엽까지도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하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얼마 전 자동차를 바꾸었다. 누구나 새 차에는 애착이 가고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그런데 조심을 하고 주의를 기울이면 기우릴수록 여기저기 부딪치고 까지고 터진다. 희한한 일이다. 아마도 새 차에 대한 적응이 안 된 탓이리라. 예전 차에 익숙하다보니 새 차는 서툴고 부자연스러운 게 사실이다. 나도 3일이 안 돼 앞 범퍼가 주차장 기둥에 걸려 찢겨 나가 80만원의 수리비가 들었다. 나의 부주의이지만 얼마나 화가 나고 아까운지 모르겠다. 밥맛이 없을 정도이다. 물론 언젠가는 스치고 박고 부딪치고 깨져서 중고차가 되게 마련이지만 처음 몇 달은 새 차에 대한 관심이 애지중지해 작은 흠집이라도 용서를 못하고 끙끙 앓게 된다. 그 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가물다가 오는 비라 모두가 반기는 비다. 급한 볼일이 있어 작은 시장 통을 초저녁에 지나게 되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데 좁은 골목통 앞에 SUV차 한 대가 마주 오고 있다. 비 때문에 후진하기도 시야가 나쁘고 옆으로 피하자니 피할 간격이 없다. 차 운전을 하루 이틀 한 처지도 아니니 공연한 자존심과 과욕을 부려 옆으로 약간 피하면서 앞차가 지나가게 자리를 마련하려 했다. 이게 잘못된 계산이고 주제넘은 착각이었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