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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권치과 병원홍보 ‘늪’에 빠지다

마케팅 업체, 인근 치과 수가 제시 불안심리 자극 계약
일부 치과, 월 마케팅비 ‘1억’ 지출 과열경쟁 부추켜
홍보 집중하면 신환 늘지만 비용증가로 되레 경영 악화
“치과의사는 잘 모르고 고소득자” 덤터기 비용청구 성행도

 

“강남역에는 마케팅으로 매달 1억씩 투자하는 치과도 있다는데, 어떻게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A 치과원장은 최근 오랜 페이닥터 생활을 끝내고 강남역에 개원했다. A 원장이 강남역을 선택한 데에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강남을 ‘치과 의료 클러스터(산업집적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많은 치과가 모여 있는 만큼 환자의 발길도 끊이지 않으리라고 전망했던 것.


그렇게 A 원장은 부푼 꿈을 안고 강남역 인근에 개원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환자가 늘어나지 않았다. 병원 유지가 힘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높은 임대료에 개원 초기 비용까지 고려하면 과거 화려하게만 느꼈던 ‘강남 치과’도 유명무실했다. 그때 A 원장에게 접근한 것이 바로 ‘치과 마케팅’ 업체였다.


# 마케팅 과열, 과잉진료 촉매 우려
마케팅업체의 접근 방식은 다양했다. 수시로 데스크에 전화를 걸거나 광고 이메일을 송신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손편지까지 부치는 ‘정성(?)’을 보인 업체도 있었다. 직접 태블릿 PC를 들고 찾아와 간단한 PT를 펼치기도 했다.


이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수가 비교’였다. 인근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가를 내세우는 치과의 자료를 보여주며 ‘불안심리’와 ‘경쟁심리’를 자극하는 것이다.


주변에 떠도는 소문도 무시하기 힘들었다. 강남역에 매달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1억이 넘는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는 치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땐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꼈다.


A 원장은 “아직은 직원과 머리를 맞대고 블로그와 SNS를 운영하며 나름대로 마케팅을 펼치는 중이지만 불안감을 지울 수는 없다”며 “전문 마케팅 업체와 계약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일선 치과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마케팅 업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투자 대비 실제 마케팅 효과는 미지수였다.


마찬가지로 강남역 일대에서 지난 20여 년을 ‘버텼다’는 B 원장은 “비슷하거나 조금 앞선 시기에 개원했던 동료 치과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곳은 1곳도 없다”고 강남 치과 경쟁의 치열함을 전했다.


이어 B 원장은 “마케팅을 펼치면 신환 방문율이 확실히 늘어나긴 한다. 하지만 그만큼 지출이 증가해 오히려 경영이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금까지 지켜본 바에 따르면 오랜 시간 강남역에서 살아남는 치과는 규모를 키우기보다 지출을 줄인 경우가 다수였다”고 전했다.


특히 B 원장은 과도한 마케팅 경쟁과 자본의 유입이 자칫 ‘과잉진료’나 ‘사무장병원’의 출현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기자는 취재 중 과잉진료 실태를 유추할 수 있는 증언을 접할 수 있었다.


C 원장은 “강남역 일대 치과에서는 신환 1명을 불러들이기 위해 평균 4~50만 원의 마케팅 비용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이에 신환이 50만 원 미만의 진료를 보면 ‘더 많이 진료했어야 하는데, 손해를 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여기서 말하는 ‘신환 1인당 마케팅 비용’은 환자를 직접적으로 유인·알선하는 것이 아닌, 월간 마케팅 투자비와 신환 수를 단순히 수학적으로 나눠 도출한 수치로, 논리적 근거나 자료가 미흡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마치 해당 비용이 정설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 강남 마케팅 업체 난립
현재 강남 치과 마케팅 업계는 무수한 업체가 난립하는 상황인 데다, 특별한 사업장 운용 없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영업하는 경우가 많아 구체적인 규모와 비용 체계를 파악하기 힘든 상태다.


이에 기자가 직접 ‘강남 치과 전문 마케팅’을 내세우는 업체에 견적 상담을 받아봤다. 해당 D 업체는 블로그 관리, 인터넷 언론보도 대행에 월 150만 원을 제안했다. 또한 계약은 3개월 단위가 의무였다. 즉 1회 계약에 최소 450만 원이 필요한 셈이다. 더욱이 업체가 추천하는 몇 가지 ‘추가 옵션’을 더하면 매달 최대 400만 원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이는 연간으로 환산하면 4800만 원의 거금이지만, 이조차도 마케팅 업체는 대수롭지 않다는 식이었다.


마케팅 업체의 횡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치과의사가 상대적으로 고소득자라는 이유만으로 덤터기를 씌우는 행각도 성행하는 것으로 보였다. 예를 들어 홈페이지를 개설하더라도 일반 자영업자보다 적게는 2배, 많게는 3배가량 높은 제작비를 요구하는 경우도 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마케팅에 많은 인적·물적 자원이 소모되자 업체를 벗어나 일반 기업에서 활동하던 마케팅 전문 인력을 직접 구인하는 경우도 개원가에 속속 등장하는 모양새다.


E 원장은 “전문 마케팅 인력을 직접 구인하면 원장이 마케팅의 방향성을 직접 설정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현황까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어 최근 젊은 원장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기조가 확대되고 있다”며 “그만큼 현재 개원가에서 마케팅은 필수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E 원장은 “치과 마케팅은 ‘시대적 흐름’으로 거스르기 힘들다. 다만 지나친 경쟁은 제 살 깎아 먹기밖에 되지 않아 우려가 크다”며 “이에 올바른 마케팅 문화를 정착시키고 과잉 경쟁을 줄일 수 있는 올바른 해결책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나날이 과열되는 강남 치과 마케팅 현장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