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에 제갈량이 죽으면서 유비의 아들인 유선에게 읽도록 했다는 책은 ‘동양의 제왕학 교과서’라고 불리는 “한비자”였다. “이 글을 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중국을 통일해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한 진시황이 법가인 한비자를 두고 한 말이다. 한비자는 음모에 휘말려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지만 법가는 이후 중국 고대 국가의 기틀을 잡는 데 핵심 사상이 되었다. 당대에는 핍박과 위협을 받았을지 몰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시대의 발전은 이러한 원칙주의자들에 의해 이뤄졌다. 시대를 앞서가는 원칙을 정하고 실천해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역시 모든 역사적 사실이 보여주고 있다. 한비자가 말하는 군주에게 꼭 필요한 세 가지 통치 기재는 법(法)과 술(術) 그리고 세(勢)이다. 법(法)은 정치를 하는데 필요한 공정하면서도 엄격한 원칙을 말한다. 감정과 개인적인 판단이 아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원칙을 그 기준으로 삼는 것이 리더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성경 구절이 있다. 리더는 논리적이고 공정한 잣대를 가지고 사사로운 친분이나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이제는 유투브의 시대입니다. 책과 신문 등 지금까지 문자 위주의 정보가 주를 이루었던 시대가 지나가고 영상이 정보의 중심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책은 독자의 상상력을 이끌어 창의력과 사고력을 향상시키지만 영상은 구체적이며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들이 존재하는 사건들도 단편적으로 압축하고 단순화하여 때로 잘못된 길로 시청자를 이끌어 가기도 합니다. 이러한 영상들을 비판적 사고 없이 바라본다면 편향되고 왜곡된 시각을 가진 존재가 되어 버릴 가능성이 매우 큰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본질을 파악하는 역량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능력에 의존합니다. ‘검색보다 사색’이란 말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그 정보를 판단하는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말에 ‘보다’는 영어와 한자에는 각기 다른 여러 단어가 존재합니다. SEE는 구체적인 목적이나 의도가 없이 그저 눈에 들어오는 상태를 말합니다. 한자로는 “見”입니다. 길을 걸어가며 간판을 보거나(간판이 보이거나) 지나가는 사람을 보는 것은 신체적 감각기관인 눈으로 들어오는 시각정보인 SEE, 見 입니다. 멈춰 서서 그 간판을 유심히 바라보거나 그 사람을 쳐다보는 것은
“아. 건물 하나만 있으면 당장 치과 접고 임대료 받으면서 살고 싶은데……” “60되기 전엔 반드시 그만 할 거야” 선배들로부터 주변 원장님으로부터 자주 듣는 말입니다. “누가 한 달에 얼마만 주면 당장 이 직장 그만둘 텐데……” 라고 하는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월요일이 되면 출근하기 싫어 비명을 지르며 억지로 현관문을 나서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놀이공원에 가보면 신이나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뒤쪽으로는 피곤에 지친 얼굴로 나무 밑 벤치에 앉아있는 아빠가 있습니다. 백화점에 가보면 들뜬 얼굴로 미소를 머금고 매장을 활보하는 아내 뒤로 끌려 나온 듯한 얼굴의 지친 남편들이 보입니다. 동일한 공간에서 왜 누군가는 즐겁고 누군가는 정말 싫은 표정일까요? 놀이공원의 아이들과 백화점의 아내는 그 곳에 즐기러 간 것입니다. 수단과 목적이 일치하는 경우를 우리는 놀이라고 부릅니다. 백화점에 간다는 수단과 아내에게 잘 보여야 살아남는다는 목적이 다른 남편의 행위는 노동이라고 부릅니다. 놀이와 노동의 비율이 한 사람의 행복을 결정짓는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금요일까지는 노동으로 살아가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놀이로 살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