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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희생 사망, 애타는 ‘사부곡’

치과의사 故김병훈 씨 아내 인터뷰

“저는 아직 누구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2015년 발생한 메르스 80번째 환자이자 38번째 희생자, 치과의사 故김병훈 씨의 아내 배씨는 복받치는 감정에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중앙지법 제18민사부(심재남 부장판사)는 지난 2월 18일 ‘메르스 80번째 환자’이자 ‘38번째 희생자’인 치과의사 故김병훈(사망 당시 35세) 씨의 유가족이 국가와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국가가 아내 배씨에게 1200만 원, 자녀에게 8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한 청구는 기각됐다.


판결이 있은 다음 날 오후, 경기도 모처에서 배씨를 만났다. 판결문을 읽으며 그는 “패소보다 못한 승소, 모욕적인 결과”라며 허탈함에 말문을 닫았다.

 

5년의 투쟁, 남은 건 소송비용뿐
아내 배씨 “패소보다 못한 승소”
국가 책임 인정했지만 ‘사과’는 없어


#사회가 개인 아픔 공감 못해
지난 5년간의 치열한 법정 공방 속에서 배씨가 원한 건 오직 ‘진심 어린 사과’뿐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에게 남은 건 소송비용뿐이었다. 승소한 국가 소송비용은 9/10을 짊어졌고, 삼성병원과 서울대병원에 대한 소송비용은 전액 부담하게 됐다.


사회의 시선도 냉담했다. 배씨는 “인터넷에서 ‘시체 팔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며 “사회가 개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배씨는 싸움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 지난 2018년 출간된 메르스 환자들의 아픔을 다룬 소설 ‘살아야겠다’(작가 김탁환) 저작에 참여했고, 영화 시나리오도 준비 중이다.


배씨가 이토록 지난한 싸움에 매달리는 이유는 모두 아이 때문이다. “아이에게 우리 사회가 믿고 살아가도 괜찮은 곳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싶다”고 배씨는 전했다.

 

#바라던 치과의사 꿈 이뤘지만
故김병훈 씨는 어린 시절부터 치과의사가 꿈이었지만 형편상 학업보다 생계를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 2008년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치대 입학 공부를 시작했다. 이어 2010년 전남대 치전원에 입학, 2014년 국가고시를 통과했다.


그러나 그해 4월, 김씨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 림프종 진단을 받은 것이다. 다행히 치료를 시작한 당해 12월 완전관해 소견을 받았지만, 이듬해 5월 27일경 호흡곤란 및 발열증상으로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폐렴 추정으로 항생제 처방을 받으며 3일간 대기하다 귀가했다. 이때 같은 병원에서 ‘슈퍼 전파자’로 알려진 14번째 환자로부터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역학조사는 기록한다.


메르스 확진 후 김씨는 2015년 7월 3일 서울대병원 음압격리병실에 격리됐다. 그 뒤 3개월간 그는 메르스와 림프종 항암치료를 반복했다. 다행히 10월 3일 완치 요건을 충족해 귀가했지만 8일 뒤 발열, 구토 등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았고, 또다시 메르스 양성 판정을 받아 격리됐다.


이때부터 진짜 악몽이 시작됐다. ‘24시간 간격 2번 연속 음성’이 나와야 퇴원할 수 있지만 자꾸만 결과가 엇갈렸다. 하루빨리 림프종 치료를 시작해야 했지만 불가능했다. 그렇게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13차례나 반복하던 김씨는 끝내 숨을 거뒀다. 11월 25일, 치료 5개월 만이었다.


재판부는 지난 2월 18일 판결에서 “대한민국의 과실과 망인(故김병훈 씨)의 메르스 감염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한다며 “피고 대한민국은 망인과 원고들에게 메르스 감염으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배씨는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무엇보다 배씨는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사과를 받은 기억이 없다. 2015년에도 정부는 유가족에 대한 심리적 지원을 약속했지만 받지 못했다.

 

#“혐오 대신 희망을 향해”
배씨는 “우리 사회가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정부도 병원도 지금까지 애도의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없다”며 답답한 가슴을 문질렀다.


배씨는 고인이 된 남편 김씨를 ‘평생 친구’ 같은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친절하고 유머 감각도 뛰어난 데다 목표의식도 투철한, 그야말로 완벽한 배우자였다.


배씨는 그때 음압격리실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사태를 지켜보며 배씨는 “악몽이 되풀이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남편의 꿈은 국가고시 자격증을 받은 그 날에 멈춰있다”며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내 가족, 친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끝으로 그는 “우리 사회가 혐오를 그쳐야 한다. 학창 시절 왕따와 놀면 왕따가 되는 것 같은 식의 행동을 취해서는 안 된다. 희망을 봐야 한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