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미용실 고양이들을 알게 된 것은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츄리닝을 입고 동네 산책을 하던 중이었는데, 통유리로 된 미용실 유리문 안에서 냐아냐아 울고 있는 노란 고양이를 발견했다. 울음소리가 직접적으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고양이의 핑크색 혓바닥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 무지하게 심심하다고. 그래, 내가 놀아줄게. 나는 쭈그리고 앉아 주먹을 쥐고 통유리 문을 톡톡 두드렸다. 어슬렁어슬렁 유리문 바로 앞으로 다가온 고양이는 갑자기 푹 주저앉더니, 꼬리로 바닥을 몇 번 탁탁 쳤다. 어떻게 놀아주지, 나는 하얀 마스크를 벗어 고양이 눈앞에서 빙글빙글 흔들었다. 고양이의 눈꼬리가 점점 가늘어진다. 그러고는 찢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훽 뒤돌아 가버렸다. 실룩거리는 노란 고양이의 엉덩이를 아쉬운 눈길로 좇던 나는 멀리 스크래쳐 위에서 자고 있는 작은 노란 고양이를 한 마리 더 발견했다. 유리문에 빛이 반사되어 잘 보이지 않아 두 손으로 빛을 가리고 열심히 쳐다보았다. 이 여자 뭐지, 하고 쳐다보는 행인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이후로, 산책을 나갈 때마다 그 미용실 앞을 서성거렸다. 내가 산책을 할 수 있는 시간이야 뻔하다. 약속 없는 주
‘여자 선생님이라서 좋아요.’ 치과에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실 때에 나는 긴장이 된다. 젠더에 의미를 부여 받는 일은, 그 의미가 아무리 긍정적이라고 하더라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나는 저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두 가지 역할을 무난하게 수행해 내야만 하는 것이다. 한 가지는 저 환자분의 불편한 구강 내 병증을 치료하고 편안하게 저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통상적인 치과의사로서의 역할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저 환자분이 내면 깊숙이 가지고 있을 ‘여성 술자에 대한 기대 심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하는 ‘여성 치과의사’로서의 역할이다. 10여 년 전에 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왔다. 그 분들 중에서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에 유난히 의미를 부여했던 분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로부터 받았던 ‘냉대’과 ‘기대’를 모두 기억하고 있다. 새내기 시절 아직 빳빳한 가운을 입고 서 있던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남자 원장님은 어디 갔냐고 반말로 물어보던 환자 분이 있었다. 그래, 이런 냉대는 차라리 괜찮은 편이었다. 우는 아이를 겨우 달래가며 여자 선생님이 계신 치과를 찾아 멀리서 왔다고 하소연했던 보호자
요즈음 ‘미니멀리즘’이 유행이다. 예술사조로서의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생활양식으로서의 ‘미니멀리즘’ 말이다. 이는 복잡하고 정신없는 현대인의 삶에서 벗어나, 불필요한 소유를 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삶과 관심사에 집중하고자 하는 삶의 양식이다. 번역을 하자면, ‘최소생활주의’, ‘최소주의 삶’ 정도가 되겠다. 일본의 어느 미니멀리스트는 똑같은 옷만 세 벌 구입하여 매일 똑같은 코디로 살아간다고 한다. 그는 아침마다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까?’라는 고민에서 해방되어 행복하다고 했다. 몇 벌 안 되는 옷이기에 오히려 더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개성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무의미한 삶의 선택지를 과감히 버리고 자신의 사랑하는 몇 가지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물론 그와 같은 극단적인(?)형태의 미니멀리스트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집에는 적어도- 내가 모르는 물건은 없다. 물건들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내 자신을 ‘초보 미니멀리스트’ 라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필요로 할 때 적절히 꺼내 쓸 수가 없다면, 그 것이 ‘물건’이든 ‘지식’이든 없는 게 낫다’
거짓말쟁이 친구가 있다. 그냥 가끔씩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입만 열었다하면 절반 이상의 말이 다 거짓이다. 오랜 친구로 지내왔기에,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꽤나 충격이 컸다.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에도 가끔 그녀를 만난다. 커피숍에서 다리를 꼬고 앉은 그녀는 생기 넘치는 표정으로 재미있고 유쾌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낸다. 다 거짓말이다. 주변의 다른 친구들은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하라고 난리다. 하지만 그녀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항상 즐겁게 들었던 이야기이다. 생각해보면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그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 않으면서 그녀의 거짓말을 멈추게 할 방법은 없을까? 변명이지만 내 마음 속에서 우리 관계는 일단 보류 상태다. 너와 함께 있으면 나도 거짓말쟁이가 되는 기분이야…쉴 새 없이 움직이는 그녀의 입술을 보며 나는 속으로 되뇌곤 했다. 그 친구는 누가 봐도 착한 사람이다. 여기서 착하다는 것은 이타적인 행동을 많이 한다는 뜻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벌 청소를 해야 하는 친구를 위해 방과 후에 함께 남아주거나, 준비물을 가져 오지 않은 친구에게 자신의 준비물을 절반이나 나누어 주
