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수종 원장 영전에
여보게, 자네가 왜 거기서 내려다보며 내 절을 받는가? 내가 늘 자네를 놀렸었지. 자네 그 돼지 입술에는 먹을 복이 주렁주렁 매달렸고, 돌아가신 부모님이 모두 90을 훌쩍 넘어 수(壽)하신 집안이니, 내가 못해도 10여 년은 자네 절을 받을 거라고… 그런데 이게 웬 청천벽력인가? 요즘 세상에 7학년은 노인정(老人亭) 총무도 안 시켜준다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는 법이 어디 있나? 삼신할머니가 빚어준 관상이 마음 쓰는 심상만 못하다는 말이 틀림없나 보네그려. 어릴 때부터 통 크고 담대하여 친구의 청을 거절 못하던 자네였지. 본과 3학년 때 학생회장 선거에 당선된 뒤, 서울대 총학생회장 때는 6·3사태 시위주동자로 구속당하고, 가까스로 무기정학으로 살아남았지. 명석한 맏형님 덕분에 그 몹쓸 놈의 연좌제에 물려 군 생활도 고생고생하지 않았는가.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들이 감탄한 달필(達筆)은 뛰어난 보철치료 솜씨로 이어지고, 강직한 책임감과 함께 환자들의 믿음을 얻어, 으능정이 알토란같은 땅에 치과의사들의 로망인 빌딩을 올렸지. 대전 지부장 때는 대담한 결단으로 부지를 사들여 지부 건물을 짓고, 협회 감사 때는, 보이지 않게 사비(私費)를 털어가며 건강보험수가 상
- 임철중 전 치협 대의원총회 의장
- 2020-01-29 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