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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가 188일 동안 바다를 떠도는 사연

병원선 전남 511호 근무 오병혁 공중보건 치과의사

 

병역의무 공보의 활동 의미 있게 하고파 지원
모든 의식주 배에서 해결 불철주야 섬으로 섬으로
주민 구강상태 교과서에서만 보았을 정도로 심각
스케일링에서 레진까지 ‘미다스의 손’ 역할 보람
아직 치과의사가 해야할 일 많아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는 아무리 거친 파도가 몰아쳐도 당황하지 않는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핸드피스를 바짝 움켜쥔다. 그렇게 지난해 188일간 망망대해를 동분서주했다. 바다 위 종합병원, ‘전남 511호’의 유일한 치과의사 오병혁 씨의 사연이다.


오 씨는 지난해 4월 공중보건의로서 병원선 전남 511호에 승선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기왕 치러야 할 공중보건의 생활을 조금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그의 일상은 오롯이 배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선원들은 2주에 단 하루, 전라남도 본청으로 출근해 사무를 처리하는 날을 제외하고 모든 의식주를 배에서 해결한다.


정규 일과는 오전 7시부터 시작된다. 8시 30분까지 식사와 간단한 정비·점검을 마친 뒤, 예정된 섬으로 출항한다. 활동 범위는 여수시, 고흥군, 보성군, 강진군, 완도군 등 전라남도 5개 시·군의 77개 도서 지역이다.


섬으로 가는 동안 오 씨는 진료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오토클레이브로 혹시 모를 감염을 예방하고, 유닛 체어도 점검한다. 병원선에는 달리 배정된 치과위생사나 치과 보조 인력이 없어 준비에서부터 임상까지, 대부분 과정을 혼자 책임지고 있다. 그뿐 아니다. 섬에 도착하면 근해에 배를 정박한 뒤, 보트를 사용해 환자들을 실어 나른다. 날씨가 궂어 승선이 곤란해지면 직접 섬으로 나가기도 한다. 전남 511호 관할 도서 지역의 상당수는 제대로 된 항구가 설치돼 있지 못해, 병원선이 접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 씨는 “섬마다 평균 2~30명 정도의 주민이 있는데, 하루 만에 모든 주민을 진료해야만 하기에 업무 강도가 센 편”이라며 노고를 전했다. 이어 그는 “도서 지역은 의료 환경이 워낙 열악하다 보니, 치주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을 만큼 심각한 구강 상태를 가진 분들도 많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한편 오병혁 씨가 근무 중인 병원선 ‘전남 511호’는 1971년 설립돼, 도서 지역 의료 업무를 도맡아 왔다. 진료과목은 치과, 내과, 한의과로 구성돼 있으며 과목당 의사 1명이 전담 근무한다. 이외에도 간호사 3명, 임상병리사 1명, 방사선사 1명, 선박 직원 5명, 취사원 1명이 함께한다. 소규모일지언정 갖출 건 모두 갖춘 ‘해상 종합병원’인 셈이다.

 

 

특히 오병혁 씨는 선내 유일의 치과의사로서 지난 10개월간 섬마을 주민들의 구강건강 관리를 맡아 왔다. 혼자 모든 환자를 돌봐야 하기에 진료 폭도 넓다. 스케일링부터 근관치료, 틀니 조정, 레진에 이르기까지 섬마을 주민들에게 그의 존재는 ‘미다스의 손’이나 다름없다. 때로는 응급 처치가 필요한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오 씨는 지난해 6월 18일, 연흥도에서 치료한 환자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치과 치료를 위해 뭍으로 가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섬으로 돌아오는 3시간 동안 출혈이 멎지 않았습니다.”


당시 섬에는 보건소가 있었지만, 지혈에 필요한 약품은 없었고 거즈만 구비된 상태였다. 환자를 다시 뭍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었지만, 또다시 3시간의 출혈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오 씨는 그때 상황을 돌이켜보면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


“압박 지혈을 했지만 출혈이 계속됐습니다. 그때 전치부 쪽은 저작력이 약해 압박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손으로 지혈을 시도했습니다. 그렇게 15분 정도 흐른 뒤에야 출혈이 잦아들었습니다.”


오병혁 씨는 전남 511호에서 근무하며 치과의사로서 사명감을 새롭게 느꼈다고 말했다. 도서 지역의 열악한 의료서비스 환경과 구강보건에 대한 환자들의 낮은 의식, 인적·물적 자원의 부족 등 극복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더라는 것이다. 그는 “병원선 전남 511호에서 근무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의 구강건강 수준이 마냥 높다고만 생각했을 것”이라며 “도서 지역 환자들을 접하는 동안 ‘아직 치과의사로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그동안의 소감을 밝혔다.


앞으로 4개월 정도 뒤면 정해진 기간을 채워 병원선을 떠나야 한다는 오병혁 씨. 그의 새로운 행보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