어느 날 새벽, 우당탕하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화들짝 깨어났다. 잠결이지만 대충 무슨 사연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보나마나 고양이들 중 누군가 사고를 친 거겠지… 뭘 넘어뜨린 걸까? 화장대 위에 올려둔 로션? 쓰레기통? 컴퓨터 마우스? 축 늘어진 몸을 겨우 일으켜 ‘누구야?’ 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희끄무레한 녀석이 방구석으로 황급히 도망가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러면 그렇지,‘러흐’ 너 였구나, 조금 있다가 두고 보자…하고는 쓰러져 다시 잠을 청했다. 몇 시간 후 잠에서 깨어난 나는 정말 보기 드문 장면을 보게 되었다. 책상 위에 올려둔 접이식 거울이 방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있고, 삼색고양이 러흐가 엎드린 채로 그 거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공주병에 걸린 10대 소녀처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푹 빠진 고양이라니! 내가 신기한 듯 빤히 쳐다 보자, 러흐는 방해 받아서 귀찮게 되었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면서 자리를 떴다. 여우 같은 고양이 러흐는 우리 집 막내이다. 젖소무늬 고양이 ‘토흐’, 치즈 태비 ‘치흐’에 이어 내가 세 번째로 입양한 고양이이다. 쌀쌀한 초봄에 길에서 태어난 러흐는 몇 개월 동안 골목에서 혼자 자랐다. 어미로
지난 해 9월에 열린 ‘스마일 런 페스티벌’ 때의 일이다. 내가 자원 봉사를 하고 있던 금연 홍보 부스에 막 마라톤을 마친 젊은 부부가 찾아 왔다. 남편은 담배를 끊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항상 금연에 실패했노라고 나에게 넋두리를 하였다. 곧이어 구강 내 일산화탄소 수치를 측정했더니, 상당히 높은 수치가 나와 주변 사람들이 다 놀랐다. 남편은 자기 부인에게도 와서 일산화탄소 측정을 해 보라고 했지만, 한걸음 떨어져 있던 부인은 한사코 사양했다. 그 부부가 돌아가고 30분 쯤 지났을까, 슬슬 부스 정리를 시작할까 했는데 아까 봤던 부인이 다시 돌아왔다. 남편은 자신이 담배를 끊은 줄 알고 있어서 아까는 하지 않았다며, 일산화탄소 측정을 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향후 1, 2년 내에 임신 계획이 있는데 흡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는 그녀에게, 나는 대략적인 금연 프로그램의 내용과 금연 클리닉을 검색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약물치료가 있는지는 몰랐다며 약물치료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해 왔다. 아무래도 대놓고 흡연을 하지는 않다 보니, 오히려 유익한 금연 정보를 얻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거기다 가끔 사랑니 근처 잇몸이 붓고 치아 상태도 걱정이라 하기에 ‘금
내가 즐겨 가는 홍대 앞 짬뽕집이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빠듯하게 15명 들어갈까 말까 하는 작은 짬뽕집이였는데,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늘자 근처의 큰 건물로 이전을 했다. 소형 맛집이 테이블을 늘려 이전을 하면 오히려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데 이 짬뽕집은 여전히 문전성시다. 일요일 오픈이 12시인데, 11시에 가도 이미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손님이 20여명은 된다. 나는 줄을 서서 음식을 사 먹을 정도의 미식 애호가는 절대 아니지만, 이 짬뽕집은 번잡한 맛집 특유의 피곤함이 없어서 즐겨 간다. 아무리 맛있는 식당이라도 지나치게 손님이 많고 편안하지 않으면 두 번 가지는 않는 편인데, 이 짬뽕집은 뭔가 특별했다. 나는 그 짬뽕집을 이 삼주에 한 번씩 꾸준히 방문한 결과 어느 날 갑자기 그 비결(?)을 깨닫게 되었다. 그 짬뽕집에는 직원에게 질문을 하는 손님이 없다. 다른 혼잡한 레스토랑에서 흔히 오가는, ‘이거 저희가 시킨 음식이 아닌데요.’, ‘저희가 먼저 주문했는데요.’, ‘OOO가 어떤 음식이에요?’, ‘숟가락 하나만 더 주세요.’ 밑반찬 좀 더 주세요.’, ‘손님 이거 시키신 거 맞으시죠?’ ‘저 자리에 앉으면 안 되나요
‘고양이 거리’로 유명한 일본의 야나카 긴자, 안타깝게도 나는 그 곳에서 단 한 마리의 고양이만을 만날 수 있었다. 블로그에서 본 것처럼,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는 여주인의 발 밑에서 배를 뒤집고 노는 고양이들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미 관광 명소가 되어버린 그 마을에서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고양이 모양 악세서리를 파는 상점이나 고양이 인형을 세워둔 커피숍 정도였다. 그래도 운이 좋아 그 혼잡한 골목에서 넉살 좋게 낮잠을 자는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 열심히 사진을 찍던 나에게 현지 방송국의 카메라맨과 기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 일본 기자와 나는 둘 다 영어가 엉터리라 대화가 통하지 않았는데, 그 기자의 입에서 나온 이 문장만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우리는 이런 고양이를 커뮤니티 캣(community cat)이라고 불러요.’ 이 ‘커뮤니티 캣’이라는 말은 인터넷에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단순한 길고양이나 야생고양이를 지칭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직역을 하자면, ‘지역 고양이’, ‘마을 고양이’ 정도 될 것 같다. 어릴 적에 시골 우리 집에 드나들던 뚱뚱한 노란 고양이가 있었다. 녀석이 굼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