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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품 수장가 咸錫泰<3·끝>

기고

<지난호에  이어 계속>
함석태 선생님은 일제강점기 중요 수장가의 한사람으로 꼽힐 만큼 좋은 고미술품을 많이 소장했던 사람이다. 고미술품에 대한 수장벽이 취미 때문이기도 했지만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 문화재를 수집해가는 것을 보고 안타까이 여겨 민족 유산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으리라.

함석태 선생님은 서화 골동품 외에도 분재, 꽃꽂이 특히 煎茶(전다)를 좋아해서 이런 류의 취미가 고미술품 수장 활동에 중요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1930년초 고미술품 수장가들과 깊은 교류를 가졌다. 장택상을 중심으로 당대 최고의 수집가들 모임에 참석했던 것은 함 선생님의 고미술품에 대한 열정과 감식안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장택상의 집에서 이루어진 모임은 한국 근대 고미술품 소장과 유통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함석태 선생님은 ‘小物眞品大王’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많은 고미술품을 소장한 일제 강점기 굴지의 고미술품 소장가 가운데 한분이다.

일제 강점기 말인 1944년 9월 또는 10월경 함석태 선생님은 일제의 소개령에 따라 자신의 소장품을 모두 세대의 차에 싣고 고향인 평안북도 영변으로 가서 광복을 맞이하였다. 황해도 해주를 거쳐 월남하려다 실패한 함석태 선생님의 이후 소식은 알 수 없다. 아마도 해주에서 배를 이용하여 가족들과 고미술품을 함께 가져오려다 실패한 듯하다.

이들 가운데 사진으로나마 전해지는 것은 ‘조선고적도보’의 15점 ‘조선명보전람회도록’과 평양 조선미술박물관 소장 9점인데 중복된 것을 제외하면 도자기 15점, 회화 4점에 불과하다. 근현대 격동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수장가들의 소장품들이 그 소재조차 알 수 없게 된 경우가 많은데 함석태 선생님의 소장품 역시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현재 전해오는 그의 소장품 가운데 북한의 국보로 지정된 ‘백자금강산연적’ 등을 위시한 ‘백자뚫음무늬담배대받침’ 진홍백자금강산모양붓빨이 金弘道의 늙은 사자 崔北의 ‘金剛全景扇面(금강전경선면)’ 許鍊의 산골살이 등의 작품은 평양미술박물관소장으로 2006년 북녘의 문화유산 교류전에 전시됐던 작품들이다. 이로 미루어 함석태 선생님은 해주로 싣고 오려다 신상의 해를 입고 소장품도 다 뺏기지 않았는가 추측해본다. 소장품 때문에 화를 입으신 듯싶다. 안타까운 일이다.

함석태 선생님은 제1호 치과의사 개원의로서 애국 계몽운동가로서 고미술수장가로서 잊을 수 없는 훌륭한 업적을 남기신 분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최초 개원 장소에 표지석을 꼭 만들어 후배들의 귀감이 되도록 하여야겠다.

서울시치과의사회 이사회에서는 이 사업을 서울특별시에 건의해 추진토록 했다. 때마침 함석태 선생님의 손자 함각 선생이 79세로 살아 계신다고 연락이 와 만나 볼 계기가 마련되어 가슴이 설렌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변영남 치협 협회사편찬위원장